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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판소리, 전용극장이 필요하다
작성일
2013-03-1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189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산출된 민중 예술의 하나로, 민중의 삶을 구체적으로 반영시켜 노래한 서민 예술이다. 판소리는 광대가 병풍을 두르고 돗자리를 펼친 마당이나 공연장에서 고수의 북 반주로 짧게는 3시간, 길게는 8시간 정도 걸리는 긴 이야기를 몸짓을 섞어가며 흥미롭게 노래하는 판의 예술이다. 연행하는 형태로 보자면 음악극의 모습이기도 하며, 담고 있는 내용으로 보자면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주는 서사극이기도 하다.
‘판소리’는 ‘판’과 ‘소리’ 두 단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판’은 장면이나 무대 또는 여러 사람이 모인 공간을 뜻한다. 유흥을 위하여 마련된 이 공간을 우리는 ‘놀이판’이라고 부른다. 전통사회의 굿판에서 광대들이 벌이는 판놀음에는 풍물이나 줄타기, 그리고 꼭두각시놀음 등의 여러 레퍼토리가 있었으며, 판소리는 명창이 청중을 대상으로 부르는 소리의 측면이 강화된 연행예술演行藝術이었다. 그 후 판소리는 이 판놀음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개인집 안마당이나 고을 관아 또는 궁중의 정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인 판에서 독자적으로 공연하게 되었다.

광대는 오른 손에 부채를 들고 소리를 하는데, 잘 들어보면 노래로 하는 부분과 말로 하는 부분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노래로 부르는 부분을 ‘창唱’이라 하고, 말로 하는 부분을 ‘아니리’라고 한다. 또 광대는 서서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연극적 동작도 하는데, 이를 ‘발림’, 혹은 ‘너름새’라고 한다. 고수는 북을 쳐서 반주하면서 소리 중간 중간에 ‘얼씨구’, ‘좋다’ 따위의 추임새를 연발한다. 이점은 춤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무용수가 춤을 추고, 악사가 반주를 하면 그 음악과 춤 사이의 공간에 관객이 ‘추임새’를 한다. 서양식 공연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배우와 객석의 호흡이 바로 ‘추임새’다.
전통적인 판소리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소리꾼과 관객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공간에 있기 때문에 관객이 공연에 참여하는 방식이 자유로웠다. 우리에게 서양식 극장이 생겨난 것은 20세기 들어서이다. 원각사라는 극장이 생겨났고, 여기에서 판소리와 무용, 창극 등이 공연되었다. 새로이 도입된 프로시니엄proscenium 무대에 판소리가 공연되면서 공연의 조건이 많이 달라졌다. 프로시니엄 무대는 본질적으로 무대와 객석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극적 환상을 주기 위하여 무대에는 여러 가지 비밀스러운 조명과 장치들이 숨겨져 있다.

이렇게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면서 우리 공연문화 특유의 ‘추임새’도 자연스럽게 그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서양식 극장은 작품이 상연될 때는 쥐죽은 듯 조용히 있다가 공연을 마치면 비로소 박수를 쳐서 배우들을 격려한다. 이와 같은 분리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허규와 같은 연출가는 프로시니엄 무대에 계단을 설치하여 배우가 객석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관객이 무대위로 올라가는 일이 있었다. 전통 탈춤이나 마당극의 움직임을 프로시니엄 무대에 적용시켜서 단절된 거리를 회복하고자하였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최소화하면서 배우와 관객이 묻고 대답하고, 노래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하나의 양식으로 시도해보았다. 극장에서 배우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객이 소리쳐 대답하는 방식은 우리 전통에서 마당이 가졌던 기능을 빌려온 것이다.
무대를 마당화하고자 하는 이와 같은 시도는 생각만큼 관객과의 거리를 가깝게 좁혀주지 못했다. 프로시니엄 무대에서의 마당극은 쉽게 양식화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한옥이나 마당에서 판소리를 정기적으로 공연할 수도 없다. 판소리는 특유의 전승문법이 있다. 소리판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한국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개복청이라 하여 뒤편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적당히 느슨한 공간이 있다.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내는 방식은 프로시니엄 극장에서는 무척 어색하다. 아무리 추임새를 요구해도 그 공간의 틈새를 채우기가 쉽지 않다. 아직도 판소리 공연에 적합한 전용극장이 우리에게 없다.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인류 무형문화유산이다. 그런데 그것이 제대로 공연될 수 있는 전용극장이 없다는 것이 비극이다. 우리는 삼백년 이어져 내려온 판소리를 오늘날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전용극장이 아직도 없다.

글·사진. 유영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사진. 서울대학교박물관, 노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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