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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나는 한국인, 그래서 국악이 좋다
작성일
2013-03-1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143



동서양,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지난 2012년 1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오랜만에 우리의 가락이 점점이 흘러나왔다. 국립오페라단 50주년을 기념해 진행된 갈라 콘서트에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오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이용탁 지휘자의 창작 오페라 <청>이 갈라 무대에 오른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이 접해보지 못한 선율과 음색으로 새롭게 풀어낸 <청>은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며 우리의 정서가 무엇인지 음악으로 상기시켰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6년간 국립창극단에서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몸담았던 이용탁 지휘자는 지난 해 3월 창극단을 나온 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다. 국악적 색채로 새롭게 덧입힌 <로미오와 줄리엣>,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공연된 창극 <안중근> 등은 이용탁 지휘자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주의를 기울여 보면 알겠지만 이용탁 지휘자의 작품들은 한 가지로만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 바로 동서양 문화의 조화다. 한국적인 정서를 이어가지만 그 의도는 고집스럽지 않고, 서양의 것과 함께하지만 순간의 유행이 아닌 지조 있는 뚝심이 엿보인다.

전통과 서양의 조화를 이루는 음악가로 알려진 이용탁 지휘자는 그 이력도 과연 수식어답다. 국내에서 한국음악과를 전공한 후 졸업한 지 11년 만에 헝가리에서 지휘과정을 전공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국악계에는 지휘를 전공한 사람이 많이 없었어요. 당시 헝가리로 유학을 떠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전부 저를 말렸죠. 한국은 한국 고유의 장단이 있는데 지휘가 무슨 필요이며, 그것도 외국에서 배워올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죠. 하지만 많은 사람을 놓고 연주를 한다면 지휘자는 필요하잖아요. 당시 시대적으로 이에 대한 인식은 약했지만, 지휘를 전공한 사람이 국악계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죠.”
모두가 만류한 상태에서 시작한 공부였던 만큼 불안한 마음이 들 법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에 의심이 없었다. 그는 그런 연주자였다.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신뢰를 얹는 사람. 사실 그는 음악을 처음 전공한 때에도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을 하면 배고픈 삶을 살아야 한다며 청년 이용탁을 거듭 말렸지만, 한번 빠져든 음악의 선율은 마치 거미줄처럼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그 스스로 국악의 선율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 쓰고 힘겹게 시작한 국악 공부.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음악하는 삶에서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공부할 돈을 모으기 위해 ‘한국의 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학생들의 레슨도 계속 이어가야 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연주자를 넘어 작곡가와 지휘자가 되기 위한 꿈을 꾸었고, 그것을 당장의 어려움과 맞바꾸지는 않았다.



민족오케스트라 만들고 싶어

국립국악관현악단 수석단원으로 연주하던 그는 1998년 중앙국악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면서 공식적으로 지휘자의 직함을 달게 된다. “19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창단 후 수석단원으로 연주를 할 때였어요. 지휘자 선생님들이 바쁘실 때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제가 종종 지휘를 맡았죠. 지휘를 하니까 단원들이 많이 놀라던데요. 지휘까지 할 줄은 몰랐던 거죠. (웃음) 하지만 그동안 계속 공부를 했으니까 큰 어려움 없이 가끔 발생하는 공백을 메울 수 있었고, 그러다가 선생님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중앙국악관현악단으로 옮기게 됐어요.”

점차 자신의 색을 만들어 나간 이용탁 지휘자는 결국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전통과 새로운 것을 자유자재로 접목하며 ‘이용탁 스타일’의 곡을 만들어냈고, 이는 점차 국악의 새로운 계보를 쓴 음악가라는 수식어를 입혀줬다. “제 철학은 그래요. 무의미하게 곡을 마구잡이로 쓰는 것보다 민족적인 색채를 기본으로 가진 뒤 현대적으로 혹은 고전적으로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보통 퓨전fusion음악을 많이 물어보시는데 퓨전과는 좀 다르다고 봅니다. 퓨전음악은 마치 팝pop과 같아서 지속성은 없어요. 퓨전음악이 주는 장점이 물론 있지만, 그것이 우리 국악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소개될 때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죠.”

이용탁 지휘자가 추구하는 음악에는 대부분 관현악단 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창작 오페라 <청>도 그랬거니와 2011년 국립극장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수궁가>도 그러했다. 서양 오페라와 뮤지컬에 친숙한 관객들에게 오케스트라를 접목한 국악을 선보이는 것은 모두에게 새로울 뿐 아니라, 이전에 없던 새로운 차원의 신선함을 제공했다. 실제로 국악과 오케스트라의 만남을 시도했을 때 관객들은 전에 없는 반응을 보냈다. “진중하면서도 우리의 선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한 게 많은 관객들에게 통했다고 봐요. <청>이 연주될 때는 객석에서 눈물을 훔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연주 활동으로 나날이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최근 후학 양성을 위해서도 열심히 뛰고 있다. 후배 국악인들의 음반 작업을 도울 뿐 아니라 좋은 연주자가 될 제자들이 보이면 조건 없이 이들의 공부를 지원해 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 제자에게 지휘 공부를 시키고, 방학 동안 러시아로 연수를 간다기에 용돈까지 쥐어 보냈다. 그가 이렇게까지 후배들을 위해 마음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제가 걸었던 길을 후배들에게까지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맨 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지금까지 왔지만, 후배들에게는 좀 닦인 길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우리 국악계가 더욱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그 저변을 더욱 넓혀 초등학생부터 국악 교육을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몸담고 있는 전통문화재단의 국악영재아카데미도 그렇거니와, 3월 인천 연수구에서 창단되는 어린이 관현악단도 그가 직접 관여하고 있다.

선배 국악인과 현재의 국악인, 그리고 미래의 국악인이 모두 손을 잡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든 후 민족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는 것이 꿈이라는 이용탁 지휘자. “이젠 서양음악만으로, 혹은 국악만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것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양쪽의 음악을 모두 접해본 사람으로서, 서로 공존하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죠. 때문에 앞으로는 각 나라의 민족 악기가 배치된 ‘민족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어요. 제가 음악을 만들고 지휘도 하면 되니까 가능할 것 같아요. 전 세계 음악을 아름답게 공유하고 싶습니다.” 서정적인 선율과 아련한 음색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그의 음악이 귓가에 여운을 남긴다.

글. 황정은 사진. 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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