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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의 설화를 찾아서 - 특집
작성일
2005-12-0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525



인간의 온기와 삶의 맥박이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설화를 찾아서

인간에 대한 예의


   이야기란 무엇인가. 존재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 이야기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실재하는 것뿐 아니라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까지, 자신과 어울리는 이야기와 만남으로써 찬연히 빛을 내고 의미를 발한다.
   세상을 이루는 여러 사물들, 예컨대 산이나 강, 바위, 굴, 연못 같은 자연물이나 마을, 절, 탑, 종, 그림 같은 인공물들과 각별히 친숙한 이야기가 전설이다. 무언가 범상치 않은 모습을 한 사물에 대하여 사람들은 예외 없이 특별한 유래나 곡절을 전해왔다.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드는 경이의 이야기들이다. 잘 믿기지 않는 내용이 많고 터무니없어 보이는 사연들도 있지만, 그 이야기들은 소홀히 흘려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실 여부는 어떨지 몰라도, 인간과 삶에 얽힌 ''진실''을 깊게 함축하고 있는 이야기가 전설이다.
   문화재에 얽힌 전설이 적지 않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편(아사달)과 만나기 위해 연못에 탑 그림자가 비치기를 한없이 기다리다가 연못(영지)에 빠져 죽은 아내(아사녀)의 사연을 전하는 무영탑(석가탑) 전설. 청명한 소리를 얻기 위해 어린아이를 쇳물에 넣어 종을 주조했더니 구슬픈 ''에밀레'' 소리를 내게 되었다고 하는 에밀레종(성덕대왕 신종) 전설. 눈 덮인 산 속에 혼자 남겨진 다섯 살 아이가 관음보살과 어울려 지내면서 무사히 겨울을 났다고 하는 설악산 오세암 전설. 한 수도승이 호랑이가 보은의 뜻으로 업어 온 여인과 남매의 인연을 맺어 평생을 함께 수도하며 살았다는 사연의 계룡산 남매탑 전설 등.
   석가탑과 남매탑, 에밀레종, 오세암 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조형물이자 소중한 문화재이지만, 전설의 경이로운 사연과 어울려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인간의 온기가, 삶의 맥박이 스며들게 된다고나 할까. 아사달과 아사녀의 안타까운 사연은, 에밀레종에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사연은 예술 창조의 이면에 얽힌 시련과 고통을 일깨우면서 인생과 예술의 본질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차가운 조형물은 우리 가슴에 뜨겁게 살아오는 것이다. 세속의 흐림을 넘어선 천진무구함과 구도자적 자세를 화두로 삼아서 우리 마음을 감동으로 일깨우는 남매탑과 오세암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그 이야기의 맛을 음미하고자 애써 계룡산이나 설악산 등성이를 찾아 오르는 이들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필자는 옛이야기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처럼 곡진한 삶의 사연을 담은 이야기들이 유형의 조형물 못지않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고 믿고 있다. 굿이나 탈춤, 판소리처럼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지만, 전설 또한 소중한 무형의 문화재로서의 의의를 지닌다고 하는 생각이다. 어찌 그런가 하면, 그 속에 오랜 세월에 걸친 삶과 문화의 정수가 응축돼 있는 터이므로. 전설은 어느 누가 하루아침에 만든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 세월 속에서 정련되는 가운데 사람들의 세계 인식을, 인간과 삶에 얽힌 진실을 응축하게 된 이야기다. 글과 문물, 놀이 등 문화로 전해지는 된 역사가 있는 반면 말로 전해지는 역사도 있다. 그렇기에 전설 역시 그 안에 담긴 내용이 허구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더라도 이는 분명 우리 조상들로부터 대물림 된 계량 못할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전설이 인간과 삶의 진실을, 역사의 진실을 어떻게 담아내는지 두어 편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임진왜란 때의 두 명장 신립과 이순신에 얽힌 이야기다. 지략이나 용맹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한 낯선 여인과의 인연에 얽힌, ''인간에 대한 예의''를 화두로 삼는 이야기다.
   신립 장군이라고 하면 누구나 충주 탄금대를 떠올릴 것이다. 탄금대는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으나, 임진왜란 때 신립이 전투를 치른 곳으로 더 유명하다. 신립은 요새인 문경새재를 포기하고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을 맞았다가 크게 패했으니, 그것은 임금의 피난과 전 국토의 유린으로 이어진 뼈아픈 패전이었다. 신립이 왜 문경새재를 포기하고 탄금대에 진을 쳤는가 하는 것은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거니와,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한 여인의 원한에 얽힌 전설을 전하고 있다.



