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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맥을 짚듯이 독서하라
작성일
2008-10-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949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두 일본인의 독서법에 대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사람은 독서를 통해 해당 전문가보다 더 많은 지식을 지니고 전문 토론에 임한다는 문화비평가 ‘다치바나 다카시’, 또 한 사람은 현대사회의 병폐를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묘사해 보이는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다. 다치바나는 수많은 책을 순식간에 읽으면서도 주제를 명료하게 파악하기 위해 독특한 속독법을 개발했으나, 히라노는 행간을 읽고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느리고 꼼꼼하게 밑줄을 그으면서 읽을 것을 권한다. 두 사람의 책이 모두 우리 출판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아마도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를 빨리 집적하고 싶은 욕망과 독서를 통해 진정한 교양을 쌓아가고 싶은 바람이 우리들 모두에게 공존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고민은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선인들도 그러한 욕망과 바람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두 가지 성향의 독서가 모두 존재했다. 선인들이 말하는 효과적인 독서법

선인들은 자료를 얻기 위해 오늘날 백과사전의 전신이라고 할 유서類書를 이용해서 필요한 정보만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또 많은 책들을 독파하면서 필요한 부분만 초록抄錄해 두었다. 이에 비해 한 개념을 이해하고 사색의 결과를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느린 독서를 했다. 지금 흔히 사용하는 ‘독서’라는 말은 주자학에서는 ‘행간을 파악해가는 꼼꼼한 읽기close reading’를 가리켰다. 그런데 속성으로 독파하기와 꼼꼼한 읽기의 두 가지 방법은 어떤 책을 어떤 목적으로 읽느냐에 따라 구별된다. 어느 한 쪽만 옳은 것은 아니다. 고전자료를 주로 다루는 필자는 꼼꼼한 읽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속독을 병행한다. 다만 속독은 날림으로 훑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속독은 비디오테이프를 2배속, 4배속으로 틀어놓고 줄거리만 따라가는 것과 같으므로, 전체 흐름을 이해하거나 특정한 요소를 적출하기 위한 방법에 불과하다. 다치바나도 유사한 책들을 서너 권씩 사서 읽어야 하므로 속독이 필요하다고 했지, 모든 책을 속독으로 읽으라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소설보다 기록문학을 중시했는데, 삶의 생생한 국면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날림 훑기는 전혀 도움이 될 리 없다. 서포 김만중은 안맥按脈하듯이 독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서를 할 때, 이를테면 의술醫術을 배우면서 단지 『맥결』만 읽고 자기의 삼부三部는 짚어보지 않는 것처럼 한다.”라고 지적하면서, 그러한 병폐는 선배나 큰 선생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의술을 공부할 때 의술을 체득하기 위해 스스로 맥을 짚듯이, 독서를 할 때도 글의 생성적 의미와 문맥적 의미를 파악하고 내 관점에서 감상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스스로 맥을 짚어보지 않는 독서는 남의 설을 본뜨거나 뇌동雷同하는 것과 같다고도 말했다. 오늘날, 줄거리나 이해하고 표면의 주제나 파악하려면 인터넷 정보나 관련 블로그를 검색하면 되지 시간을 쪼개 책을 읽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하는 지식의 대상은 너무도 많다. 교양과 지식의 세계가 이렇게 확장되기 이전, 불과 다섯 수레 분량도 안 되는 책만 잃어도 박학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에도 장자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한계가 있건만, 앎의 대상은 무한하다[人之生也有涯, 其知也無涯]”라고 말했다. 포괄적이고 참된 지식을 얻으려면 세세한 대상들에 대한 앎을 아예 끊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들은 부득이 세세한 지식을 쌓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책을 빠르게 읽어내야 한다. 그렇지만 내 삶에 양식이 될 책들과 내 사유체계를 쌓기 위해 필요한 책들은, 김만중이 말한 ‘안맥按脈’의 방법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가야 할 것이다. ▶글_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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