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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명승의 심미적 가치
작성일
2024-06-27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8

한국 명승의 심미적 가치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체제가 전환되면서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재검토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국가에서 지정해 보호하는 유산에는 국보, 보물과 함께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및 국가무형유산, 국가민속문화유산,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이 있는데 명승은 당당하게 그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 다만 다른 유산에 견주어 볼 때 명승은 일반 국민에게는 상대적으로 인식이 부족한 듯하다. 이번의 역사적인 큰 변화에 발맞추어 그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명승이 우리 국민과 외국인에게 더 사랑받고 활발하게 활용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01.영광 불갑사 산지 일원 전경

심미성, 역사성과 인문적 가치를 지닌 뛰어난 자연경관, 명승

현재까지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명승은 135건이다. 1970년 명주 청학동 소금강이 처음 지정된 이후 가장 최근에는 영광 불갑산 산지 일원이 지정되었다. 초기에 지정된 10건을 빼면 명승 대부분이 최근 20년 사이에 지정되었다. 그동안 명승이 국가유산의 주요 항목에 포함되어 있기는 했으나 지정 목록이 부족하여 그 존재감이 대단히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국민이 명승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한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년 사이의 노력으로 지정 목록도 어느 정도 갖추어졌고, 명승의 다양성도 크게 확대되었다. 더욱이 최근 10년 사이에는 지정된 명승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에 따라 국민적 관심이 쏠려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명승은 어떤 의미를 지녔고, 어떤 가치가 있을까? 국가유산청의 설립에 발맞추어 새로 제정된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서 명승을 새롭게 정의하였다. 먼저 ‘자연유산’이란 ‘자연물 또는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조성된 문화적 유산으로서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가 큰 동물, 식물, 지질, 명승 등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였다. ‘명승’은 자연유산의 일부로서 ‘자연경관: 자연 그 자체로서 심미적 가치가 인정되는 공간’과 ‘역사문화경관: 자연환경과 사회·경제·문화적 요인 간의 조화를 보여주는 공간 또는 생활장소.’ 그리고 ‘복합경관: 자연의 뛰어난 경치에 인문적 가치가 부여된 공간’ 등 세 가지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그 세 가지 항목에 속한 자연유산으로서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가 인정된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정의는 곰곰이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직전까지 적용된 「문화재보호법」에서 명승을 ‘경치 좋은 곳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난 것’으로 단순하게 정의한 것에 비교하면 훨씬 구체적이고 정교하다. 새로운 정의에 따르면, 명승은 자연유산에 속하면서도 단순한 자연유산이 아니라 다음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하나는 심미적 가치가 있는 자연유산이고, 하나는 역사적 의의를 부여받은 문화경관이며, 하나는 인문적 가치를 지닌 경관이다. 세 가지 규정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명승이란 심미적이고 역사성과 인문적 가치를 지닌,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02.명주 청학동의 소금강 03.남해 금산

명승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활용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명승(名勝)은 단순히 경관이 빼어난 승경(勝景)을 의미하지 않고, 심미적 감상의 대상으로서 역사 문화적으로 정립된 승경을 말했다. 새로운 정의는 이런 전통적 명승 개념에 부합하면서도 더 정밀하게 표현하였다.


이처럼 명승은 역사성과 인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으로서 대중적 확장성이 크다. 그런데도 다른 문화유산에 비교할 때 관심이 부족하였고, 활용과 연구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새로운 제도의 정착과 함께 명승 분야는 더 적극적으로 명승 자원을 개발하고 과감하게 지정하여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대중의 심미 활동에 부응하도록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관광이 생활화된 문화에서 명승은 크게 주목받을 관광 자원중 하나이다. 명승은 전국에 골고루 분포해 있고, 거주민이 적은 지역에 많이 자리 잡은 특성이 있다. 도시집중이 가속화하고, 인구가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재 상황에서 명승의 확대와 활용은 악화의 추세를 늦추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지정된 명승 135건은 누정이나 원림, 폭포, 나루 등 규모가 작은 것도 있으나 삼각산이나 마이산, 청량산, 남해 금산, 장흥 천관산과 같은 산 전체, 오륙도 등대섬 등 섬 전체도 있고, 구룡령 옛길, 죽령 옛길, 대관령 옛길 등 옛길, 거제 해금강, 진도의 바닷길, 영월 어라연 등 바다와 계곡 등 넓은 영역에 걸쳐 있기도 하다. 영역이 넓은 경우에는 흔히 명승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향유하기가 쉽다. 명승으로 한데 묶여있기는 하나 다양하고 차별성이 크다. 명승은 그 자원을 소유한 각 지자체가 보유한 가장 특색 있는 자연적·문화적 자산이므로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활용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


04.석파정 05.거제 해금강

명승의 매력, 있는 그대로 즐기고 교감할 수 있다는 것

명승은 일반인이 어렵지 않게 향유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전문적 지식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문화유산도 적지 않다. 반면 명승은 선행하는 지식과 체험이 없어도 즉각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정서적으로 교감하기가 수월하다. 명승의 향유는 현대사회의 문명에 지친 사람의 정신적 피로를 보듬는 치유 기능이 숨어 있다. 명승의 심미적 기능은 자연에 뿌리를 둔 아름다움을 접함으로써 심리적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명승의 체험은 심리치료의 한 가지 방법이다.


이렇게 심미적 가치가 탁월한 명승이 적지 않으나 그중 성북동 별서는 독특한 가치를 지닌 명승이다. 이 별서는 메가시티 서울의 도심에서 매우 가까워 서울 시민에게 접근성이 좋다. 빌딩숲과 아파트숲, 번잡한 도로로 뒤덮인 대도시에서 고궁과 공원을 제외하면 전통적 자연미를 잘 보존한 정원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성북동 별서는 고궁이나 현대적 공원과도 차별화한 정원이고, 지방의 인가가 많지 않은 곳에 위치한 별서와도 차별화한 탁월한 가치를 지닌 정원이다. 한적한 성북동 단독주택가를 지나쳐 별서의 문을 들어서면 도시의 번잡함과 소란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 펼쳐진다. 문을 들어가 돌다리를 건너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천천히 걸어 숲길로 올라가노라면 마음속에 숨겨두고 있는 비밀의 정원이 아마도 이런 곳이겠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06, 07.성북동 별서

근대 이전에는 서울 곳곳에 성북동 별서와 같은 개인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식민지 이후 대부분 파괴되었고, 급격한 도시화로 그나마 남아 있던 곳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서울이 600년 이상의 역사를 거쳐 온 도시임을 알게 하는 유산이 고궁이나 성균관 등등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많던 조선시대 서울의 자연미와 사대부의 철학과 미감이 깊이 스며 있는 개인 정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겨우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성북동 별서와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석파정이다. 두 곳 모두 18세기에 한양 교외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19세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앞의 별서는 고종 당시에 내관이었던 황윤명(黃允明)이 1884년 이전부터 조성하였고, 이후에도 왕실과 깊은 관련을 맺는 곳임을 확인하였다.


성북동 별서는 계류를 중심으로 정원을 조성한 전통 정원의 전형적 사례이다. 18세기 이후 한양의 대표적 교외 유원지의 핵심 정원 유산으로서 인문적 가치와 고종 시대의 내시가 경영한 정원이라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 명승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상징하는 작은 사례로서 성북동 별서를 많은 시민이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글·사진. 안대회(성균관대학교 교수, 한국명승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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