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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리고 닫힌 마루와 온돌방의 조화 보물 봉화 한수정의 실내
작성일
2022-07-2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95

열리고 닫힌 마루와 온돌방의 조화 보물 봉화 한수정의 실내 보물 봉화 한수정은 작은 공간에서도 초연대와 와룡연 그리고 주변에 조경수를 식재해 정자로서의 많은 요소를 잘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곳이라면 늘 한수정 같은 정자가 지어졌다. 수많은 정자 중 한수정이 돋보이는 이유는 주변 조망과 온돌방의 쓰임새를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이다. 01.완전히 개방된 보물 봉화 한수정의 마루 ©한국문화원 연합회 사진 출처 : 지역N문화(www.nculture.org), 한국문화원연합회

풍성한 시문학을 꽃피우게 해 준 정자

줄기가 곧고 껍질이 붉은 빛을 띠는 춘양목은 최고급 소나무로 여겨진다. 춘양목은 봉화군 춘양면 일대에서 자라는데, 이곳은 태백산의 남쪽 끝으로 수림이 발달하고 계곡에는 맑은 물이 그치지 않아 경승지로도 이름이 높다. 춘양면의 이름난 건물 중 하나가 한수정이다. 조선 중종 때 고위 관직에 올랐던 권벌이 터를 잡고, 아들은 높은 대를 꾸미고, 손자 권래 때 와서 이 정자를 지었다.


한수정은 왕릉의 정자각처럼 일(一)자형 몸체 중간에서 앞으로 돌출한 부분을 두어 전체가 정(丁)자 형을 이루는 점이 눈길을 끈다. 북쪽 몸체는 가운데 온돌방 양 옆으로 마루를 두고, 남쪽 돌출부도 마루 2칸 끝에 온돌방을 하나 더 마련해 놓아서 마루와 온돌방이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힘겨루기를 하듯 긴장감을 자아낸다. 또 북쪽 몸체는 바닥 높이를 돌출부보다 한 단 높이고 방을 서쪽으로 약간 틀어 놓아 실구성의 묘미를 더했다.


건물 삼면은 못이 감싸고 반대쪽은 초연대라는 높은 단을 두어서 넓지 않은 정자 주변이 단조로울 틈이 없다. 못가에는 크고 작은 초목이 둘러싸고 있어 계절에 따라 색다름을 더해 준다. 양쪽으로 트인 마루에 앉으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더위를 식혀 주고, 위 아래로 나뉘어 있는 온돌방은 추운 겨울에도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영조 18년(1742)에 후손 권만이 지금 모습으로 고쳐 지으면서 쓴 상량문이 전하는데, “상하좌우로 전망이 트이고 춥고 더울 때에 알맞도록 집이 꾸며져서 집안 일가와 손님과 벗이 그치지 않고 찾아오고, 둘러진 못물은 거울처럼 맑아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를 굽어볼 수 있다”라며 이 집의 핵심을 짚었다. 이곳을 찾아와 주변 열두 경승을 노래한 시가 여러 문인의 문집에 전하고 있어서 조선시대 시문학을 풍성하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


02.한수정의 실내는 온돌과 마루를 다양하게 구성한 점이 더욱 돋보인다. ©문화재청

자연과 어우러진 아늑함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걸쳐 한수정 같은 정자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어졌다. 웬만한 재산을 지닌 양반이라면 으레 경치가 볼 만한 곳에 정자를 지어 시를 짓고 친구들과 교제했다. 보통 정자 건물은 규모도 작고 재목도 튼실하지 못하지만, 온돌과 마루를 다양하게 구성한 점에서 다른 건물에 비해 색다른 특징이 있다. 한쪽에 온돌방 2칸을 두고 다른 쪽에 마루 4칸을 갖춘 네모반듯한 모습이 주를 이루지만 담양 면앙정처럼 사면으로 개방된 마루를 두고 한 가운데 온돌 1칸을 두는 방식이나 안동 만휴정처럼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 끝에 온돌방을 하나씩 배치하는 집도 있다. 한 수정처럼 정(丁)자형으로 지은 정자도 봉화 주변에서 더러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한수정이 돋보이는 이유는 마루는 완전히 개방해서 바람이 통하고 주변 조망을 최대한으로 여는 한편 온 돌방은 쓰임새에 따라 두 군데로 나뉘어 아늑함을 더한데 있다. 집 주변으로 높은 대를 꾸미고 연못을 둘러 철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꽃나무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구성은 절묘 하다. 이 집을 지은 안명로라는 목수는 그 행적을 파헤치기는 어렵지만, 집주인 권만의 의도를 살리면서 뛰어난 솜씨로 적절하게 온돌과 마루를 배치하고 높낮이를 조정해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정자 건물을 지어냈다.


정자 건물은 형태도 아름답고 지내기도 즐겁지만 오래 유지해 나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정자는 후손이 제대로 관리 하지 않으면 얼마 못가 무너져 버리기 일쑤였고, 뜻밖의 화재로 하루아침에 자취를 잃는 일도 다반사였다. 여기에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려서 일족이 화를 당하게 되면 보살필 사람 없는 정자도 함께 사라졌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지금 전국에 남아 있는 많은 정자는 하나같이 누군가의 정성어린 관리와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곁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글. 김동욱(경기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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