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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왕실의 시공간을 기록한 예술품, 의궤
작성일
2012-10-1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297



기록문화와 의궤

조선은 훌륭한 기록문화의 전통을 가진 나라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아홉 가지의 기록물을 등재했다. 그 중에서 조선시대에 작성된 것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 의궤, 『일성록』, 『훈민정음』, 『동의보감』 등 여섯 가지이다. 앞의 네 가지는 춘추관이나 승정원, 예조, 규장각과 같은 국가 기관에서 정해진 범례에 따라 체계적으로 작성한 기록물이다. 또한 『훈민정음』에는 백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노력이, 『동의보감』에는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하려는 선조와 광해군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국가 기관에서 편찬한 관찬서官撰書로서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잘 보여준다.

의궤는 그 중에서도 가장 백미에 해당하는 기록물이다. 우선 의궤라는 책 자체가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다. 중국이나 고려 시대에는 불교 의식을 기록한 의궤라는 책이 있었다. 그러나 국가나 왕실의 주요 행사에 관한 일체의 기록을 정리한 의궤는 조선에서만 나타난다. 의궤는 조선이 개국된 직후부터 대한제국의 순종 황제가 사망하기까지 계속해서 작성되었다. 따라서 의궤는 조선 왕실의 역사와 운명을 함께 했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의궤의 내용과 가치

의궤는 특정한 행사를 주관한 관청에서 직접 작성했기 때문에 가장 풍부한 기록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적 행사를 거행하려면 이를 주관할 도감都監을 설치했다. 도감은 오늘날의 위원회에 해당하는 임시기구이다. 도감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끝나면 의궤를 편찬할 의궤청이 설치되었고, 도감에 소속되어 활동했던 관리 중 일부가 의궤청 관리로 임명되었다.

이들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국왕이나 왕세자의 명령, 신하들과의 대화, 관청 사이에 오간 공문서, 행사에 참여한 인원과 소요 물품, 비용에 관한 일체의 기록을 수집하여 분류하고 날짜순으로 정리했다. 또한 행사장의 배치 상황이나 국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행렬의 모습, 행사에 사용되는 악기, 복식, 건물의 구조를 상세한 그림으로 그려 함께 수록했다.

이런 기록이 있기에 우리는 정조의 화성 행차를 수행했던 6천여 명의 명단과 소속 기관, 행렬의 순서를 알며, 화성 공사에 참여한 기술자의 명단과 근무 일수를 개인별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소요 비용을 통해 기술자의 임금과 쌀값의 동향을 알 수 있으며, 그림을 통해 혜경궁이 타고 간 가마나 왕실 잔치에 연주된 음악과 무용을 복원할 수 있다.

의궤는 훌륭한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도 가지고 있다. 의궤는 열람자나 보관 장소에 따라 어람용과 분상용으로 구분되며, 국왕이 열람하는 어람용은 당대 최고의 수준에서 작성되었다. 어람용 의궤는 초주지草注紙라는 고급 종이에 사자관寫字官이라 불리는 서예가가 정성을 들여 글씨를 썼고, 붉은 테두리선을 둘러 왕실의 위엄을 더했다.

또한 아름다운 문양이 있는 놋쇠 물림과 다섯 개의 박을정, 국화동을 사용하여 호화롭게 장정하며, 표지는 고급 비단을 사용하여 책의 품격을 높였다. 국왕이 열람하는 의궤의 표지는 초록색 비단이지만, 대한제국이 건설된 이후 황제는 황색, 황태자와 친왕(親王, 황태자를 제외한 황제의 아들)은 붉은색, 황후는 초록색으로 표지 색깔이 다양해졌다.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군이 어람용 의궤를 집중적으로 약탈한 것은 누가 보아도 귀중한 책임을 알 수 있는 어람용 의궤의 외양 때문이었다.



의궤의 시련과 반환

의궤에는 시련의 시기도 있었다. 조선 전기에 작성된 의궤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의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600년에 작성된 것이다. 19세기 후반에는 프랑스군의 침략으로 외규장각에 소장된 다수의 의궤가 소실되었고, 300책에 가까운 의궤만 약탈되어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옮겨졌다.

20세기 초에는 조선총독부에서 관리하던 규장각 의궤 가운데 167책이 일본의 궁내부로 옮겨졌다. 고종이 사망한 후 왕실 가족의 실록을 작성하는 데 참고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이는 모두 국운이 기울어져 자국에서 편찬한 기록물마저 온전히 관리하지 못하던 시절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다행스럽게도 2011년에는 프랑스와 일본으로 반출되었던 의궤가 대부분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1990년대 이후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의궤를 돌려받으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의궤의 활용

조선 왕실의 의궤儀軌는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라는 책의 이름처럼 후대의 행사에 모범이 되게 하려고 작성되었다. 조선이 유교식 예치禮治를 제대로 실천하는 문화국가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오늘날의 의궤는 주로 조선시대의 왕실문화를 연구하고 국가적인 행사를 원형대로 복원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의궤는 조선 왕실의 시공간을 상세하게 기록한 예술품이며, 우리 선조가 가졌던 기록문화의 수준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글·사진·김문식 단국대학교 사학과교수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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