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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전으로 점철된 줄 위의 삶
작성일
2017-07-0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624

도전으로 점철된 줄 위의 삶 - 줄 위에서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펼치는 김대균 명인과 손인수 슬랙라이너. 줄의 종류와 타는 방법 등은 다르지만, 외줄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줄과 하나가 된다는 점에서 줄타기와
슬랙라인은 분명 통한다. 줄의 탄성을 벗 삼아 펼치는 비상, 그리고 퍼포먼스에 호응하는 관객과의 소통이 김대균 명인과 손인수 슬랙라이너 모두에게 인생의 희열을 안겨준다. ⓒ줄타기 보존회, (좌)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보유자 김대균 ⓒ권혁재, (우) 국내 제1호 슬랙라이너 손인수 ⓒ임근재

국내 제1호 슬랙라이너 손인수 ⓒ임근재

외줄 인생이 시작되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시작해 줄타기 인생 40년이 된 김대균 명인. 평생을 줄타기에 쏟아붓다 보니 피멍이 든 자리는 굳은살로 단단해졌다. 그의 행보만큼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우리나라 제1호 슬랙라이너 손인수 씨. 국내에서는 불모지와 같았던 슬랙라인에 도전하기 위해 밑바닥부터 기술을 익혀야 했다. 줄 위에서 두 사람의 범상치 않은 삶이 시작됐다.

김대균 명인 | 줄타기 시작이 9살이었어요. 저희 아버님이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근무하셨는데, 학교를 파하고 나면 민속촌 놀이마당이 늘 제 놀이터였죠. 그때 저희 스승인 김영철 명인(1976년 줄타기 보유자 인정)을 만났어요. 줄타기 공연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줄에 매달려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문하게 된 거죠. 지금 생각하면 그런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게 큰 복이었던 것 같아요. 해마다 60~70차례 공연을 하는데 민속촌 시절까지 합하면 정식 무대만 1만 회가 넘어요. 묘한 건 똑같은 공연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거예요. 관객이 다르고, 장소가 다르니 내용도 달라지는거죠.

손인수 슬랙라이너 | 저는 비보잉(B-boying)을 11년 정도 했습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최고라고 인정받는 만큼 비보잉 분야는 이미 포화상태에요. 그 속에서 ‘과연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긍정적인 답이 돌아오지 않았죠.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해외에서 슬랙라인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됐어요.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설레더라고요. 그 당시 우리나라는 슬랙라인이란 종목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서울로 무작정 상경 해 15만 원짜리 줄을 사서 맨바닥부터 시작했죠. 그게 2011년이었습니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3개월 동안 줄기차게 연습만 했어요. 다치기도 많이 다쳤고요. 그렇게 연습한 장면을 SNS를 통해 알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제1호 슬랙라이너라는 호칭도 얻게 됐습니다.

01/02_줄 위가 오히려 편하다는 손인수 슬랙라이너와 김대균 명인, 03_슬랙라인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도전하고 있는 손인수 슬랙라이너 ⓒ임근재, 04_건강하고 즐겁게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안전장비 체크는 필수 ⓒ임근재, 05_평생을 함께 해온 김대균 명인의 줄타기 소품들 ⓒ권혁재, 06_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줄타기 공연 ⓒ줄타기 보존회

닮았지만 다른 줄타기와 슬랙라인

슬랙라인과 줄타기는 외줄을 타며 다양한 묘기를 부린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다른 점이 많다. 우리의 줄타기는 둥근 모양의 밧줄을 타는 반면 슬랙라인은 벨트처럼 납작한 모양의 줄을 탄다. 또한 줄타기가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종합예술이라면 슬랙라인은 건강을 얻을 수 있는 스포츠이다.

김대균 명인 | 줄타기에는 기예적 요소, 재담적 요소, 춤, 음악적 요소 등이 어우러져 있어요. 단순히 줄을 탄다는 개념보다는 줄을 타는 그 속에서 놀음 형태로 줄광대와 상대역인 어릿광대, 그다음에 음악이 어우러져서 관객과 이야기하며 풀어가는 방식이죠. 이런 요소들이 하나의 플롯 구성에 맞물려 돌아가는 거예요. 하지만 줄타기의 궁극적인 핵심은 관객들과 양방향 소통을 하면서 ‘신명풀이’라는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에요. 관객은 관객대로 호응이 있어야 하고, 줄 타는 저는 저대로 진실성을 갖고 공연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관객과의 철저한 공유가 없다면 기술자밖에 안 되는 거예요. 관객과 끊임없이 맞물리며 호흡할 때 줄타기의 희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손인수 슬랙라이너 | 줄타기와 마찬가지로 슬랙라인도 관객의 반응으로 희열을 느낍니다. 슬랙라인은 폭 5cm 정도의 외줄을 지상 50cm 정도의 높이에 설치하고 그 위에서 기술을 구사하는 운동입니다. 암벽 등반가들이 균형 감각을 높이기 위해 훈련용으로 개발한 것이 시초예요. 우리나라의 전통 줄타기 놀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많이 닮았습니다. 슬랙라인은 운동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집중력과 균형감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체와 복부를 비롯한 전신 근육을 고루 발달시켜줍니다. 신체 균형을 잡아주고 순발력과 유연성을 기르는 데도 효과적이죠. 무엇보다 놀이처럼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게 매력입니다. 나무나 기둥, 그리고 줄만 있다면 어디서나 즐길 수 있어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즐겨도 좋은 운동입니다.


발전을 거듭하며 더 넓은 방향으로 뻗어나가길…

줄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리네 삶 자체를 ‘외줄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고, 구원의 상징적인 의미로 ‘동아줄’이 사용되기도 한다. 김대균 명인과 손인수 슬랙라이너는 줄을 통해 희로애락을 느끼고 또 타인에게 희로애락을 전한다.

김대균 명인 | 은율탈춤을 추셨던 박용택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백정은 썩은 기둥에서 태어난 노래기입니다. 재인광대는 똥에서 태어난 파리입니다. 노래기가 사람 눈에 띄면 발로 죽임을 당하지만, 똥파리는 임금의 용안에도 앉을 수 있습니다”라고요. 신분사회에서 광대는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취급 받았지만 풍자를 통해 임금도 웃고 울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과거에서 지금까지 줄타기가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생명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외줄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어떤 사회현상을 저 줄을 통해 풍자를 할 것인가가 줄타기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살아있는 줄타기입니다. 앞으로도 줄타기는 다방면으로 전승돼야 합니다. 저는 그 길잡이 역할을 할 뿐입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줄타기의 유형·무형적 자산을 바탕으로 우리 아이들이 더 넓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손인수 슬랙라이너 | 앞으로 더 슬랙라인이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어요. 최근에는 일부 중학교 체육 교과서에 균형운동으로 슬랙라인이 소개가 됐는데, 저도 여기에 조금은 기여를 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1호 슬랙라이너’로서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요. 슬랙라인이 대중화되려면 ‘저건 내가 할 수 없는 묘기’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인식이 전환되어야 해요. 가끔 슬랙라인 체험 현장을 나가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줄을 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줄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부모가 자식의 손을, 반대로 자식이 부모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죠. 그런 모습을 보면 슬랙라인은 혼자 즐기는 것을 넘어 서로를 의지하며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슬랙라인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또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줄 위에서 김대균 명인과 제가 더욱 높이 비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한율 사진‧줄타기 보존회/권혁재/임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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