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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완벽한 조형과 비췻빛 향(香) 청자 향로
작성일
2016-11-0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346

완벽한 조형과 비췻빛 향(香) 청자 향로 01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 ©국립중앙박물관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피웠던 향

1123년 고려를 방문했던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어미와 자식이 함께 있는 짐승 모양의 향로는 은으로 만들었는데 조각기법이 정교하며 뒤를 돌아보면서 입을 벌린 채로 향을 뿜어낸다. 회경전과 건덕전에서 공식 회합이 있을 때 양 기둥 사이에 놓아둔다. 조서*를 맞을 때는 사향(麝香)을 피우고 공적인 모임 때는 독누(篤耨), 용뇌(龍腦), 전단(旃檀), 침수(沈水) 등을 태운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왕실 행사와 각종 의례, 그리고 여가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해 향을 피웠다. 의례에서는 그 시작을 알리기 위함이었고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는 권청(勸請)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당시 사용했던 향은 향 분말을 둥글게 빚어 만든 향환(香丸)이나 틀에 넣고 찍어낸 향전(香篆)·향목(香木) 등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 그려진 <혜군고존자도(慧軍高尊者圖)>에는 수도승 곁에 향완(향을 담은 사발)이 놓여있는데, 그림 속 향완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어떤 것일지 자못 궁금하다.

고려시대 사람들이 향을 피우는 목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해충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고 둘째, 의복의 냄새와 좀벌레를 예방하며 셋째, 종교의식이나 의례를 행할 때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향을 어떤 방식으로 피웠는지 구체적인 자료는 확인할 수 없지만, 몇몇 기록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향유했던 향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02 혜군고존자도 ©국립중앙박물관

관료이자 문인이었던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몇 편의 글을 남겼다. 쓸쓸한 암자에 향로가 놓인 한적한 풍경을 읊은 구절이나, 향을 피우는 가운데 돌솥에 차를 달여 마시며 귤을 먹는 모습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또 술자리에서 침향(沈香) 연기 때문에 노래하는 목청이 메인다는 내용도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 공식적인 의례나 종교 활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여가를 즐길 때 역시 향을 피우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뛰어난 도자공예를 선보인 향로

『선화봉사고려도경』의 「기명(器皿)」 부분에는 고려의 다양한 그릇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특히 ‘도로조(陶爐條)’의 내용이 흥미롭다.

산예출향(狻猊出香)도 비색이다. 위에는 짐승이 웅크리고 있고 아래에는 봉오리가 벌어진 연꽃무늬가 떠받치고 있다. 여러 그릇 가운데 이 물건만이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 그 나머지는 월요(越窯)의 옛날 비색이나 여주에서 요즘 생산되는 도자기와 대체로 유사하다.

위의 내용은 고려시대 도자공예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산예출향’은 사자처럼 생긴 상상의 동물이 장식된 향로를 일컫는다. 당시 송나라의 문신 서긍은 청자로 만든 연꽃 모양 향로의 뚜껑 위에 산예가 장식된 것을 보고 청자의 색은 비색이며 매우 뛰어난 솜씨로 만들어졌다고 품평하고 있다.

서긍이 봤던 이 청자 향로와 가장 유사한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60호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를 꼽을 수 있다. 이 향로는 향을 피우는 몸체에 세 개의 귀면(鬼面) 모양 다리가 붙어 있고 뚜껑 위에는 정성 들여 만든 사자가 장식되어 있다. 따라서 몸체에서 향을 피우면 뚜껑에 장식된 사자 입을 통해 향이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사자의 두 귀는 아래로 처져있고 코는 들려 있으며 살짝 벌린 입에는 가지런하게 이빨이 드러나 있다. 목덜미의 갈기는 탐스럽고 몸통은 매끈하다. 넙적하게 만든 꼬리는 등에 착 감겨 있어 안정감을 주고, 발 또한 맹수의 것으로 손색이 없도록 다부지게 표현하였다. 특히 가슴에 방울을 달고 오른쪽 발로 보주(寶珠)를 잡고 있는 모습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사자 중 매우 드문 예에 속한다.

최근 태안 마도 인근 바다에서 ‘청자 사자형 향로’ 2점이 인양되어 주목받은 바 있다. 이목구비 형태와 전체적인 모습이 어색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자 향로와 차이가 있지만, 이를 통해 고려시대에 다양한 사자 장식 향로가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보 제95호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는 고려청자, 더 나아가 고려시대에 완성된 우수한 공예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향로는 투각된 둥근 뚜껑과 연꽃잎 모양의 몸체, 그리고 세 마리의 토끼가 받치고 있는 넓적한 모양의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로 다른 형태의 조형물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하나의 완성도 높은 조형물로 승화되었다. 먼저 뚜껑을 보면, 전면에 칠보(七寶) 무늬를 투각하고 문양의 교차 지점에는 작은 점을 백상감하여 장식성을 높였다. 몸통에는 틀로 찍어낸 꽃잎들을 하나하나 붙여 활짝 핀 연꽃으로 만들고, 꽃잎에는 가늘게 잎맥을 표현하여 섬세함을 부여하였다.

특히, 향로 받침을 떠받치고 있는 앙증맞은 토끼 세 마리는 향로의 조형미를 배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작은 상형물이지만 토끼의 눈에 검은 철화 점을 찍어 영특한 눈매를 만들어 주었으며, 그로 인해 청자 토끼는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음각·양각·투각·퇴화·상감·첩화·상형 등 모든 장식 기법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진 이 향로는 12세기에 제작된 절정기의 고려청자 모습을 잘 보여준다.

완벽한 조형과 비색의 조화로 완성된 청자 향로는 실용성과 더불어 미적 성취까지 거둔 고려청자의 백미라 할 수 있다. 1,000여년 전, 화려하고 아름다운 고려청자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비췻빛 향은 어떠한 감흥을 주었을까.

03 청자 사자형 향로(태안에서 발견된 향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04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국립중앙박물관

* 조서 : 왕의 선포문이나 명령을 일반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

 

글‧강경남(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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