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사랑
- 제목
- 징사徵士의 고졸함이 깃든 논산 명재 고택
- 작성일
- 2015-01-09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3529
차를 가지고 들어가면 사랑채 마당이 바로 주차장이다. 이렇게 주차하기 편한 고택은 없다. 집을 지을 때 몇 백 년 후를 내다보고 주차문제를 고려한 것은 아닐까? 명재 고택의 사랑채는 담장이 없는 열린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쉬어 갈 수 있다.
사랑채 뒤편에 자리 잡은 안채는 떨어져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후면에 쪽마루를 설치하고 작은 쪽문을 내어 안채와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랑채의 마루에 걸터앉아 시선을 바로 아래로 떨어트리면 뜨락 위에 작은 석가산石假山을 조성해놓고 와유臥遊를 즐기던 선비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조금 높은 누마루에 올라서서 마당 쪽으로 난 들창을 열면 시야에 들어오는 앵글이 기막히다. 바로 앞 우물가 향나무를 건너면 그 앞에 연못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 天圓地方사상을 형상화하여 네모난 모양으로 석축을 쌓고 한편에 둥근 섬을 만들고 배롱나무를 심어 놓았다.
시선을 들어 앞을 바라보면 마을과 들을 건너 멀리 계룡산 산자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들창 너머로 보이는 시원스러운 풍광이 정말 멋지다. 그런데 이 창문의 크기가 요즘 디지털 TV화면 와이드비전의 규격과 같은 16:9의 비율이라니 정말 놀랍다.
사랑채 누마루 들창 위에는 '도원인가桃源人家', '이은시사離隱時舍'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대청마루에는 직계 후손인 노정 윤두식 선생이 쓴 ‘허한고와虛閑高臥’라는 액자글씨가 명재선생의 고졸함을 그대로 표현한 듯하다.
이 집에서 가장 멋진 공간을 소개하라면 사랑채 동편을 돌아 안채로 들어가는 작은 쪽대문이 있는 두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사랑채 뒤편 문살과 툇마루의 고졸함. 돌담의 투박한 질감. 안채로 통하는 앙증맞은 작은 쪽대문. 그 옆에 자리한 낮은 굴뚝의 단아함.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바닥에 깔리면서 나타나는 연무현상을 상상해 본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사랑채와 안채와 쪽대문의 크고 작은 지붕 들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만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연출하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이곳이 아니면,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정말 멋진 공간이다.
집을 짓다보니 우연히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만들어 낸 공간인지는 알 수 없다. 인위적으로 계산된 설계로는 이렇게 환상적인 공간미를 연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수덕사와 무위사의 대웅전 옆 벽면이 기하학적 평면 분할의 아름다움이라면, 이곳은 입체적, 공간적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정말 아름답다. 가시면 꼭 한 번 감상해 보시라.
글·사진 이대희 (충북 청주시 상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