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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민속 풍류를 사랑했던 가야금산조 명인 녹야 김윤덕
작성일
2018-06-29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715

민속 풍류를 사랑했던 가야금산조 명인 녹야 김윤덕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신라에 전한 가야금은 거문고, 비파와 함께 삼현의 하나로 꼽히는 중요한 향악기였다. 가야금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왕조까지 잘 전승되어 궁중뿐 아니라 궁중 밖 문인이나 여기(女妓)에 의해서도 즐겨 연주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가야금산조가 출현해 현대의 대표적인 민속 기악 독주곡으로 발전했다. 녹야 김윤덕은 스승의 산조에 새로운 가락을 짜 넣어 ‘김윤덕류’를 만들었고 그의 산조가 오늘날까지 가야금 연주자들에 의해 생생히 연주되고 있다. 01. 김윤덕(우측 첫 번째)의 가락은 흐름이 남성적이었으며 단모리 가락의 묘법이 뛰어나고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한겨례음악대사전 02. 김윤덕은 가야금을 반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가야금 병창에도 뛰어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3. 젊은 시절의 김윤덕 ⓒ한겨례음악대사전 04. 1972년 카네기홀 공연기념 음반 ⓒ정창관

녹야 김윤덕은 1918년 어두운 시대에 태어났지만, 풍류를 익히는 즐거움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3년 정읍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정지선에게 양금정악을 배운 것에서 시작해 가야금정악, 거문고 정악을 배우며 지방 풍류를 두루 익혔다.

1947년 상경한 김윤덕은 다양한 산조를 접하게 되었고 풍류에 대한 그의 열정은 더욱 커졌다. 산조에 대 한 지평을 넓혀가던 그는 정남희의 음악적 깊이와 격조에 큰 인상을 받았는데, 정남희의 산조가 뿌리가 실한 산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야금산조는 조선 말기 김창조가 시나위음악을 토대로 판소리 음악을 도입해 연주하며 유명해졌는데, 그즈음 한숙구와 박팔괘가 가야금산조를 짜서 연주하였고, 그 이후에 가야금산조 명인들이 탄생해 나름대로 가락을 지어 보유자의 이름을 딴 가야금산조들이 등장했다.

정남희는 가야금산조 1세대인 김창조와 한숙구가 사사한 안기옥에게 가야금산조를 전승받았고, 김윤덕 은 자신이 인정한 정남희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다. 가야금산조의 기본은 탄탄한 오른손 터치와 왼손 농현, 그리고 성음인데, 각자가 배운 산조가락을 변형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독창적인 연주법을 창안하는 것이 실력 차이를 만들어낸다.

음악적 재질이 매우 뛰어났던 김윤덕은 스승인 정남희의 산조에 새로운 가락을 짜 넣어 ‘김윤덕류 가야금 산조’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의 산조는 이영희, 황병기, 원한기, 이재숙, 김승희 등에게 이어졌다.

‘김윤덕류 가야금산조’는 중중모리와 자진모리장단에서 헤미올라(Hemiola)·신코페이션(Syncopation) 등 장구 장단과 엇갈리어 떨어지는 가락이 3배나 되는 등 복잡하고 다양한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담백한 농현의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흐름이 남성적이고 묘법이 뛰어나며 미세한 삼라만상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끌어낸다는 평을 받는다.

김윤덕은 가야금을 반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가야금 병창에도 뛰어났고, 거문고산조 등 다양한 민속 풍류를 아우르는 명인이었다. 당시 민속악인으로 유일하게 자신의 가락을 악보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는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대한국악원 국극사의 단원으로 활동하였고, 1950년부터 1961년까지 국립국악 원에 출강하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으며, 1960년대 이후부터 서울대학교와 국악예술학교 등에 강사로 재직하면서 후진 양성에 애정을 보였다. 그가 제자들을 ‘제자님’이라고 존대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음반 작업도 활발히 했는데, 1960년대에 거문고산조 음반을 취입하였고, 1977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기록 음반에 가야금산조를 취입하였다. 또한 『가야금구음정악보』, 『현금산조보』, 『현금정악보』, 『가야금풍류국문 신보』, 『가야금정악보』 등의 악보를 발간하기도 했다. 김윤덕은 국악기 명인들과 함께 해외공연을 다니며 우리 전통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 사절단 역할도 톡톡히 했는데, 미국 카네기홀에서는 10회 앙코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4월에 그를 기념하는 기념우표가 발행됐을 만큼 근대 국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글.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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