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한 가닥 한 가닥 아로새겨 전통의 가치를 빚는 인내의 작업
작성일
2012-10-1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999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전통공예

우리의 옛말 중에는 듣기에도 부르기에도 고운 단어들이 많다. ‘실드리다’는 금속표면에 홈을 파고 금선金線 또는 은선銀線을 끼워 넣어서 장식하는 기법을 뜻하는 순우리말. 입사入絲의 옛말이다. 옛말도 요샛말도 입에 설듯이 입사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입사를 보고 자개로 잘못 아는 경우도 허다하다. “은입사는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정수라고 일컬어 질 수 있어요. 아름다운 문화유산이죠. 순우리말로는 은실박이라고 불러요. 너무 예쁘지 않나요?”

입사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우리의 공예기술로, 고려시대의 불교공예품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입사장식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입사가 매우 성행하여 국가에서 입사를 전업으로 하는 공장을 설치하여 왕실의 작품을 제작했다. 입사문양에서만 볼 수 있는 뛰어난 조형감각과 독특한 회화성, 해학성, 서정성은 우리 조상의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승경란 전수조교 역시 스물여섯 살에 처음 입사를 알게 됐고, 단번에 그 매력에 매료되어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처음 선생님을 뵀을 때 정말 놀랐어요. 빛이 난다고 하잖아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요무형문화재 입사장 홍정실 보유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입사를 배우겠노라 마음을 굳혔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돈하고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일러주었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인, 참고 기다림의 길

스승 홍정실 보유자는 머나먼 길에 들어선 승경란 조교에게 늦더라도 제대로 바르게 가는 법을 가르쳤다. 처음 얼마간은 박물관을 다니며 안목을 기르게 했다.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깨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자세를 익혔다. 앉을 때는 어떻게 앉고, 정을 갈 때, 쪼음질 할 때의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 또 손과 손목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하나하나 익혔다. 몸의 자세만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를 바로잡는 과정이었다. “은입사의 가치는 무엇인지, 은입사가 이어져 내려온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세심하게 가르쳐주셨어요. 기술적인 면은 오래 기다려 주셨던 것 같아요. 잘 못한다고 나무라신 적은 없어요. 잘못 하면 그저 ‘다시 한 번 해봐라’ 하셨죠. 시간을 가지고 오랫동안 기다려 주셔서 기술적인 면은 물론이고 보는 안목이 좋아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본격적인 기술전수의 시작은 쪼음질이라는 기본동작을 배우는 것이었다. 온종일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지루한 수련이었지만 승경란 조교에게는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재밌기만 했다. 여름휴가 때도 놀러갈 생각은 않고 박물관에 갔고, 심지어 갓난쟁이를 등에 업고 가기도 했다. 망치를 내리칠 때 정 한가운데를 내리쳐야 하는데 손등을 내리치기도 많이 했죠. 정말 정신집중이 안 되면 망치가 엇나가고, 정을 갈아도 삐뚤어지게 돼 있어요.” 망치가 정에 딱 들어맞을 때의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았는지 모른다.

쪼음질 해놓은 모양이 어찌 그리 예쁘고 은실 한 올 한 올이 얼마나 곱던지, 그렇게 매 순간마다 기쁨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고 남다른 무늬를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회화적으로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입사의 큰 특징, 장인의 세계를 얼마든지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 승경란 조교는 고려시대 정병 유물에 나타난 축 늘어진 버들가지 아래 자유롭게 노니는 오리새끼들, 그 위를 지나가는 철새들… 그런 아름다운 풍경과 한국적인 정서를 새겨내고 싶다.

“제 나름대로 연구해서 촛대를 재현한 작품을 전시에 냈었어요. 선생님과 전수자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전시회였죠. 그 때 선생님께 배우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어요. 정말 애 많이 썼다고, 수고했다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날 뻔 했어요. 감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지만 홍정실 보유자에게 칭찬을 들었던 것이 그녀에게는 더 의미 있는 상이었다. “조금씩 더 나은 결과물이 있으면 언젠가 제 생애에 걸작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살면서 꼭 이루고 싶어요. 흉을 볼 지도 모르지만, 전 제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답니다.”



더함 없는 만족만큼 간절한 바람

승경란 전수조교에게는 개인적인 성취만큼이나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입사라는 전통예술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오래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이 소장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어요. 그럴 만큼 많이 만들어지지도 않고요. 그런 부분이 안타까워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몇 가지 정도는 대중적으로 부담 없이 쓰일 수 있는 작품, 반지나 브로치 같은 장신구를 만드는 거였어요.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았죠. 앞으로는 가구도 시도해보려고 해요.” 특히 젊은 층에서 전통공예에 관심을 갖도록 전통미에 현대적인 미를 입히는 시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일생의 걸작을 만들고 싶은 노력에도, 장신구나 가구 같은 생활용품에 적용하는 시도에도, 그 한편에는 입사의 맥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관심이 평생의 업으로 짊어지고 나가려는 열정으로 이어지는 것에서 실현되는 일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입사공예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작품은 1년이 걸리기도 하고, 적어도 2~3개월은 걸려요. 서너 번 전시회 하고 나면 1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오로지 밥 먹고 작업만 하는 거죠. 이런 생활이 저에겐 행복이에요. 정말 행복하답니다.”



글·성혜경 사진·엄지민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