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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춘천 호반 너머 낭만 이면의 시간 속으로
작성일
2024-06-27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1

춘천 호반 너머 낭만 이면의 시간 속으로 춘천에는 으레 ‘낭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를 가로질러 강이 흐르고, 산줄기 사이사이 골짜기로 크고 작은 호수가 어우러지는 춘천의 자연이 계절 따라 아름다운 경관을 그려내는 덕이다. 그 춘천을 거닐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단순히 낭만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춘천이 가진 서사의 밀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다양한 시간의 층위를 감지하게 하는 흔적과 춘천 사람들의 ‘삶 자리’는 들뜬 발걸음을 조금씩 늦추게 했다. 01.소양강 처녀상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우리나라 전역에서 6·25을 겪지 않은 땅은 없다. 춘천이라고 예외였을 리가. 특히 춘천 일대에서는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연일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다. 주한 미군 주둔지인 ‘캠프 페이지’도 그때 조성됐다. 2005년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2007년 캠프 페이지 부지가 춘천시에 반환되었지만 옛 캠프 페이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전쟁과 미군의 자취를 발견하게 된다.


소양2교 초입에 위치한 소양강 처녀상 앞에 기념비 하나가 세워져 있다. ‘포니 브릿지 기념비’다. 소양2교 전신인 포니 브릿지는 전쟁 당시 소양강 이편과 저편 사이 군사 작전에 필요한 물자와 인원을 지원·수송하고자 미군 62공병대대가 건설한 목교다. 휴전 후에는 도시민의 이동은 물론이고 경제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세월이 흐르고 노후되면서 1997년 현재의 소양2교로 새로 지어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는 어떻게 가능했는지 전쟁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를 이 기념비에 새겼다.


02.번개 시장

지금의 포니 브릿지 기념비 아래쪽에는 나루터가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매일 새벽장이 섰다. 호수 건너편의 서면에서는 주로 농사를 지었는데 이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져다 난전을 펼쳤다. 새벽녘 번개처럼 짧은 시간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져 번개시장이라 불렀다. 장의 규모는 날로 커졌는데 나루터 앞은 캠프 페이지 군 차량이 수시로 오가는 길이기도 해 사고가 잦았다. 이에 1981년 번개시장은 나루터에서 걸어서 5분여 거리에 있던 연탄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마련된 공터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농업 환경 변화와 도심 구조가 재편되면서 새벽시장의 위상은 축소되고 있지만 번개시장에서는 봄·여름·가을 주말 야시장 운영으로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캠프 페이지 일대 소양동은 춘천의 오랜 부촌이었다. 오늘날의 강원도청 자리에 춘천관아가 있었는데 소양동에서 지척이다. 소양동 주변을 기와집골이라는 별칭으로 부른 데서 그 위상이 짐작된다. 캠프 페이지가 들어서고 1980년대까지 골목골목 상가들이 흥하며 춘천의 중심가 역할을 했다. 그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마치 복고풍 영화 세트장이 아닌가 싶은 풍경이 펼쳐진다.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주변으로 고층 아파트가 하나둘 들어서고 있으니 이 정겨운 풍경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03.춘천 소양로성당 04.춘천 소양로성당 근처에서 바라본 소양로 2가

호반 물안개 타고 산허리 돌아 걷는 길에서

춘천 도심에는 근대기의 모습을 그려보게 하는 상징물도 여럿이다. 소양로 골목 따라 봉의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춘천 소양로성당(국가등록문화유산, 사진01)이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이다. 1949년에 설립된 소양로성당은 1956년에 완공됐다. 오늘날 근대문화유산으로 일컬어지는 교회 건축물은 근대기에 지어졌지만 건축 양식은 중세풍이 다수다. 소양로성당은 그 시절 우리나라 교회 건축에서 보기 드물게 장식을 배제한 단순한 형태와 기능을 고려한 공간 배치 등 근대적 양식을 적용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강원도청에서 춘천시청으로 이어지는 길에 위치한 춘천미술관에도 눈이 간다. 1898년 미국 남감리회는 춘천을 거점으로 강원 지역 선교를 시작했다. 1907년에 병원, 학교, 예배당, 선교사 주택 등을 건립했는데 전쟁으로 기존의 예배당이 파괴되자 교회에서는 병원 건물을 매입하고 리모델링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이를 다시 춘천시에서 매입해 2000년부터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붉은벽돌 건물과 기념수로 심었다는 수령 100년 남짓의 위령수가 한데 어우러져 상당히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춘천미술관 맞은편 새하얀 건축물(춘천 강원도지사 구 관사, 국가등록문화유산, 사진03)도 예사롭지 않다.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면 출입구의 캐노피를 지지하는 V자 모양 기둥이며, 한쪽 벽면이 반원형인 것 등 독특한 재미가 느껴지는데, 이 건물은 1964년 강원도지사 관사로 건립됐다.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관사와 비교했을 때 철근콘크리트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건축 기법을 적극 도입했고, 비대칭의 구조와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건축물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2004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현재는 춘천시청 부속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05.춘천 강원도지사 구 관사 06.약사동 화재감시탑(망대)

언제고 나침반이자 등대였던 존재가 있음을

춘천시청에서 춘천 원도심에 해당하는 명동과 중앙시장을 지나 약사동 망대골목으로 향한다. 망대골목은 말 그대로 망대가 있는 골목이다.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이 세운 다락집 형태의 구조물을 망대라고 한다. 언덕배기로 이어지는 약사동 가장 높은 곳에 이 망대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다.(사진04) 일제강점기 약사동에 서대문형무소 춘천지소가 설치되었던 데 기반하여 그간 재소자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이야기가 전해져왔다. 그러나 또렷이 남아 있는 기록은 없다. 그런 가운데 망대의 역사를 추적해 온 춘천학연구소에서는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만을 근거로 했을 때 1961년경 화재 감시 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07.소양로 골목

약사동 망대골목은 6·25 이후 피란민이 모여들어 형성한 마을이기도 하다. 망망대해를 헤쳐 온 뱃사람들이 등대 불빛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처럼 기댈 언덕을 찾던 피란민에게 망대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게 된다. 망대 주위를 한참 맴돌았다. 사자 문고리가 달린 녹슨 철제 대문, 낮은 담장 위로 얼기설기 휘감아 놓은 가시 철망, 안채에서 분리되어 마당 한쪽에 설치된 화장실 등 언제 철거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오래된 삶의 흔적 사이로 정성 들여 가꾼 화단과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사진 05) 그래, 아무리 팍팍하고 고단한 시절 속에서도 우리는 기어코 나침반이자 등대를 찾아내 그 시절을 꿋꿋이 살아내는 존재이지. 이렇게 낭만 이면의 시간 속을 거닌 끝에 다시 낭만을 품에 안는다.




글. 서진영(《하루에 백 년을 걷다》 저자) 사진.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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