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러시아 표트르 대제 인류학·민족학 박물관 - 지구촌 문화재 이야기
작성일
2007-02-2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258

러시아 표트르 대제
인류학·민족학 박물관

 hspace=0 src=

 hspace=0 src=러시아 표트르 대제 인류학·민족학 박물관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해 있다. 이 박물관은 명칭대로 각국 및 러시아 국내에서 수집한 고고학·인류학·민족학 관련 유물 및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데, 그 총수는 200만 점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이 박물관에는 순수한 인류학 자료 이외에도 각국의 미술품이 다량으로 소장되어 있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 인류학·민족학 박물관은 소장품의 규모와 역사적인 면에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러시아 과학원의 상징
러시아 표트르 대제 인류학·민족학 박물관은 처음 1716년 표트르 대제가 단치히(현재의 폴란드 그다니스크)의 의사로부터 구입한 1,195점의 광물 표본을 쿤스트카메라(독일어로 예술, 귀중품의 방)라 불리는 궁전의 한 방에 수납하여, 1719년부터 무료로 일반인에게 공개하면서 박물관의 업무를 시작했다.
1727년, 표트르 대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로지르는 네바강변에 위치한 동기궁전(현에르미타쥬 박물관의 일부) 옆에 새로운 표트르 바로크 양식의 건물을 지어 ‘쿤스트카메라’라는 이름을 새로 붙였다. 이곳에는 표트르 대제의 개인 소장품을 중심으로 기계 등의 과학 기기, 해부전시실, 인체, 동물 표본 컬렉션, 각국의 동전, 메달 등이 전시됐다.
이후 러시아 국내에서 수집된 여러 가지 물품들과 러시아가 해외에 진출해 각국의 문물을 수집하면서 박물관의 규모는 점차 커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동물 박물관, 광물 박물관(페르스만 광물 박물관), 아시아 박물관(현 러시아 과학원 동방학연구소) 등이 분리되었다. 또 많은 예술품이 에르미타쥬 박물관으로 옮겨지기도 하였고, 드디어 1879년 쿤스트카메라 자체는 고고민족학 박물관으로 바뀌었으며, 1903년 ‘표트르 대제’의 명칭을 하사받아 현재의 ‘표트르대제 인류학·민족학 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따라서 현재 박물관이 위치한 쿤스트카메라 건물은 그 건물 자체가 러시아 과학원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hspace=0 src=한·러 통상조약 이후 문화재 수 늘어
이 박물관에 소장된 한국의 문화재는 초기 주로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집된 물품 중 한국 문화재가 섞여 있는 수준에서 출발하였다. 그 후 18세기부터 꾸준히 중국과의 빈번한 접촉을 통해 아시아의 문물이 박물관에 소장되면서, 1719년부터 자주 중국에 통상 대표로 파견된 로렌츠 랑과 프란츠-루카 엘라치 등을 시작으로 중국·일본에 파견된 러시아의 외교관과 상인, 귀족들이 현지에서 수집한 물품을 다량으로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한국의 문화재 수가 증가하게 됐다.
한국 문화재로 확인된 바로는 1756년에 기증한 엘라치 수집품이 있다. 특히 1884년과 1888년, 한국과 러시아가 통상조약을 체결하여 양국의 관계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우리 문화재가 러시아의 박물관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청나라와 일본에 대한 견제책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외국과의 관계 강화를 모색하던 한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상업 및 군사 목적의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다. 이때부터 박물관에 기증되는 한국 문화재의 종류와 수는 크게 증가했다.
러시아와의 교류로 인해 문화재가 유출된 대표적인 예로는, 최초의 재한 러시아 대표이자 영사였던 카를 이바노비치 웨베르의 수집품을 들 수 있다. 휴식기를 포함해 약 30년간 한국에서 근무하였던 그는 1893년과 1908년 두 차례에 걸쳐 그의 수집품을 박물관에 매각하였는데, 그 중에는 명성황후로부터 선물 받은 청자완 2점을 비롯하여 나전칠기, 부채 등 다양한 문화재가 망라되어 있다.
1904년 러·일전쟁의 발발과 이어진 러시아의 패배로 인해 러시아 측이 한국에서 직접 문화재를 수집할 수 있는 길은 크게 제한되었다. 그러나 당시 다른 박물관(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 등)에 소장되어 있던 문화재가 표트르 대제 박물관으로 이관되면서 박물관 내 한국문화재는 계속 증가하게 되었다. 이중 유명한 문화재들은 1937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학에서 이관된 문화재와 1950년에 모스크바 동양박물관에서 이관된 컬렉션이다.
1945년 이후에는 북한과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북한으로부터의 수집품 및 기증품이 증가하였는데, 1957년 북한 문화부가 470여 점의 문화재 및 생활용품 등을 기증한 것이 대표적이다.
냉전이 끝나고 한국과 러시아가 정식으로 국교를 맺으면서 현재는 양국간 문화재 관련 교류도 증가되고 있는 추세다.

글·사진 _ 박형빈(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연구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