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平平日常, 창경궁 속 여성의 공간 모아보기
작성일
2023-07-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32

平平日常, 창경궁 속 여성의 공간 모아보기 지금의 창경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전각이 많지 않지만, 숙종 대 편찬한 『궁궐지』와 순조 대 제작된 《동궐도》를 보면 이곳 또한 한때는 전각이 매우 많았다. 1483년(성종 14) 성종이 세조 비 정희왕후, 덕종 비 소혜왕후, 예종 비 안순왕후를 위해 창건한 창경궁은 조선 궁궐 중에서 왕실 여성 처소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왕실 여성들이 평안한 일상을 보내던 곳, 창경궁 속 여성의 공간을 모아보자. 00.창경궁 경춘전 01.창경궁 통명전 02.창경궁 영춘헌과 집복헌 ©서헌강

동쪽 볕 따라온 봄을 느끼다, 경춘전(景春殿)

창경궁 내부로 깊숙이 걸어 들어오면 환경전 서쪽에 동쪽을 향하고 있는 경춘전이 있다. 경춘전은 1483년 성종이 어머니 인수대비(소혜왕후, 1437~1504)를 위해 지은 대비 침전이다. 인수대비는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경춘전은 왕비와 왕세자빈의 생활 공간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숙종의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1667~1701)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고,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1687~1757)도 이곳에 거처하였다. 


혜경궁 홍씨(헌경왕후, 1735~1815)도 세자빈 시절 경춘전에서 머물며 정조를 낳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당시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장조)가 용이 구슬을 안고 침실로 들어오는 꿈을 꾸어 꿈속에서 본 대로 그림을 그려 궁중 벽에 걸어 놓았다고 전한다. 이 그림은 현재 전해지지 않으나 『궁궐지』에 실린 순조의 「경춘전기」를 보면 경춘전 동쪽 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춘전 뒷마당의 화계는 그 위 언덕 너머 창덕궁 낙선재 후원과 연결된다. 이곳에서 머물던 왕비와 왕대비, 세자빈들은 뒷마당에서 낙선재까지 이어져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동쪽에서 볕 따라 들어온 봄을 느꼈을 것이다.


왕대비의 쉼터, 통명전(通明殿)

경춘전 북쪽으로 들어가면 넓적한 박석이 깔린 넓은 마당 위에 통명전이 있다. 남쪽을 향한 통명전의 서북쪽에는 높은 언덕이 있고, 그 너머로는 울창한 창덕궁 후원 숲이 있다. 통명전은 창경궁 내부에서 유일하게 용마루가 없는 전각이다. 일반적으로 왕이나 왕비 침전에는 용마루를 두지 않는다. 통명전 서쪽에는 돌로 단장한 작은 사각형 연못이 있는데, 연못 주위를 두른 돌난간과 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돌다리 좌우로 나뉜 연못 가운데 각각 놓인 괴석이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연못 위 물길을 따라가 보면 동그란 샘인 열천(冽泉)이 있는데, 이곳에서 연못 물이 나왔다. 통명전은 『조선왕조실록』에 왕대비들이 거처한 곳으로 많이 언급된다. 1575년(선조 8) 명종 비 인순왕후가 대비 신분으로 통명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1642~1683)도 대비 시절 통명전에 거처하였다. 또한 대비를 위한 각종 의례와 연회를 진행하는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영조 29년(1753) 12월 26일에는 영조가 대왕대비 인원왕후의 존호를 올리는 행사를 거행하였다. 1848년(헌종 14) 대왕대비 순원왕후(1789~1857)의 육순을 축하하는 행사가, 1877년(고종 14) 대왕대비 신정왕후(1808~1890)의 칠순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통명전은 창경궁 내전 건물 중 유일하게 월대를 갖추고 있어서 이와 같은 행사를 치르기에 적합하다.


정조의 사랑을 받은 유빈 박씨의 처소, 집복헌(集福軒)

통명전 동쪽 양화당 너머에는 ㅁ자 구조의 두 전각이 붙어 있다. 집복헌과 영춘헌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집복헌 기록은 영조대부터 찾아볼 수 있으나 숙종 대 편찬된 『궁궐지』에 집복헌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숙종 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동궐도》를 보면 집복헌 서북쪽에 영춘헌이 위치하여 지금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1830년(순조 30)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34년(순조 34) 재건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집복헌은 후궁의 처소로 알려져 있다. 1735년(영조 11)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1696~1764)가 이곳에서 장조를 낳았으며, 1790년(정조 14)에는 정조의 후궁 유빈 박씨(1770~1822)가 순조를 낳았다. 1786년(정조 10) 만 3세밖에 되지 않던 문효세자를 잃고 자식이 없었던 정조에게 순조의 탄생은 큰 기쁨이었다. 


1793년(정조 17) 유빈 박씨는 숙선옹주도 출산한다. 헌종 대 증보된 『궁궐지』에 따르면, 정조는 집복헌 옆 영춘헌에서 항상 거처하였다고 하는데, 유빈 박씨를 매우 사랑하였던 것 같다. 정조에게는 이 공간이 매우 소중했는지 아들 순조의 돌잔치와 세자빈 간택도 모두 집복헌에서 치렀다. 《동궐도》를 보면 과거 집복헌 뒤편에는 작은 정원이 있어 꽃과 나무가 심겨 있다. 아마 이곳에서 유빈 박씨는 꽃나무처럼 자라나는 자녀들과 함께 즐겁게 지냈을 것이다.




글. 강정인(궁능유적본부 궁능서비스기획과 전시큐레이터)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