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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통문화가 기거할 곳은 박물관 아닌 ‘삶 한가운데’ 안선재(前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작성일
2016-04-0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055

 전통문화가 기거할 곳은 박물관 아닌 ‘삶 한가운데’ 안선재(前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이 1980년. 영국인 예수회 사제 ‘브라더 안소니’는 그 후 한국인 ‘안선재’로 개명하고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회문화적 변화의 바람을 함께 맞으며 살아왔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고은 시인이 거론될 때마다 언론의 발길이 그에게로 집중될 만큼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인, 한국문화를 사랑한 영국인 수도자

낯선 이방인에게 한국이라는 동방의 작은 나라는 반드시 운명적 인연이 될 필요는 없었다. 누군가는 이 땅을 찾았다 스치듯 떠나고, 더러는 그대로 머물러 살아간다. 떠나고 머무는 이유도 가지 각색이겠으나, 이 나라 현대사의 상처와 아픔이 그 머무름의 이유가 되기는 흔치 않을 듯하다.

“한국은 식민의 역사가 있었고, 전쟁의 상처와 역사적 혼돈이 있었지요. 지금도 여전히 갈라진 나라의 아픔 가운데 있고.”

빙그레 웃는 눈빛에 40여 년을 한국인으로 살아온 시간의 깊이가 서린다. 인간사회의 화합과 화해, 모두가 평등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수도자로서 생의 절반을 이 나라에 뿌리 내리게 한 이유는 이 나라가 가진 ‘상처와 아픔’이었다. 그는 80년대 대학가의 격동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고난의 역사를 온몸으로 떠안고 살아가는 군상들을 사랑하며 긴 세월을 보냈다. 어쩌면 한국인보다 더 많이 한국에 대해 생각하고 지켜보고 기도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2년 전 서강대 교수직을 은퇴한 이후, 그는 지금 본격적인 한국 문학 번역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번역 출판한 책만 37권. 앞으로도 6~7권의 번역물이 출간 대기 중이다. 그가 지금껏 번역한 작품들로는 고은의 ‘만인보’, 신경림의 ‘농무’, 천상병의 ‘귀천’, 서정주의 ‘밤이 깊으면’ 등 한국문단의 대표작들이 두루 포함되어 있다. 그의 번역 리스트를 보면 어떤 작품에 그가 주목하고 공감하고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경향이 읽히기도 한다. 삶 자체를 보여주는 시,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인생들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문학이 희망이요, 아름다움이라 그는 믿는다. 수도자로서 ‘구원’의 근본을 거기서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恨)의 문화, 흥(興)의 문화

한국문화의 특징을 한(恨)으로 표현하는 건 이미 오래된 통념이다. 그러나 그는 “한의 정서만 있었다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 그랬다면 고통과 절망에 짓눌려 마비된 상태가 되었을지 모른다.

“흥(興)입니다! 흥이 있어 한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죠.”

가난한 농민들의 농무는 기뻐서 추는 춤이 아니다. 오히려 고난의 현실을 풀어내기 위한 한스런 몸짓에 가깝다. 남도민요가 그러하듯, 살풀이춤에서 엿보이듯, 한은 흥으로 이어지고 이내 ‘그래도 살아야 하는’ 강렬한 의지로서 승화된다. 그것이 그가 발견한 한국 문화의 독특한 아름다움이자, 깊이 사랑하게 된 이유다.

반면 그는 최근의 ‘한류’ 현상에 대해서는 “하!” 하는, 웃음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로 반응했다. 자기 것에 대한 근본 뿌리를 망각한 채 세계인의 입맛에 기반해 만들어낸 몸짓으로 어찌 한국인들의 삶과 정신을 담을 수 있을지 그는 염려되는 것이다.

“뿌리 없이 꽃피는 문화는 없어요. 전통이란 정체성의 기본인데, 한국은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아까운 전통을 쉽게 버렸어요.”

서양인들이 감탄해마지않는 한옥을 낡고 불편한 것으로 치부하며 스스로 아파트 숲에 갇혀버린 한국인들, 가야금과 대금의 아름다운 선율이 오히려 낯설어진 청년세대, 전통 차 문화 대신 일제히 카페로만 몰리는 현상들은 그로선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아름다운 죽은 집’에 갇힌 전통문화

한국 전통문화 가운데 진심으로 ‘즐겼던’ 기억으로 그는 김대균의 ‘줄타기’를 꼽았다. 1993년 용인 민속촌에서 처음 접한 이래 그 기막힌 재미에 완전히 매료되어 자꾸 보게 되었다고 한다.

“서양의 서커스는 위험이나 스릴 같은 요소를 극대화하는 데 반해, 줄타기는 소리도 있죠, 이야기도 있죠, 관객과의 소통도 있어요.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또 그는 전북 김제에서 전통 옹기가마터를 운영하고 있는 도예가 안시성에 대해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100년이 넘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가마터. 그곳에서 구워낸 투박한 다기들은 그의 연구실에서 오늘도 차를 우려내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물관에 모셔진 전통은 문화가 아니에요. 지금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 살아 숨 쉬는 진짜 문화입니다.”

안동에 보존된 대감댁 가옥들이 아름답지만, 사람이 살지 않고 관리만 되는 것은 ‘아름다운 죽은 집’일 뿐이다. 그에겐 차라리 오래된 사찰들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으로서는 더 의미가 크다. 스님들이 기거하는 절집의 다양한 살림살이가 현재진행형이니 말이다. 전통은 삶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빛나며, 내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글‧김수연 사진‧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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