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종묘제례, 조선 백성이 되어
작성일
2012-10-1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307



조선시대 종묘사직은 나라의 중대사였다. 의례를 중시하던 조선시대에 특히 왕가의 조상신을 제사 지 내는 종묘는 무엇보다 중요했고 농업이 근본이었던 전통사회에서 토지와 곡식 신을 섬겨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는 의식은 중요한 일이었다.

사극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종묘사직이다. 나라가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혹은 무슨 일을 벌이고자 할 때 대신들은 흔히 ‘종묘사직을 위함이라’는 말을 자주하곤 하는데 그 때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다. 혹 개인의 영달을 위해 했던 말이더라도 그것을 나라 걱정하는 마음으로만 여기고 있었으니 이는 나의 무지함인지.



문화재에 관심 갖게 된 것은 나이가 들어서였다. 젊은 시절에야 아무래도 전통보다는 새로운 문화에 호기심을 가졌고 또 우리 것보다는 세련되어 보이는 외국문화를 동경했다. 문화재를 바라보는 이런 나의 미성숙한 시선은 세월을 머금고 변해가고 있다. 몇 해 벼르던 일을 올해 드디어 이루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종묘제례 봉행을 눈에 담는 일이다.

오랜 기다림이어서 그런지 출발부터 가슴이 설렛다. 시간 전에 행사장에 도착하여 여러 풍경을 살펴보고 팸플릿도 챙겨 미리 읽어두고 싶었다. 서둘러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도착한 광화문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화려한 색으로 장식된 어가와 북 앞에서 외국인 관람객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 없었다. 매년 5월 첫째 주에 열리는 종묘제례. 일 년에 한번 있는 행사다 보니 한 번 놓치면 또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요즘은 교통이 좋아 전국이 일일권이라고는 하지만 지방에 사는 우리로서는 이런 행사에 참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거리도 멀거니와 가정의 달 5월이면 이것저것 다른 행사가 겹치기 때문에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묘제례는 조선왕조의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 한다.

종묘와 종묘제례, 제례악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교에서의 제례는 엄숙함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종묘제례에 음악과 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하긴 종가에서도 종손의 취임식이라고 할 수 있는, 슬픈 제사가 아닌 길제吉祭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지난 5월 6일 첫째 주 일요일의 이날 행사는 11시 30분에 경복궁에서 출발하여 세종로와 종로를 거쳐 종묘까지 어가 행렬, 오후 1시부터는 영녕전제향, 그 다음 해거름에는 정전제향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가행렬은 말 그대로 왕이 왕실의 제사를 올리기 위해 종묘로 가는 길을 말하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조선시대 종묘대제에는 왕이 세자와 문무백관, 종친을 거느리고 종묘에 나와 친히 제향을 올리는데 그것을 재현한 이 행사는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복장은 싱그러운 오월의 거리를 더욱 눈부시게 만들었다. 유교문화의 핵심인 예와 악을 상징화한 종묘대제는 세계가 감탄할 만한 우리의 문화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영녕전에서 흘러나오는 제례악은 어가행렬을 따라 지친 내 다리를 감싸주듯 감미로웠다.




글·사진·최영자 문화관광해설사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