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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자(死者)의 수호신, 고구려 사신도(四神圖)
작성일
2023-07-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06

사자(死者)의 수호신, 고구려 사신도(四神圖) 죽음이란 시대를 막론하고 두렵고 헤아리기 힘든 미지의 세계이다. 그래서일까, 과학이 발달하고 우주 생명의 신비가 하나씩 밝혀지는 21세기에 와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영생을 꿈꾼다. 고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영원한 삶을 믿었고, 죽은 이후에도 생전의 집처럼 꾸민 공간에서 영원히 안식(安息)할 수 있기를 갈구했다. 이러한 흥미로운 장례문화는 육신의 삶이 끝나도 영혼은 죽지 않고 다음 세상[來世]으로 이어진다는 고대인의 영혼불멸사상(靈魂不滅思想)과 계세사상(繼世思想)에서 비롯된다. 01.천상세계, 덕흥리 벽화고분, 408년, 고구려

영원한 생명을 꿈꾸다

고대 중국에서는 권력자가 사망한 후 그가 생전에 쓰던 물건이나 값비싼 귀중품은 물론 타고 다니던 말과 마차, 심지어는 생전에 곁에 두던 여인이나 신하, 시종들까지 저세상 길에 동행시키는 경우가 흔했다. 순장으로 불리는 이러한 악습은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인문학의 발전과 함께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대두되며 나무나 흙으로 만든 인형[俑]으로 대체됐다. 이후로는 무덤을 현실의 집처럼 축조하여 사자(死者)가 염원하는 이상세계를 그림으로 남기고 또 흙으로 된 인형이나 세속의 모형들을 제작해서 죽은 이를 위한 풍요로운 사후의 세상을 꾸미는 데 정성을 다했다.


고구려의 벽화고분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 등장하고 발전해 갔다. 고구려인들의 무덤 속에 그려진 벽화에는 그들이 꿈꾸었던 저세상의 모습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신선이 되어 옥녀와 서수들이 노니는 천상세계(<그림 1> 참조)를 꿈꾸기도 하고, 부처님의 자비로 극락왕생하여 고통 없는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기를 희구하기도 했다(<그림 2> 참조). 또 동서남북의 사방에 사신만을 정성스럽게 모셔놓고 이들의 비호 아래 평화롭고 안전한 사후의 삶을 염원하기도 했다.


02.예불도, 장천1호분, 5세기 전반, 고구려

사자의 수호신, 사신

사신도가 주축이 되는 고분벽화는 6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즈음 고구려인들은 신령스러운 사신(四神)의 보호를 받으며 무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세계를 이상적인 사후 세계로 믿었다. 따라서 고구려 후기 벽화에는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포효하듯 생동감 있는 기백을 뿜어내는 사신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신은 실재하는 동물일까? 아니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동물일까?


03.백호, 진파리1호분, 6세기 중반, 고구려

사신은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네 마리의 신령스러운 또는 신격화된 동물이란 뜻이다. 사신이 언제,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이다. 그러나 최근까지의 고고학 발굴과 연구 성과에 따르면 사신은 중국 신석기시대의 별자리 형상에서 처음 비롯됐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사방의 방위신(方位神)과 수호신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굳힌 것으로 짐작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인류는 이전과 달리 효율적인 농사 시기를 알기 위해 정확한 역법(曆法)을 구축해야만 했고, 그 결과 밤하늘에 육안으로 관측되는 28개의 별자리, 즉 28수(宿)를 기준으로 해와 달의 운행 주기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이때 사방의 별자리를 효과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별자리로부터 연상되는 사물의 형상을 고안해서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형상이 바로 지금의 동 청룡, 서 백호, 남 주작, 북 현무이다. 따라서 사신은 사방의 별자리에 부여한 형상에서 기원한 것으로, 실재(實在)하는 동물이 아니라 고대인들의 천문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탄생하였다. 그 후 시대가 흐르면서 도교의 수호신으로서 그 지위와 역할이 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04.선인화생, 오회분4호묘, 7세기 전반, 고구려 05.주작, 강서대묘, 7세기 전반, 고구려, 동북아역사재단 2D 복원

고대 회화의 정수, 강서대묘 사신도

사신도가 등장하는 고구려 후기의 벽화고분은 중국 지안의 통구사신총과 오회분 4호·5호묘 그리고 평양 일대에 위치한 진파리1호분, 강서중묘, 강서대묘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고구려의 사신도벽화는 무엇보다도 무덤방의 벽면 전체를 가로지르며 대범하게 표현해 낸 구도가 압권이다. 거기에 사뿐히 떠다니는 아름다운 꽃과 구름으로 주위의 공간을 장식해 관람자를 상서롭고 신비로운 신선들의 세계로 인도한다(<그림 3> 참조). 아니면 아예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선인이 탄생하는 장면을 묘사하여, 무덤의 공간을 새로운 생명 탄생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버린다(<그림 4> 참조). 그도 아니면 사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오로지 사신의 웅혼한 기백과 기상으로만 무덤의 벽면을 채우는 최고의 회화적 경지를 보여준다.


고구려 사신도의 뛰어난 솜씨는 강서대묘에 이르러 정점을 이룬다.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한국 고대 회화의 백미이다. 잘 다듬은 석재를 쌓아 올려 무덤방을 짓고, 바탕 마감도 없이 짙은 안료와 먹 선으로 대상을 표현해 낸 솜씨는 당대의 중국마저 뛰어넘는 최고의 회화 수준을 자랑한다. 무엇보다도 동벽의 청룡, 서벽의 백호, 북벽의 현무 그리고 남벽 입구 양옆의 주작(<그림 5> 참조)이 서로 호응하며 발산해 내는 에너지는 조화로운 도교의 우주관을 구현한 듯 신비롭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이와 같은 사신의 비호 아래 무덤의 주인공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영원한 안식 속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글, 사진. 김진순(인천공항T1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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