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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변치 않는 푸름, 강인한 생명력을 그리다
작성일
2017-05-0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461

변치 않는 푸름, 강인한 생명력을 그리다 - 겸재 정선의 화폭에 뿌리내린 ‘나무’18세기 전반에 활약한 겸재 정선(1676~1759)은 조선에 실재하는 경관을 화폭에 담으며 진경산수화의 유행을 선도한 인물이다. 당시 그는 그림의 성인, 화성(畵聖)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였다. 평생 전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금강산과 단양팔경, 경상도와 한양 근처의 진경을 그린 겸재 정선. 실경(實景)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보이는 그대로를 실감 나게 재현해 내니 사람들은 정선의 작품을 보며 꼭 진짜 같다는 평과 함께 환호를 보냈다. 진경을 그리다 보니 산과 물과 함께 언제나 등장하는 것이 ‘나무’였다. 01.사직송도 ⓒ고려대박물관

예술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소나무

정선의 그림 속 나무는 다양한 수종을 이루고 있으며 계절과 지역, 장소에 따라 달리 등장한다. 그는 진경 외에 나무 그림에서도 일가를 이루었으며 정선이 가장 많이 그린 대상은 역시 소나무였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자 예술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다. 회화적으로 보자면 소나무는 이미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했다. 7세기에 조성된 진파리 고분에는 동서남북의 수호신을 표현한 사신도가 있는데 그중 북쪽 벽의 현무와 함께 소나무가 등장한다. 백제 회화 가운데 주요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산수문전>에는 겹겹이 중첩된 산이 등장하는데, 그 산등성이에 우뚝우뚝 솟은 유일한 나무 또한 소나무이다.

이처럼 소나무에 대한 선호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뚜렷이 회화 속에서 확인된다. 전해지는 그림이 지극히 드문 고려시대에도 소나무는 나무 중 가장 애호되는 그림 소재로서 존재했다. 고려시대 회화 중, 화가가 알려진 거의 유일한 작품인 해애의 <세한삼우도>에는 대나무, 매화와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늘 푸른 낙락장송(落落長松)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과 함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만들었다.

사실적이고 섬세한 소나무 <사직송도>

겸재 정선은 금강산 등을 비롯하여 여러 명승지의 절경을 그리면서 수많은 수풀을 이룬 소나무 군상을 빠르게 담아냈다. 그러다 보니 T자형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수법으로 소나무를 새롭게 표현했다.

정선은 독립적인 화제로서 소나무와 잣나무를 다루기도 했다.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된 <사직송도>(그림1)는 사직단에 있던 노송을 그린 것으로 50대 즈음 왕성한 창작력을 불태우던 시절의 역작이다. 세월의 무게를 가지가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쇠했지만 여전히 창창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 소나무는 꽤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섬세하고 정교한 필치로 솔가지를 하나하나 그려내는 정밀한 표현력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특히 조선 후기 최대 수장가의 한 사람인 소론계 명류 김광수의 청으로 그려준 <사직송도>를 연상시킨다. 김광수는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정선에게 그림을 주문하곤 하였는데, 1728년에는 53세의 정선에게 사직송을 그려 줄 것을 청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본고에 소개되는 <사직송도> 역시 김광수의 청으로 그린 작품으로 여겨진다. 정선의 솜씨가 무르익던 50대 중반에 제작한 이 작품은 정선의 소나무 그림 중 가장 사실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02.노송영지도 ⓒ인천송암 미술관 03.노백도 ⓒ호암미술관

나무의 강한 생명력을 담은 <노송영지도>와 <노백도>

정선이 이후에 제작한 소나무 그림 중에는 80대가 다 되어 그린 <노송영지도>(그림2)가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정선 작품 중에서도 손꼽히는 대작으로서 꿈틀거리는 줄기를 가진 웅건한 소나무를 그려냈다. 거대한 소나무 아래에는 영지가 자리 잡고 있어 이 작품이 장수를 기원하는 선물로 제작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정선의 작품 중에서도 소나무 줄기가 이처럼 꿈틀거리듯이 표현된 것은 드문 경우인데, 잣나무를 그린 <노백도>(그림3) 역시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논어』에도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구절이 있듯이, 송백은 예로부터 불굴의 지조와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정선의 <노백도> 또한 용트림하듯이 뒤틀리면서도 강하고 힘찬 모습을 보여주는데, 필선 또한 강하고 활력이 넘친다. 나무의 모습이 마치 목숨 수(壽)자를 초서체로 쓸 때의 모습과 흡사하기도 하여, 이 작품에서는 늙어서도 웅건함이 넘치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담아 선물했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나무를 화면 중앙에 배치한 단순한 구조이지만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나뭇가지를 통해 화폭 안에서 많은 변화를 감상할 수 있다.

<노송영지도>와 <노백도>는 정선이 남긴 나무 그림 가운데 손꼽히는 대작들로서 만년까지 안경을 끼고 왕성하게 그림을 그린 그를 연상시키는 수작들이다. 오랜 세월을 이겨내면서 육중한 모습을 이룬 역강(力强)한 소나무와 잣나무는 보는 이에게 강한 감동과 존경심을 품게 한다.

꿈틀거리는 형태뿐 아니라 이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빠르고 힘찬 필력과 짙은 먹의 표현은 정선이 자랑하는 특기인데, 이 나무들 역시 강한 생명감과 자신감을 표방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사람들은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가 지닌 상징성과 이미지를 활용하여 그들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글‧박은순(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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