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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사후영생 피라미드 VS 영원한 사랑 타지마할
작성일
2016-02-0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8066

사후영생 피라미드 VS 영원한 사랑 타지마할 오랜 역사를 보면 왕족들의 무덤은 죽어서도 그들을 기리기 위한 하나의 상징이다. 하지만 무덤이라고 다 같은 의미를 지니진 않았다. 고대 이집트 건축의 정수 <피라미드>는 사후영생을 위해, 인도 <타지마할>은 영원한 사랑의 증표로 건축되었다. 건축 목적성이 다른 만큼 둘이 간직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01 남쪽에서 바라본 기자의 피라미드. 좌측부터 멘카우레왕 피라미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그리고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이다. 그리고 나머지 작은 피라미드들은 멘카우레왕 피라미드 때 같이 지어졌다. 02 ‘찬란한 무덤’이라 불리는 타지마할

 

파라오 부활의 염원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 문화의 상징물이라 하면 단연 피라미드다. 모래벌판 위에 상상을 초월한 피라미드를 보고 있자면 사람의 한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피라미드를 1차원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파라오의 무덤이자 이를 통해 그의 권위와 업적을 후대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자면 이곳은 죽은 파라오의 영생을 위한 궁전이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관과 관계가 깊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는 것을 잠시 사후세계를 여행하는 것으로 여겼다. 사후세계 여행이 끝나 시체로 돌아오면 다시 영생을 누린다고 믿었다. 그래서 시체가 훼손되지 않도록 미이라를 만든 것이다. 하나의 피라미드가 완성되기까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까지도 걸리기 때문에 파라오가 즉위하는 시점부터 건설되기 시작한다. 만약 피라미드가 제때 완공되지 못하고 장례식이 늦어버리면 오시리스(심판의 신. 죽은 자의 영혼과 무게를 재 저승이나 천국으로 보낸다)나 아누비스(저승의 신. 오시리스 보좌관이자 무덤 위에 올려진 음식을 들고 와 죽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한다)가 노해, 천벌을 준다고 생각했다.

피라미드는 죽은 자가 다시 돌아와 영생을 보내는 곳이므로 마치 생전의 집처럼 꾸며 놓았다. 파라오가 쓰던 그릇, 옷, 가구, 장식품 등을 갖추어 놓았으며, 심지어 죽은 자가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초상화도 그려 넣었다. 벽에는 고기잡이, 항해, 농사짓는 광경 등을 생생하게 그려 놓았는데, 이는 다시 돌아온 영혼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백성 위에 ‘군림’하던 파라오가 영생의 안식을 취하는 장소인 만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엄청난 규모가 예상된다.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쿠푸왕 피라미드는 총 면적 260만㎡, 사방 230m, 높이 146m라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완공되기까지 약 230만 개의 돌이 사용되었으며, 그 돌의 평균 무게만 해도 약 2.5t에 달했다. 동원된 노동 인력도 약 10만 명이었다.

당시의 건설기술 상황을 따지면 그 어떠한 기계 없이 사람의 힘으로만 진행되었으므로 모든 과정은 중노동이었다. 당연히 노예들이 투입되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대부분이 일반 농민이었다고한다. 피라미드 건설은 고대 이집트판 ‘뉴딜정책’이었다. 나일 강이 범람하는 시기가 되면 농민들은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돈벌이도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피라미드 건설에 농민들을 투입시켰다. 강제는 없었다. 노동만큼의 임금을 받았고, 임금 체불 시 파업도 진행됐다고 한다.

아라비아 속담에 ‘온 세상이 시간을 두려워하지만, 시간은 피라미드를 두려워한다’라는 말이 있다. 2.5t의 수백만 개의 돌을 쌓아 올렸으면서도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무너짐 없이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피라미드의 각도에 답이 있다. 지면과 각뿔은 정확하게 90도로 맞춰져 있고, 삼각형은 51도 52분이다. 모래성을 쌓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올라가지 않고 모래들이 흘러내리게 되는데, 최대치 각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최대치가 바로 51도 52분이다. 정밀한 측정 기계도 없던시절 가장 완벽한 수치를 계산해 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과학기술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또한 돌을 캐내어 뗏목으로 운반하고 공사를 하기 위한 도로를 만들고 피라미드의 지하공사를 하는데만 적어도 10만의 노동자가 3달씩 교대로 10년이 걸렸고, 돌을 쌓아 올리는 데도 20년 이상이 걸렸다. 이런 대역사와 피라미드의 건축 구조의 미스터리와 황금비율의 아름다움이 우리 인류역사에 길이 남을 세계유산으로 가장 먼저 피라미드를 손꼽게 한것이다.

