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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북녘의 척박한 땅이 내려준 선물 - 평안도 향도계 놀이
작성일
2013-03-1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603

평안도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는 향도계 놀이

 

“맏묘느리(맏며느리) 작은묘느리(작은며느리) 다 나오라요. 동풍 살살 불어 오네까네 이제 파종문비(파종준비)를 설설 해야지 안카니? 나는 그러니 까네 단골네(무속인)를 모시러 가야 되갔어. 올해도 풍년을 맞이하려면 기원을 잘 드려야 되지 않갔네.” 평안도 향도계 놀이 보존회원들이 공연 연습에 한창이다. 잠깐 지켜본 정도였지만 향토색이 물씬 풍겨나는 사투리에 금새 빠져들었다.
향도계 놀이는 씨앗 고르기와 뿌리기, 모내기, 김매기, 계契놀이, 추수와 방아 찧기 등 6장으로 구성되고, 농사 과정마다 서도지방평안도, 황해도의 다양한 민요와 악, 춤, 극이 종합적으로 펼쳐진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농사일을 하면서 일어나는 사연들을 연희극으로 표현한 향도계 놀이. 평안도 사람들의 삶 자체를 연희극으로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척박한 땅을 일구는 마을 공동체의 지혜

농촌마을 장정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마을 공동의 노동조직이자 친목을 도모하는 조직체를 평안도 일대 사람들은 ‘향도계(또는 항두계)’라 한다. 구성원인 향도꾼은 신망이 높고 농사 경험이 많은 사람이 ‘계수契首’, ‘부계수’를 맡아 조직을 이끌었다.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장정들 한 명씩은 꼭 가입해야 했어요. 논매기 같은 일에 집단적인 노동력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한 거예요.” 조금만 가물어도 물이 마르는 평안도 지역이기에 물이 매우 귀했다. 논농사를 일구기가 쉽지 않은 자연환경은 이처럼 사람들이 향도계를 조직해 마을 공동체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게 했다. 향도꾼들은 오전과 오후 한 차례의 작업이 끝날 무렵이면 선소리꾼이 노래와 춤으로 향도꾼의 피로를 풀어주며, 사기를 돋우는 여러 가지 흥겨운 놀이를 펼쳤다. 이것이 향도계 놀이가 탄생한 배경이다.

“한해 농사일을 표현하는데 해학적인 내용과 농부들의 염원이 담겨있어요. 서도소리를 부르는데, 듣고 있으면 흥이 절로 나는 소리인가 싶으면서도 구성지고, 슬픈 느낌이 드는 듯 하면서 꿋꿋한 힘이 전해지죠. 그래서 서도소리가 민요 중에서도 어려운 편이에요” 인정 많기로 소문난 유지숙 보존회장이 이해할 수 있겠냐며 웃음을 보인다. “세상에 이렇게 어려운 소리가 또 있을까 싶겠지만, 이거야말로 서도 사람들의 정서에요. 서도 사람의 정서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면 향도계 놀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느낄 수 없어요.”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울림이 강한 서도소리. 서도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이 그들의 특별한 소리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단도 막지 못한 향도계 놀이의 생명력

평안도 사람들의 삶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향도계 놀이는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평안도 출신의 명창 김정연1913~1987과 오복녀1913~2001를 통해 전승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보유자였던 두 명창은 고향에서 배운 놀이에 대한 기억을 살려 재현해냈다. 오복녀 선생에게 서도소리를 배운 전수교육조교 유지숙 명창이 2000년에 한국서도연희극보존회를 설립하여 평안도 지역의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이어가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것도 고향의 전통문화에 대한 스승의 애착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남북 분단으로 인해 북한을 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1960년대에 재현한 ‘향도계 놀이’기에 유지숙 명창은 스승의 뒤를 이어 평안도의 사투리를 찾아내고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부어야 했다. “놀이에 사용할 가마니 한 장 조차도 구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어요. 사실 현재도 여건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그래도 고향을 등지게 된 수많은 실향민과 고향의 문화를 되새기는 이 일을 절대 포기할 수는 없어요.” 이미 북녘을 떠나버린 놀이를 찾아가는 여정이기에 선배들로부터 노래를 배우기도 하고 가사를 정리하면서 고향을 떠나온 이들을 위로하며 향도계 놀이를 전승해 가는 유지숙 명창. 2009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평안도 향도계 놀이가 지정되면서 50여 명의 전승자들과 함께 공연을 통해서 북녘에서 단절된 평안도의 들녘을 남쪽으로 옮겨온다. 이로써 평안도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이 땅에서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향도계 놀이는 북녘의 척박한 땅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준 선물이 되었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 평안도향도계놀이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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