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불火의집가마[窯], 비색을 품다
작성일
2012-09-1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089


고려시대의 문신 이규보(李奎報, 1168~1241년)가 지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운을 따라 지은 녹색자기술잔[綠 杯]에 관한 내용이 있다.


 나무를 베어 남산이 빨갛게 되었고  落木童南山  선명하게 푸른 옥빛이 나니  瑩然碧玉光
 불을 피워 연기가 해를 가렸지  放火烟蔽日  몇 번이나 매연 속에 파묻혔나  幾被靑煤沒
 푸른 자기술잔을 구워내  陶出綠杯  영롱하기는 수정처럼 맑고  玲瓏肖水精
 열에서 우수한 하나를 골랐네  揀選十取一  단단하기는 돌과 맞먹네  堅硬敵山骨


『東國李相國集』卷八古律詩中金君乞賦所綠杯用白公詩韻同賦부분


흙, 물, 바람, 불로 그릇을 품는 가마

이규보가 살았던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전반에는 ‘푸른 옥빛이 나는’ 비색청자와 흰색과 검은색으로 여러 가지 문양을 새긴 상감청자가 만들어졌다. 고려청자의 비색에 대해서는 1123년(인종 1년)에 중국 북송 휘종徽宗황제의 명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徐兢이 한 달 남짓 동안 개성에 머물며 관찰한 것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언급한 바 있다.

즉 여러 가지 그릇에 대한 설명 중 술잔 부분에서 ‘도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하는데, 근년에 만듦새가 더욱 좋아졌다陶器色之 者, 麗人謂之翡色, 近年以來, 制作工巧.’고 하여 ‘푸른색의 도기’로 표기한 청자의 색상을 고려인들이 ‘翡色(비색)’이라고 부른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는 청자의 푸른색을 ‘秘色(비색)’이라고 표기한 중국과 달라 당시 고려청자의 색상이 서긍에게도 특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하여 시인 이규보는 ‘수정처럼 맑고 영롱한’ 청자술잔의 옥빛이 해를 가릴 만큼 많은 연기가 피어오르도록 불을 지핀 가마에서 나왔음을 노래하였다.

한반도에서 그릇을 불에 굽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이다. 당시에는 땅바닥에 자갈돌을 깔고 토기와 땔감을 얹은 다음 진흙이나 동물의 배설물을 덮고 불을 지펴서 그릇을 구운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가마라는 특정한 구조가 없이 노천에서 그릇을 구웠기 때문에 그 흔적을 노지爐址라고 한다. 노천에서 구운 토기의 색상은 붉은 갈색인데 이는 땔감이 연소되는데 필요한 산소가 충분하게 공급되는 환경에서 흙 속에 포함된 철성분(Fe₂O₃)이 산소와 반응하여 갈색을 띠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을 산화염酸化焰번조라고 하며, 대표적인 토기에 빗살무늬토기가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땅바닥에 원형 또는 타원형의 얕은 웅덩이를 판 수혈요竪穴窯에서 토기를 구웠으나 밀폐된 공간을 형성한 본격적인 가마구조는 아니다. 그러나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초기 철기시대에는 긴 도랑형태의 구덩이에 천장이 있는 구조인 실요室窯에서 토기를 번조하여 변화가 나타났다.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는 무늬가 없는 무문토기이다.

철기시대인 원삼국시대(서력기원 전후-300년경)에는 토기제작에 물레를 사용하고 천장이 있는 지하식 등요登窯에서 번조하였다. 필요에 따라 공간을 폐시킬 수 있는 가마구조에서는 열을 가둘 수 있기 때문에 노지나 수혈요에 비해 높은 온도에서 번조하여 강도가 강한 토기를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료가 연소될 때 산소의 공급을 일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회색 또는 회청색의 토기를 구울 수 있는데 이를 환원염還元焰번조라고 한다.

즉 번조과정에서 연료의 양에 비해 산소의 공급을 적게 하여 불완전연소를 유도하면 토기에 포함된 산화제인 철(Fe₂O₃)이 산화철(FeO)로 변화되어 토기의 색상은 회색 또는 회청색을 띤다. 이처럼 지하식에서 출발한 등요구조는 가마의 일부분이 지상에 드러나는 지상식구조로 변하며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토기문화를 형성하였다.


불, 비색을 탄생시키다

토기의 색상은 가마구조에 따른 번조환경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밀폐된 가마구조에서 강도가 높은 회색계열의 토기번조는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다. 철기의 제작 또한 철광석에 함유된 철성분을 녹여낼 수 있는 용광로시설을 전제로 가능하므로 열熱을 모으는 능력, 즉 불을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의 확보가 토기뿐만 아니라 자기를 제작하는 중요한 조건임을 알 수 있다.

