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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21세기 중심에 선 여성, 무엇을 해야 하나
작성일
2013-03-1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367

 

여성임원 100명 시대

 

최근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시대와 맞물려 이목을 집중시킨 뉴스는 국내 100대 상장기업에서 활동하는 여성 임원 수가 총 33개 사에 걸쳐 처음으로 100명을 넘었다(114명)는 보도였다. 2004년 10개사 13명에 불과했던 수준과 비교하면 분명 도약이다. 조사기관인 유니코써어치 역시 국내 기업에서도 향후 5?6년 내에 여성 임원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퀀텀점프Quantum Jump’ 현상이 불 것으로 전망했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조직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인 유리천장Glass Ceiling 중 거의 마지막 단계인 경제계의 유리천장이 조만간 깨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징후들이다.

여성 임원 약진 소식을 접하면서 언뜻 떠오른 것이 90년대 후반부터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여성 진출률에는 으레 ‘사상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는 사실이다. 2005년에는 사시와 행시의 여성 합격자 비율이 사상 최고로 각각 32.3%와 44.0%를 기록한데다, 사시 행시 모두 최고 득점자가 여성이어서 떠들썩했었다. 지난 연말 제54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506명 중 여성은 211명, 41.7%로 역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 10여 년간 주요한 여성 진출 지표가 꾸준한 증가세인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는 ‘금녀 구역’이나 ‘여성 최초’, ‘역대 최고’ 등의 수사는 구태의연한 것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여성의 ‘최초’ 기록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여권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별도로 인류 역사상 여성 진출은 극히 최근에 시작됐다는 상대적인 참신성, 그리고 여성이기에 기존 남성 중심 사회와는 다른 패러다임을 만들어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적인 기업 조사기관들은 조직 내 문제해결 능력을 들어 주가 상승률이 여성 임원 수에 비례한다는 보고서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연구소의 시가총액 100억 달러 이상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도 여성 임원이 있는 기업들의 6년간 실적이 임원이 모두 남성인 기업들보다 26%가량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40% 여성 이사 할당제를 도입한 노르웨이의 경우, 초반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업 이윤과 다양성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여성 이사 할당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해가고 있다.



여성의 약진, 그 질적 성장의 필요성

그러나 이 같은 양적 성장 이면의 질적 성장은 분명히 다른 문제이다.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수퍼우먼이나 알파걸, 그리고 최근의 골드 미스 현상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것은 20대 여성취업률이 높아진 것 못지않게 30대 경력단절률도 높아지고 있고, 그 최대 원인인 가사와 육아라는 여성의 이중고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며, 승승장구 하는 여성들 뒤에는 저임금·고용불안의 비정규직 70% 이상이 여성이라는 불편한 진실이다. ‘진입’은 여성할당제나 여성 토큰token 효과에 기대어 상당히 가시적 효과를 보고 있지만 이후 ‘생존’은 별개의 문제다.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지난해 10대 아시아 증권시장에 상장된 744개 기업을 대상으로 이사회와 최고경영진 내 여성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 기업의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1%, 최고경영진 내 여성 비율은 2%로 아시아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10대 아시아 증시 상장기업의 이사회 구성원 중 여성 비율은 평균 6%, 최고경영진 중 여성 비율은 평균 8%다. 양적 성장이 자연스럽게 질적 성장으로 이어져야 여성 진출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극소수 여성 리더를 넘어 일반 대중여성에게까지도 의미 있는 성공이 확장돼야 한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사회 각 분야 여성들이 스스로의 경험을 다른 여성들과 공유하고 공감하며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최근 2, 3년 전부터 국내 유일의 여성 임원 모임 WIN(Women in Innovation)이 결성되는 등 조직 내 여성 중간 관리자를 키우는 여성 자체 모임들이 만들어지면서 조직 내 여성 경험을 토로할 기회가 종종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자리들을 통해 대표적인 여성 리더들도 가사와 육아로 대변되는 일·가정 양립 문제에 홍역을 치루면서 극복 노하우를 스스로 찾아갔다는 진솔한 고백은 후배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 2009년 여성부와 WIN이 공동주최한 여성리더십 컨퍼런스에서 모진 바슈롬코리아 사장은 세 아이의 엄마로 23년간 가정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온 노하우를 전했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 자신만의 현실적인 목표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후 육아에 있어서도 선택과 집중의 방식을 통해 “다 잘 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설득해 주변인을 적극 활용하라”고 권했다. 대학 졸업 후 1995년 LG전자에 공채로 입사, 국내 대기업에서 성장한 자칭 ‘대기업 걸girl’이미영 현대카드 마케팅본부 브랜드실 이사대우는 “여성들은 특히 매를 한 번 맞았다고 넘어지거나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맷집이 필요하다”며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민감한 여성들이 좀 더 대범해질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경찰역사상 여성 최초의 치안감으로 오른 이금형 경찰청 경무국장은 기자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순경에서 출발, 또박또박 걸음으로 36년의 세월을 지나 경찰청 내 첫 여성 인사책임자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한마디로 ‘엄마의 마음’으로 표현했다. 세 딸의 엄마이기에 여성 대상 범죄 사건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뛰었고, 경찰 신분을 넘어 사재를 털어 피해자를 도울 수 있었다. 그는 오랜 경찰 생활을 통해 터득한 양성평등 진리를 “피해자는 곧 여성이라는 공식이 없어져야 여성 폄하 분위기도 궁극적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특정 여성 리더 개인의 성공만으론 전체 여성의 인권과 권익을 성장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성리더의 성공, 대중여성에게까지 확장돼야 사회가 변한다

이처럼 여성 진출사의 화려함 뒤에는 희생과 아픔의 스토리들이 숨어 있다. 이런 여성 특유의 경험들이 큰 울림이 돼 법적 제도적 진전과 함께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루어나갈 때 역차별이니 여성우대니 등의 논란이 좀 더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관점을 가지고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말 2013년부터 2017년까지의 여성정책 주요 청사진을 담은 제4차 여성정책기본계획이 발표됐다. ‘함께 참여하고 성장하는 성평등사회’를 내건 4차 계획의 핵심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60% 증대, 국공립 어린이집 보육분담률 30%까지 높이기 등 일·가정 양립 조치와 더불어 국회의원 여성비율 18%, 지방의회의원 여성비율 20% 수준 확대, 중앙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업무평가에 성평등 지표 반영 등 여성 대표성 제고에 맞추어져 있다.

최근 방한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부인 셰리 블레어 아시아여성대학Asian University for Women 총장은 이런 맥락에서 “몇 명의 여성이 의회에 있는지, 몇 명의 여성이 정부에 있는지, 여성 대표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차기 대선주자로 강력히 점쳐지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월 31일 퇴임식에서 마지막으로 강조할 사항이라며 “여성들이 남성과 똑같이 존중받고 권리와 기회가 보장된다면 정치·경제적 발전도 이루어질 것”라는 말을 남겼다. 여권 신장은 성평등이란 도덕적 이슈를 넘어 경제 및 안보와도 직결된 이슈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완인 채로 남아있는 ‘21세기의 과업’ 이라는 의미에서다. 대한민국이 이 위대한 과업을 다른 나라에 앞서, 훌륭히 완수해내기를 기대해본다.

글. 이은경 (여성신문 편집위원) 사진. 연합뉴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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