   이것이 실제 있었던 일인가 하면 물론 그렇게 보기 어렵다. 신립이 탄금대에 진을 쳤다가 패전해 죽었다는 것 이외의 다른 내용은 사실로서의 근거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허탈해 보이는 이야기를 지금껏 전설로 전하는 의미맥락은 무엇일까.
   얼핏 앞뒤가 맞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지만 실은 그 속에 인간의 진실, 역사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이 필자의 시각이다. 돌아보면 신립의 행위에 명분에 어긋날 일이란 없었다. 위험에 빠진 처녀를 구해주었고, 사리에 맞지 않는 요청을 결연히 뿌리쳤으니 공명정대하였다. 그러나 진정 그러할까? 신립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한 것일까? 산중에 외따로 남은 여인이 어렵게 내민, 자신을 거두어 달라는 소청. 설사 범람한 욕망이고 무리한 요구라 해도 그리 뿌리칠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진심을 팽개친 일이었다. 죽음보다 더 아플 수 있는 좌절감, 또는 수치심! 어찌 한이 남지 않을까. (신립은 뒤늦게라도 달려와 불탄 여인을 보듬고 수습해 주어야 했다. 그런데 그리 하지 않았던 터다. 제 소관 아니라는 듯.)
   이 사연이 역사적 사연과 연결될 가능성은 잘 안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연관이 없지 않다. 여린 한 여인을 지켜주지 못한 그 사람. 어찌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 배수진을 쳐 죽음을 무릅쓴다는 명분을 선택했고 충신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으나, 그 실상은 수많은 부하의 죽음이었고 왜적에 의한 조선 백성의 유린이었다. 여인의 죽음과 탄금대의 죽음은 이렇게 연결되는 터이니, 여인이 싸움을 방해했다는 것은 그 표면적 서사일 뿐이다. 탄금대의 패전은 대의명분을 앞세우다가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신립으로 표상되는 지배권력의 행태가 가져온 필연적 사건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이 전설 깊은 곳에 담겨 있는 역사인식이 된다.
   임진왜란에 얽힌 전설에 있어 그 의미가 신립과 통하는 인물은 무척 많다. 민심을 얻고 있던 최고의 명장 김덕령을 역적으로 몰아 목숨을 빼앗은 조정의 권신들. 조헌과 영규의 싸움을 오히려 방해하여 칠백 의병을 죽음으로 몰아간 공주감사 등등. 역사의 진실을 깊이 꿰뚫어 전율까지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이다.
   만약 이러한 이야기들뿐이라면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한 일일까. 그 대척점에 이와 다른 사연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니 그나마 위로를 받게 된다. 백성을 지켜준 진정한 장군에 관한 이야기. 다른 무엇보다도 상사뱀에 얽힌 이순신의 전설을 들고 싶다.



   처녀가 이순신을 만나기를 소망한 것은 명분이 없는, 범람한 욕망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이순신으로서는 무시해도 그만인 일이었다. 그 뜻을 받아주기로 하면 오히려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터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명분을 따지기에 앞서 한 인간의 애절한 소망이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그 마음 받아주고 풀어주는 것, 그것이 인간에 대한 진정한 예의다. 그리하여 이순신은 처녀의 집으로 향하였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누구라도 그리 할 수 있겠다. 놀라운 것은 그 뒤의 일이다. 뱀으로 변한 여인과 밤을 함께 지낸 일 말이다. 그 집을 찾아오기 위해 최선을 다한 터이니 할 일 다 했다고 돌아설 수도 있으련만, 이순신은 끝까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버리지 않았다. 징그러운 뱀이 도사린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의 몸을 감는 뱀의 행동을 묵묵히 받아주는 그의 행동은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 선택을 통해 원한은 거꾸로 은혜가 되었으니, 신립의 사연에 있어 은혜가 원한이 되었던 것과 반대가 된다. 이것이 바로 전설이 전하는 인간사의 섭리다.
   이순신에 관한 전설과 역사적 진실의 연관이 어떤가 하면, 그 연결논리 또한 자명하다. 저 이름 없는 한 여인을 진정으로 품어주고 지켜주는 존재였으니, 이 땅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군사들의 안위를 책임지기 위해 오죽이나 마음을 쓰고 노력했까 말이다. 처녀가 용이 되어서 이순신을 도왔다지만, 그것은 하나의 서사적 상징일 뿐이다. 이순신은 스스로 그 자신을 도운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사실!
   날이 쌀쌀해져서 마음까지 움츠러드는 계절, 저 이순신의 이야기는 필자로 하여금 주변의 사람들을, 그들의 진심을 얼마나 마음으로 이해하고 품어주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방문을 열고 뱀이 도사린 방으로 들어가는 이순신의 발걸음. 아마도 그것은 평생의 화두가 되어 나의 영혼을 일깨울 것이다. 무형의 소중한 문화재, 전설의 힘이다.
   끝으로, 보너스 하나. 상사뱀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 춘천 청평사 삼층석탑(일명 공주탑)에 얽힌 전설을 소개한다.



   청평사는 소양강 댐에서 배를 타면 갈 수 있는, 호숫가 절경에 자리 잡은 절이다. 뱀이 이곳에서 공주의 몸을 잠시 벗어난 것도 그 경치에 취해서일지 모르겠다. 그 절의 정취는 슬픈 전설에 의해 더욱 그윽해지고 있으니, 한번 훌쩍 찾아가서 문화재도 둘러보고 옛날의 그 아픈 사랑도 되새겨볼 만한 일이다. 공주탑을 찾아가 소원을 빌면 남녀의 사랑이 훌륭히 성취된다고 하니 더욱 그러하다. 어찌 그렇지 않을까. 정성을 실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 곧 사랑이니 말이다.

신동흔 / 건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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