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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나라 유일의 피라미드를 찾아 떠나는 가야 마지막 왕의 무덤
작성일
2013-01-1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670



우리나라 왕릉은 흙으로 봉분을 높이 세운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집트처럼 돌로 만든 피라미드무덤이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있다. 가야시대 마지막 왕이자 10대왕인 구형왕의 무덤이라 전해지는 왕릉이 있다.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이다. 전傳자가 붙어 있는 이유는 정확한 자료가 없어 여러 설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이 무덤을 둘러싸고 종래에는 석탑이라는 설과 왕릉이라는 2가지 설이 있었다. 이것을 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것이 안동과 의성지방에 분포하고 있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김해김씨 문중과 산청군에서는 전자를 삭제해 명실공이 왕릉으로 인정해달라고 하고 있다.

김해 금관가야의 마지막 10대 왕으로, 신라 법흥왕에게 532년 나라를 넘겼다. 그래서‘양왕’이라고도 불리는 이가 구형왕이다. 구형왕릉 주위에는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연을 담은 유적들이 많다. 가야 임금 족보를 기록한 빗돌을 비롯해 구형왕의 증손자인 김유신이 찾아 와 활을 쏘았다는 사대, 김유신이 증조부의 무덤을 지키고 당우를 지 었다는 빗돌이며 구형왕이 나라를 내어놓고 이리 들어와 살면서 옛적 도읍을 바라봤다는 망경루가 있다.

구형왕릉을 올라가는 들머리에는 덕양전德讓殿이 있다. 덕양전의 담장 도 죄다 돌로 쌓았다. 덕양전에서 구형왕릉까지 1km 가량의 가파르 지 않는 아스팔트 길 사이로 왕벚꽃나무들이 꽃피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등산로를 따라 왕릉입구에 다다르면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홍 살문 지나면 왕릉을 보호하듯 서 있는 사자모양의 돌짐승을 만난다. 홍살문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피라미드 모양의 돌무덤석총을 만 난다. 바로 사적제214호인 전구형왕릉이다.

전구형왕릉은 층단層段을 이루는 방형方形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축조하 였다. 전면은 7단을 이루고, 후면으로 갈수록 경사져서 층의 높이에 따라 체감되고 있다.

꼭대기는 타원형이고, 전면 중앙에서의 전체 높이 7.15m이며, 제4단 동면에 너비 40cm 내외, 높이 40cm 내외, 길이 68cm내외의 감실이 있다. 이 석총을 중심으로 높이 1m내외의 돌로 담을 쌓고 전면에 가락국호왕릉駕洛國護王陵이라 새긴 돌비석이서있다. 그 앞에는 근래에 세운 상돌과 장명등이 있으며 좌우에 문인석·무인 석·돌짐승이 1쌍씩 배치되어 있다.

구형왕은 나라를 빼앗긴 죄인이므로 흙 속에 묻힐 수 없다 하여 시신 위에 바로 돌을 쌓으라고 유언하였다고 한다. 왕의 유언대로 신하들 이 돌로 무덤을 쌓고 내력을 종이에 적어 왕산사 서까래에 숨겨두었 는데 약 200년 전 마을주민들에게 발견되었다고 전해져 온다.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고 내려오다가 왕산사에서 비를 피하던 중 왕산사 법당들보 위에서 내력을 알 수 없는 큰 나무상자를 민경원이라는 사람이 내려다보았다고 한다. 나무함 속에는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 칼 등의 유물과 명승 탄영의 왕산사기가 나와 이를바탕으로왕릉을되찾았고, 유물을보전하기위해조선정조17년 (1793) 덕양전을 짓고 봄가을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구형왕과 왕비 초상화는 어느때그린 초상화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몽고풍의 의상을 입고 있다.

구형왕릉에서 왼쪽 등산로를 따라 20분가량 걸으면‘류의태 약수터’ 가 나온다. 조선 명의 허준의 스승인 류의태는 화계마을에 터를 잡고 사람을 치료했는데 여기 약수터에서 뜬 물로 한약을 달였다고 한다. 화계마을의 상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 약수터 물은 위장병과 피부병 등 불치병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져 온다.



글·사진. 라순자 (경남 진주시 상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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