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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노름마치를 사랑한 그, 잊힌 것들을 다시 빛나게 하다
작성일
2013-09-09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132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 전통이라 불리는 것들도 언젠가 한 시대를 풍미한 대중문화였다. 전통은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간직되고 지켜져야 하는 것들이다. 그 안에 우리네 고유한 정서가 들어 있고,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이 들어있다. 현대의 대중문화는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고, 다양한 문화들이 유입되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통의 자리도 반드시 변하지 않는 대중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전통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 진옥섭 예술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유랑광대전>,<팔무전>,<시나위>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담양하늘에 흩날린 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 남편을 잊지 못하고 매일 기다렸던 할머니였다. 할머니와 꼬마는 새벽녘 논의 물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전축을 가지고 있는 집에서 전축의 볼륨을 가장 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 때까지 귀를 돋우고 있다. 흘러나오는 육자배기 소리가 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유랑광대전>, <팔무전>, <시나위>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 몰두한다. 그것은 그의 사명과도 같은 일이다.

“전통을 품은 명인의 공연은 아릿한 과거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어요. 매번 공연이 애틋한 것은 그분들에겐 마지막일지 모르는 공연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 싶어요. 아마 어린시절 함께했던 할머니에 대한 진한 추억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 진짜였다. 그리고 사무치도록 절절한 사랑이었다.

02. 2010년 무대에 올렸던'춤추는 바람꽃 상쇠'의 한 장면. 전북무형문화재 제7호 나금추 명인이 부안농악을 공연하고 있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청중 그리고 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청중’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 공연은 좋은 고수와 소리꾼 그리고 많은 청중들이 함께 호흡하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 아무리 비싸도 연일 매진 행렬이다.

“예컨대, 예기들의 춤은 철저하고 처절한 직업의식에서 나오는 하나의 예술입니다.‘생계’자체와 바로 연결이 되었던 터라 더욱 더 절대적인 직업의식 속에서 예술의 극한을 보여주는 춤이 탄생되고 있죠. 저는 그 모습 속에 푹 빠져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도 그만인 무료 공연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노름마치와 청중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을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한 때 시대를 풍미했던 예인들은 사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소리 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 드러나기 위해 먼지가 붙어있을 새가 없도록 발로 뛰었다. 노인정이건 옛날 다방이건 무작정 예인들을 찾기 시작해 그들을 판 위에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수 없는 교훈들을 전해주었고, 다시금 무대 위에 설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감독의 무한 사랑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05. 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노름마치」, 이 책은 기녀, 무당, 광대 등의 출신으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감추어야 했던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 정동 극장에서의 '노름마치' 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노름마치'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 「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그의 꿈

진감독이 맨 처음 꾸었던 꿈은 연극배우였다. 포스터만 붙혀대던 진 감독은 배우에서 연출자의 길을 걸었고, 머지않아 극장에 몸을 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전통 과‘노름마치’들에게 푹 빠져 버린 그의 지금 꿈은 오직 하나이다. 전통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 올라와 주었던 많은 명인들에 보답을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라고 생각한다.“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노름마치’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섞인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물론 주제는 전통의 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힘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매 공연마다 노름마치의 선율 속에 빠져들어 노름마치와 하나가 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 그의 열정은 명인들에게도 고마운 일이지만, 그의 공연이 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어내 계속해서 감동의 판을 만들어 내는 진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연합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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