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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천신과 지신에게 근본에 대해 보답하다
작성일
2012-11-1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578


천지와 조상, 성현에 대해 예를 갖추어 공경하는 마음을 올리는 것, 바로 제사祭祀이다.하늘의 기운으로 만물이 생성되고, 그 만물은 땅에서 자라나며, 조상이 계시기에 내가 비로소 있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성현의 가르침이 있으므로 사람들은 그 대상에 대해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 후 제사행위로써 예를 표하는 것이다.

지상에서 자란 좋은 음식과 곡식으로 빚은 향기로운 술, 땅을 딛고 자라는 흠 없는 동물의 희생, 소리 낼 수 있는 여덟 가지 재료[八音]로 만든 악기로 기악과 춤, 노래를 모두 갖추어 제사하는 행위는 인간이 드릴 수 있는 가장 극진한 예의 표현이다.

제사란 이처럼 그 근본을 생각하게 하는 행위로서 근본에 보답하고, 시초를 돌이켜 보는, ‘보본반시報本反始’하는 행위이다. 만물을 만들어 키우고 기르는 하늘의 훈훈함, 지상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도록 돕는 땅의 기운, 그리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근본, 그 근본을 돌아보고 생각하며 나를 단속하는 것이 제사행위이다. 

제사의례와 음악

『예기』 「제의」편에 의하면 제사는 물질인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 곧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했다. 제사란 마음속에서 생겨나 행하는 것으로, 마음속에서 신비함을 느껴 예를 갖추어 받드는 것이므로 현자賢者라야 제례의 뜻을 다할 수 있다고 했다. 몸과 마음을 닦아 나 스스로가 성인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유교적 수양관을 생각할 때 제례를 올리기 위한 전제 조건, 혹은 자격 조건이 ‘현자’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며, 유교적 제례의 의미와 맥락은 그 스펙트럼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조선 성종 대의 국가전례서인 『국조오례서례』에서는 제사의 대상에 따라 그 용어를 구분하여 썼다. 천신天神에 지내는 것은 ‘사祀’, 지기地祇에 지내는 것은 ‘제祭’, 인귀人鬼에 지내는 것은 ‘향享’, 문선왕, 즉 공자에게 지내는 것은 ‘석전釋奠’이라 했다. 

여기서 천신은 천(천제, 상제), 일, 월, 성신, 풍운뢰우 등을 모두 아우른다. 천은 신성화된 외재적 실재를 말하며 일월성신은 천의 다양한 현현顯現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에게 추위와 더위, 사계절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상정된다. 또 풍운뢰우는 하늘이 인간을 향해 능력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해되어 풍운뢰우를 주관하는 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천신에 대한 제사에 포함시켰다. 지기地祇에 대한 제사로 대표되는 것은 토지신인 ‘사社’와 곡식신인 ‘직稷’에 제사하는 사직제, 그리고 산천, 명산대천 등이 해당된다. 

이들 제사에는 대부분 악, 가, 무, 즉 기악, 노래, 춤이라는 총체적 의미의 ‘악樂’이 연행되었다. 총체적 의미의 악이란 성인이 천지자연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으로 이 세 가지가 모두 구비되어야 악의 온전한 형태를 갖춘 것이며 이는 천지와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에서 쓰일 때 그 진정한 가치를 발하게 된다.

제사에서는 악의 온전한 형태를 갖추어 올려야 예에 흠결됨이 없으며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대의 위치, 악기의 빛깔과 배치, 일무佾舞를 추는 동작 및 인원 등은 유가 예악론 안에서 규정되고 그 규정된 내용은 음악 연주를 통해 구현된다.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대는 댓돌 위 상월대에서 연주하는 등가登歌 악대와 댓돌 아래, 즉 묘정廟廷에서 연주하는 헌가軒架 악대, 그리고 등가와 헌가 사이에서 줄지어 추는 일무의 삼자를 갖추게 되는데, 이는 천지인 삼재사상三才思想을 음악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제사에서 음악이 쓰이는 것은 곧 음악으로써 신령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라 했다.




