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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려 14세기 중반의 역사상을 보여주다 국보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작성일
2023-06-29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90

고려 14세기 중반의 역사상을 보여주다 국보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보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후 발원문을 포함한 복장유물이 추가로 연구됨에 따라 제작시기와 발원자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발원문에는 1346년(고려 충목왕 2)이라는 정확한 제작시기가 있어, 고려 후기 불상 연구의 절대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01.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뛰어난 예술적 조형성과 높은 기술적 완성도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이 시기 불상 중에서도 뛰어난 예술적 조형성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고려 후기 불상조각 중 정확한 약기인(藥器印)을 취하고 있는 약사여래의 도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머리와 이목구비, 신체와 불신의 표현 등에서 14세기 불상의 전형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주조기술법에 있어서도 내외부의 주조결함이 거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고려 후기에 제작된 불상은 대부분 아미타 정토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 불상 역시 이러한 신앙적 배경과 더불어 고려 후기 유일의 금동약사여래상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따라서 이 불상을 통해 당시 아미타 정토 신앙뿐만 아니라 약사 신앙의 흔적을 분명하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신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02, 03.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유물

1,100여 명의 발원자 정보가 담긴 복장유물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의 지정가치를 검토하는 데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복장발원문에 기재된 풍부한 인명정보를 들 수 있다.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에는 1,100여 명에 달하는 발원자의 정보를 담고 있다. 이는 고려 후기 발원문 중 최대 규모이며, 성불원문을 지은 백운경한을 비롯한 시주자 인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문헌 자료가 절대 부족한 고려사 복원에 중요한 사료로 활용될 수 있다.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의 제작을 주도한 계층은 고려 왕족을 비롯해 하급무관과 군부인으로 보이며, 이들은 몽고침탈기 동안 대표적인 불사(佛事) 주도층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본인이나 가족 중 전쟁에 직접 참전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불사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무병장수와 전쟁 중에 죽은 친족의 극락왕생을 발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 중에는 공민왕의 몽고식 이름인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처럼 몽고식 이름이 눈에 띄는데, 당시 고려 사회에 스며든 몽고 풍속의 실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러한 정황 등을 종합해 볼 때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미술사뿐 아니라 불교사, 사회사적 측면에서도 고려 14세기 중반의 역사상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국보로 가치가 충분하다.




글. 손영문(유형문화재과 상근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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