이집트의 기자에서 다흐슈르까지의 피라미드 지역은 1979년 멤피스아 네크로폴리스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인간의 창조적 걸작품으로 잃어버린 문명에 대한 탁월한 증거, 그리고 인류사에 빛나는 무형의 가치를 반영하여 오직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낸 이 거대한 축조물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였던 것이다.

03 가장 큰 피라미드인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는 2.5t의 돌 230만 개로 만들어졌다. 04 카프레왕의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 전체 길이 약 70m, 높이 약 20m, 폭 약 4m에 달하는 거대한 스핑크스로 자연석 그대로 조각한 작품이다.

 

한 남자의 영원한 사랑의 약속 <타지마할>

인도 뉴델리에서 서쪽으로 차로 달려 약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의 도시 아그라에 위치한 빛의 궁전 타지마할(Taj Mahal)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다.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 샤 자한의 명으로 지어졌다. 타지마할의 탄생에는 샤 자한 황제와 황후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샤 자한 황제는 어떤 비극이 올지도 모르고 가장 사랑한 아내이자 정치적 조언자였던 황후 뭄타즈 마할을 대동하고 영토 확장을 위한 원정길에 올랐다. 그러나 데칸고원 지역에서 황제가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황후는 근처의 야외 천막에서 14번째 아이를 낳은 뒤 그만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거친 전쟁터도 두렵지 않았던 샤 자한 황제였지만 황후가 죽고나자 너무 상심한 나머지 백성들에게 2년의 추모 기간을 명하고 아그라 성에서 가까운 야무나 강 변에 황후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사후영생을 위해 건축되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이 둘의 목적성은 서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 남자의 아내를 위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타지마할은 인도 이슬람 예술의 걸작으로 손꼽히며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태양의 위치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빛깔에 반하고, 웅장함 속에서 뿜어 나오는 부드러움에 감탄하게 만든다. 하지만 타지마할의 절대 미학은 바로 완벽한 좌우대칭에 있다. 타지마할은 인공으로 만든 7m 높이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기단 위에 세워진 건물은 한 면의 길이가 58m이며, 중앙 돔이 세워진 가장 높은 곳의 높이는 65m에 달한다. 그리고 동서남북의 모퉁이에 세워진 미나레트(기도탑)의 높이도 50m나 된다. 중앙 돔을 중심으로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타지마할이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다고 한다. 건축물에 좀 더신비감을 주기 위해 바깥쪽으로 조금 휘어지게 한 것이다. 당시에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이렇게 건축했다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진이 발생해도 무너지지 않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끝을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의 무한한 사랑은 오직 아내에만 한정되었는지, 황제는 타지마할을 짓기 위해 백성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물렸으며, 타지마할을 완성한 뒤 다시는 이와 똑같은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건설에 동원된 장인들의 손목을 모두 잘라버렸다. 22년에 걸친 무리한 공사로 인한 국고 탕진과 잔인한 행동들로 인해 말년에는 왕위를 아들들에게 빼앗기고 아그라 성에 갇혀 남은 일생을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낙으로 살았다. 그 후 샤 자한 황제가 숨을 거두자 황후와 함께 타지마할에 잠들게 되었다. 아내를 잃은 상실감 때문인지 좋은 왕이지는 못했지만 좋은 남편으로서 영원한 사랑의 증표를 남겨, 타지마할은 인도의 수많은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는 장소가 되었다.

타지마할은 인간의 위대한 창조적 걸작품으로 1983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타지마할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는 건축물 자체에서 나오는 미적, 종교적인 측면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때문이다. 타지마할은 출입구부터 본관인 묘궁에 이르기까지 중앙의 연못을 중심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있다. 보다 완벽한 균형을 갖추기 위해 타지마할의 서쪽에 있는 붉은 사암 건물과 똑같은 건물을 동쪽에도 건설할 정도로 완벽한 대칭적 균형을 보여준다. 그뿐이랴, 건설에 필요한 엄청난 양의 대리석을 아그라에서 400km나 떨어진 자이푸르에서 가져왔다는 사실은 당시의 운송 기술을 고려할 때 한계를 초월하는 일이었다.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 영혼을 위해 당시로써 할 수 있는 모든 과학기술을 담아낸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인도의 타지마할. 영생과 불멸의 사랑이라는 각각의 건축 목적은 다르지만 ‘영원’하고 싶었던 유한한 존재, 인간의 염원만은 서로 닮아있다.

05 타지마할 서쪽 건물, 모스크 06 화려한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는 타지마할

 

글‧최재헌(건국대 지리학과 교수)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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