사천祀天의례 ; 원구제와 영성제

천신에 대한 제사로 대표되는 것은 환구제丘祭이다. 환구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가 났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설에 따라 둥근 모양의 단에서 제사한다. 그러나 조선조에는 천자만이 하늘에 제사할 수 있다는 명분론이 대두되어 일정 시기 동안 잠시 지내다가 폐지되었으며 고종이 황제를 선언한 1897년 이후 다시 지내기 시작했다.

세조대에 지냈던 환구제의 절차를 보면 영신迎神, 전옥폐奠玉幣, 진조進俎,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 음복飮福, 철변두徹豆, 송신送神, 망료望燎의 순으로 거행되었다. 환구제를 지낼 때 특징적인 것은 제물을 올릴 때 태우는 ‘번시燔柴’행위를 들 수 있다. 제물을 태워 연기를 오르게 하여 흠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사 대상이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또 마지막에 축문과 폐백을 태우는 ‘료燎’도 땅에 묻는 대신 태워서 하늘에 연기를 올리는 방식으로 연행하였다. 하늘에 제사할 때 사용하는 악기 선택에서 특징적인 것은 말가죽으로 만든 6면 북인 뇌고雷鼓와 뇌도雷를 사용하여 음악을 연주하는 점이다. 이는 악이 6변變하면 천신이 내려와 예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례』의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환구제 외에 천신에 대한 제사로서 농업신으로 받들어지는 별에 대해 올리는 ‘영성제靈星祭’가 있다. 영성제는 삼국시대 이래 고려, 조선조까지 이어져 온 제사였으나 중종 대에 소격서 혁파와 함께 폐지된 제사의례이다.

이를 정조가 다시 복구하고자 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정조가 복구하고자 했던 영성제에는 현대의 마스게임에 비교할 수 있는 악무樂舞가 포함되어 있어 흥미를 끈다.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에서는 16명의 무동舞童이 하늘 천 자를 그리는 천자무天字舞를,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초헌례에서는 하자무下字舞를,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례에서는 태자무太字舞를,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에서는 평자무平字舞를 각각 추도록 구성하였다. 그러나 영성제는 정조가 생전에 의례를 복구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미완의 악무로 남게 되었다.



제지祭地의례 ; 사직제

사직제는 국토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사람은 땅에 아니면 설 곳이 없다. 또 곡식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땅에 백성을 깃들여 살게 하고 그 땅에서 나는 곡식으로 백성을 먹게 하므로 사직을 세워 만물을 기르는 공덕에 보답하는 것이다.

사직제가 종묘제와 함께 국가의 대사大祀에 속하여 가장 중요한 제사로 행해지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토지신과 곡식신을 제사하므로 사직단은 사단社壇과 직단稷檀의 둘로 구성되는데 이 또한 천원지방天圓地方설에 따라 네모난 모양으로 만든다. 사직제는 영신, 전폐, 진찬, 초헌, 아헌, 종헌, 철변두, 송신의 순으로 의례가 거행되는데 제례악을 연주할 때는 8음, 즉 쇠붙이, 돌, 실, 대나무, 박, 흙, 가죽, 나무의 이 땅에서 나오는 여덟가지 제작 재료로 만든 악기를 모두 갖추어 연주한다. 이들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사람의 목소리와 춤을 갖추어 제사를 올림으로써 신령을 불러들이고 위로하고 즐겁게 한다.

하늘을 제사하는 의례에서는 6면 북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사직제에서는 8면 북인 영고靈鼓와 영도靈를 써서 연주한다. 이는 악이 8변變하면 지기地祇가 내려와 예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례』의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지기란 대지의 신을 말하는데, 이 세상 만물을 싣고 양육하는 덕을 베푸는 존재로서 토신보다 영원하고 무한한 대상이다. 사람에게 설 곳을 마련해 주고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근원에 대한 제사 의례, 사직제의 의미를  만물을 갈무리하는 이 가을에 조용히 생각해 본다.  





글·사진·송지원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책임 연구원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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