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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진 신라 동궁의 비밀
작성일
2018-01-0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659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진 신라 동궁의 비밀 - 사적 제18호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문무왕(661~681) 때에 완성하였다. 헌덕왕(809~826) 때 태자를 월지궁(月池宮)에 거처하게 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월지궁은 태자의 궁,즉 동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궁과 월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문화재관리국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 의해1970년대에 한 차례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30여 년이지나, 2007년부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동궁과 월지 동편 연접지역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현재까지 연차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최근 동궁과 월지에서 ‘국내 최초 신라 수세식 화장실 유구’가 확인되면서 언론과 국민의 뜨거운 관심이 있었다. 이로써 동궁과 월지의 생활문화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확보한 셈이다. 현재에도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 현장에서는 신라 동궁의 비밀에 대한 실마리가 붓끝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01.경주 동궁과 월지ⓒ문화재청

베일 벗은 신라 왕궁 생활문화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문무왕 14년(674년)에 세워진 동궁과 주요 관청이 있었던 곳으로, 1975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전신)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 의해 처음 조사되었다. 첫 조사당시 인공 연못, 섬, 동궁 관련 건물지 일부가 발굴되었으며, 3만 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7년 동궁과 월지 북동쪽 인접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대형건물지군, 담장, 배수로, 우물 등 동궁 관련 시설을 꾸준히 확인하고 있으며, 2007년 이전에 출토된 것과 동일한 종류의 기와와 벽돌, 토기류 등의 유물들도 계속 출토되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라 동궁과 월지를 둘러싼 새로운 모습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먼저 동궁과 월지의 원래 영역이 현재 정비되어 공개되고 있는 영역보다 동쪽과 북쪽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신라 동궁 내 화장실, 우물, 창고 등 다양한 용도의 시설들이 확인됨에 따라 신라 왕궁 생활문화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였다.

02.경주 동궁에서 발굴된 화장실 변기시설. 변기를 통해 나온 오물이 잘 배출되어 나갈 수 있도록 점차 기울어지게 설계된 암거(暗渠)시설까지 갖췄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1300년 전 수세식 화장실터 발견

동궁 화장실에 대해서는 최근 일반과 언론 그리고 학계의 관심이 뜨거웠는데,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고대 수세식 화장실 유구라는 점 때문이었다. 화장실 유구는 초석건물지 내에 변기가 있고, 변기를 통해 나온 오물이 잘 배출되어 나갈 수 있도록 점차 기울어지게 설계된 암거(暗渠)시설까지 갖춘 복합 변기형 석조물이 있는 구조이다. 동궁과 월지 화장실 유구의 특징은 통일신라 최상위 계층의 화장실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고급 석재인 화강암을 가공하여 만든 변기시설과 오물 제거에 수세식 방식이 사용된 점, 변기 하부와 오물 배수시설 바닥에 타일 기능의 전돌(쪼개어 만든 벽돌)을 깔아 마감한 점 등을 미루어 볼때 통일신라 왕궁에서 사용된 고급 화장실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변기시설만 발견(불국사, 8세기)되거나 화장실 유구(익산 왕궁리, 7세기 중엽)만 확인되었을 뿐, 화장실 건물과 변기시설 그리고 오물 배수시설이 이렇게 같이 발굴된 사례는 없었다. 이번 동궁과 월지에서 확인된 화장실 유구는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그 부속품들이 한자리에서 발견된 최초의 사례로, 현재까지 조사된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신라 왕실의 화장실 문화의 발달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03.동궁 우물에서 출토된 고인골 복원 이미지 ⓒ문화재청

우물에서 출토된 고인골, 고려인의 얼굴을 복원하다

그리고 동궁 내 식수의 공급을 담당한 우물도 확인되었다. 우물은 평면 원형의 석축 우물로, 안지름 약 1.2~1.4m, 깊이가 7.2m에 이르는 굉장히 깊은 우물이다. 우물 내부에서는 기와편, 토기편, 다량의 동식물 유체와 인골이 출토되었다. 우물 내부 퇴적양상은 깊이 4.8m 구간을 기준으로 상·하부로 구분된다. 4.8m 하부 구간은 통일신라 말기에 이루어진 우물 폐기행위와 관련되며 폐기 당시 의례와 관련된 소형 사슴 1개체도 조사과정에 수습되었다. 그리고 4.8m 상부 구간은 고려 초기에 퇴적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 층 내에서 고인골 4개체가 수습되었다. 이 고인골 4개체를 대상으로 체질인류학·자연과학(탄소·질소안정동위원소, DNA분석)·법의학·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학문들과 학제 간 분석연구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학제 간 융복합 연구를 통해 고인골의 연령, 키, 성별 등 체질적 특성, 식생활, 생전의 생김새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였다.

이외에도 동궁 내 생활과 관련된 창고시설과 다양한 생활유물 등도 출토되어 신라 왕궁의 일상생활에 대한 양호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이러한 동궁과 월지의 조사성과를 국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2017년 11월에 「신라 동궁 나들이」라는 제목으로 발굴조사 현장개방행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일반 시민들의 관심과 높은 호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향후 동궁과 월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연차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현재 조사된 자료를 토대로 신라 왕궁 건물지 배치 및 변천양상, 그리고 왕궁 내 생활문화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신라 왕궁 정체성 규명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글+사진‧장은혜(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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