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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사라진 매머드 극장의 잃어버린 영예
작성일
2013-03-1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677



고적에 풍모를 더하기

얼마 전, 대만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때마침 사진에서만 보았던 대만의 가장 오래된 영화관을 찾았다. 대만의 명동이라 불리는 시먼딩西門町의 한 복판에 1908년에 세워진 붉은 벽돌의 ‘홍루극장Red House Theatre’이 있다.‘팔괘조형’의 특이한 외형의 이 극장은 한 때 흑백무협 영화, 서양영화, 시대극을 상영해 저렴한 입장료로 특히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홍루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당시 학생의 공통의 추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 도시 재개발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급기야 화재가 발생하는 시련을 겪었다. 새로운 도약을 맞게 된 것은 2007년 11월의 일이다.
당시 대만의 시청 문화국은 시 문화기금회에 홍루극장의 운영 관리를 위탁하고 문화적인 활동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게 했다. 극장은 물론이고, 전시실, 창작공방, 달빛 영화관, 노천 카페 등 다원적인 지구를 마련해 새로운 문화공간의 거점을 마련했다. 이제는 창작의 중요한 공간이자 한 해 400만명 이상의 입장객이 방문하고, 매일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화려함을 되찾는 파리의 영화관

영화 탄생의 나라인 파리에도 이런 예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현재 파리에는 멀티플렉스 극장을 제외한 100여 개의 예술영화관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참고로 서울에는 멀티플렉스 체인 극장을 제외하자면 단지 6개 정도의 예술영화관이 있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파리시는 2003년에 룩소 극장Le Louxor이라는 아주 오래된 극장을 현대문화유산으로 인정해 사들였다. 1921년에 세워진 극장이니 무성영화부터 상영을 해왔던 곳이다. 1983년까지 이 극장은 그럭저럭 운영을 해왔지만 변화의 시대에 매머드의 멸종은 불가피했다. 처음에는 댄스클럽으로 업종이 바뀌었다가 이 또한 1987년부터는 영업을 중단하고 폐관 절차를 밟았다. 룩소 극장의 발굴과 구제가 벌어진 것은 2003년, 당시 베르트랑 들라노에가 파리 시장일 때이다. 시네마의 성전을 새로운 세기에 걸맞게 혁신하는 것이 필요했다. 룩소 극장은 이제 세 개의 상영관, 전시공간, 테라스를 갖춘 카페로 구성된 복합영화관으로 바뀌었다. 올해 대망의 재개관을 맞을 예정이라 한다.

기억의 건축물인 영화관을 보존해야 한다

대만과 파리의 사례에 비추어보면 서울은 지극히 후진적이다. 기억하건대 가장 끔찍하고 상징적인 사건은 2005년 12월에 벌어졌다. 굴삭기로 당시 등록문화재로 등록될 예정이던 스카라 극장에 기습적인 철거가 진행됐다. 등록문화재로 등록될 경우 치를 복잡한 절차때문에 건물 소유주가 극장을 허물어버린 것이다. 1935년에 건립돼 1946년에 수도극장으로 개명했고, 1962년에 스카라 극장으로 재개관한 후 근 40여년을 끌어왔던 스카라 극장이 그렇게 사라졌다. 스카라 극장을 마지막으로 한 때 서울의 명소였던 매머드 극장들(대부분 1000석이 넘었던 단관 극장들)은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1913년에 세워진 국도극장이 1999년 호텔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철거된 이래로, 1907년에 세워진 종로의 단성사는 2005년에 멀티플렉스로 개장했다가 폐관중이고, 그 옆의 피카디리 극장은 2004년에 멀티플렉스로 개장했다. 1956년 충무로에 개장한 대한극장은 당시 1,900석의 객석을 갖추고 70미리 영화를 상영했던 최고의 영화관 중 하나였다. 대한극장도 마찬가지로 2001년에 멀티플렉스로 변모를 꾀했다.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등록문화재 제도를 시행한 것이 2001년의 일이다. 역사적 유래와 보존가치가 현저한 근대문화유산으로 영화관을 지정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의 일이다. 서울의 경우는 파리나 대만과 달리 사라지는 극장에 대한 ‘추억’만을 이야기할 뿐 절멸에 대비해 혁신을 꾀하지는 못했다. 20세기의 문화, 역사와 대중적 기억이 함께한 기억의 장소였던 영화관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파리와 대만의 사례가 보여주듯 적극적인 행정적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의 컨텐츠만이 아니라 기억의 건축물인 영화관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만 한다.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가 지적하듯이 기억은 함께 나눌 공동의 장소가 사라질 경우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사진. 김성욱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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