토기와 자기를 구분하는 첫 번째 기준은 특정한 성분으로 조합한 유약을 입혔는가의 여부, 즉 인공시유의 유무이다. 토기는 부분적으로 연료 및 태토에 함유된 성분의 변화로 우연히 유리질막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유약을 입히지는 않는다. 이에 비해 자기는 반드시 미리 제작된 유약을 시유施釉한다.

한반도에서는 고려시대 초기인 10세기 전반에 중국 절강성 월주요越州窯계통의 청자를 제작한 오월국(907~978년)의 기술전파로 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중국 월주요의 청자는 초벌구이를 하지 않고 건조된 그릇에 유약을 입혀 한 번만 번조하는 단벌구이를 하였으며, 벽돌로 축조한 길이 40m 이상의 대형 전축요塼築窯에서 제작되었다.

경기도 시흥, 용인, 여주 그리고 황해도 원산리 등 한반도 중서부지역의 초기 자기가마는 모두 전축요로 시작되어 월주요의 자기제작기술이 고려에 직접 이전되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중국과 고려에서 제작된 청자의 색상은 녹갈색이나 황갈색인데 이는 규모가 큰 전축요에서는 녹색 또는 청색을 내기 위한 환원염 번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고려의 장인들은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사이에 가마의 규모를 길이 10m 내외, 너비 1m 내외로 축소하고 재료를 벽돌에서 진흙으로 바꾸었다. 또 중국과는 달리 초벌구이 후 유약을 시유하고 두벌구이를 하였다. 가마의 규모가 작을 때에는 클 때보다 환원염 번조에 유리하고, 초벌구이 상태에서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유약을 두껍게 입힐 수 있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고려의 장인들은 비색이라는 아름다운 색상의 청자를 만들었으며 그 시기는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전반 경이다. 이는 한반도에서 붉은 갈색의 토기를 굽기 시작한 이래 불을 다루는 능력에 있어서 마지막에 도달할 수 있는 경계라 할 수 있으며, 중국으로부터 자기제작기술을 터득한 이래 불과 백여 년 후의 일이다.


연기와 매연 속에서 진흙을 푸른 옥으로 바꾸다

푸른색 청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을 때는 방식이 환원염번조이어야만 한다. 환원염 번조는 처음에 산화염 분위기로 불을 때다가 가마 안의 온도가 950℃ 내외 일 때 환원염 분위기로 전환한다. 아궁이를 최대한 막아 산소의 유입을 차단하고 가마의 측면에 있는 열고 닫을 수 있는 불창구멍을 통해 장작을 투입한다. 가마 안의 불이 불완전연소방식인 환원염으로 전환될 때 가마 내부는 검은 먹빛의 그을음으로 가득차고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기둥이 피어오른다.

얼마 후 가마 안 불꽃색이 맑아지고 연기기둥이 사그라지면 다시 불창구멍에 연료 넣기를 반복하는데 이는 그릇에 입힌 유약이 녹을 때까지 지속된다. 더하여 청자의 색감에 깊이를 더할 때에는 일정한 온도를 오랜 시간동안 유지하기도 한다. 이때 아궁이에는 주로 통나무 장작을 넣고, 불창구멍에 창불을 땔 때는 가늘게 쪼갠 장작을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자기를 구울 때 연료로 장작만을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이규보가 청자술잔을 보고 지은 시에 나무를 베어 산이 발갛게 되었다는 표현은 자기를 굽는 가마 주변의 풍광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하겠다. 또 해를 가릴 만큼 많은 연기가 피어나도록 불을 피웠다는 부분은 청자를 굽느라 가마의 불이 환원염 분위기로 전환될 때 전개되는 실제상황이며, 선명하게 푸른 옥빛이 나는 청자는 검은 매연 속에 파묻히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는 내용은 유약이 녹을 때까지 가마 안의 불을 환원분위기로 유지하느라 칸불때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노래하지 못한, 해를 가리는 연기와 끝없이 피어오르는 매연 속에서 진흙을 푸른 옥으로 바꾼 고려 장인들의 예민한 감수성은 가마가 갈라터지는 열기를 온몸으로 감당한 무거운 피로에도 무뎌지지 않았다. 그들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으나 그들 자신이 온전히 가마 속의 불이 되어 마침내 단단하고 맑은 아름다움, 비색청자를 품었다.



글·사진·박경자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사진·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해강도자미술관, 간송미술관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