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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한민국 교육수도’를 자임하는 대구의 근대교육시설
작성일
2023-10-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46

‘대한민국 교육수도’를 자임하는 대구의 근대교육시설 1601년 경상감영이 설치된 뒤로 대구는 영남지방의 행정, 경제, 군사, 문화 등을 총괄하는 중심지가 됐다. 1895년(고종 32) 경상감영의 폐지 이후 부청 소재지로 격이 낮아지기도 했지만, 1905년 경부선 철도의 개통과 함께 근대도시로 빠르게 성장했다. 교통이 편리해진 대구에는 일본인과 일본 자본이 대거 유입됐고, 수많은 근대교육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00.옛 대구읍성의 동문 근처에 자리 잡은 근대교육시설

근대교육의 산실

영남 내륙의 한복판에 위치한 대구는 오래전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조선 세조 12년(1466) 대구군은 대구도호부로 승격, 임진왜란 직후 선조 34년(1601)에 지금의 경상남북도를 아우르는 도청인 경상감영이 설치됨에 따라 영남지방의 행정, 교통, 군사의 중심지로서 대구의 위상이 한층 강화됐다. 1658년(효종 9)에는 대구객사 주변 약재시장이 개설되면서 조선 3대 약령시 중 하나인 대구 약령시의 역사가 시작됐다.


약령시 못지않게 규모도 크고 유명한 대구의 시장으로 서문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원래 이 시장은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조선팔도 3대 시장중 하나로 손꼽히던 대구장이며, 처음에는 대구읍성 북문 밖의 자그마한 시장이었다. 낙동강을 경계로 좌도와 우도로 나뉘던 경상도가 1669년(현종 10) 하나로 통합된 뒤부터 대구장의 거래량도 많이 늘어나면서 급속히 규모가 커졌다. 장터도 북문 밖에서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로 옮겨 왔다.


약령시와 대구장이 들어선 대구는 경상도 내륙의 상업 중심지로서 오랫동안 호황을 누려왔다. 상업의 발전과 도시의 확장, 경제적 풍요 등을 바탕으로 유달리 교육열이 높았던 대구는 ‘근대교육의 산실’이 자리 잡았다. 대구에서 처음 문을 연 근대 학교는 1896년 설립된 대구부공립소학교이다. 그 뒤로 대구공립심상소학교(1905년), 대구공립보통학교(1905년), 계성학교(1906년), 신명학교(1907년), 대구농업학교(1910년), 대구공립고등여학교(1915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1916년), 대구사범학교(1923년), 대구의학전문학교(1923년), 동운정공립심상소학교(1935년), 덕산공립심상소학교(1938년) 등이 잇달아 개교했다.


01.현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병원 본관으로 활용 중인 구 도립대구병원 건물 02.대구시 도심 한복판의 고층건물에 둘러싸인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과 강당 03.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90년 전에 건축된 건물인데도 여전히 말끔하고 아름답다.

옛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된 근대 건축물

오늘날 대구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는 중구 동성로이다. 대구 사람이 “시내 간다”라고 말하면 동성로에 간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동성로는 옛 대구읍성의 철거된 동쪽 성벽을 따라 개설된 도로이다. 대구읍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590년(선조 23)에 처음 축조됐고, 1736년(영조 12)에는 석성으로 중수됐다. 1870년에도 대구읍성이 중수되면서 읍성의 네 모퉁이마다 정해루(동장대), 주승루(서장대), 선은루(남장대), 망경루(북장대)라는 누각이 세워졌다. 오늘날의 동성로는 옛 대구읍성의 동북쪽에 세워진 정해루, 동문인 진동문, 남동쪽에 자리한 선은루 사이를 잇는 큰길이다.동성로와 가까운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구 도립대구병원,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과 강당, 대구 삼덕초등학교 구 관사, 대구 동인초등학교 강당 등 근대교육시설을 찬찬히 둘러봤다.


현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본관인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사적)을 먼저 찾았다. 1933년에 지어진 이 붉은벽돌 건물은 90년의 풍상을 견뎌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건물의 정면 가운데에는 4층으로 된 사각탑(Turret), 옥상에는 옥탑이 설치됐다. 현관 포치(porch, 비바람을 막기 위해 출입구 위에 설치하는 구조물)를 중심으로 완벽하게 좌우대칭을 이루며, 전체적으로 안정감과 웅장함이 느껴진다.


구 도립대구병원(사적)과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은 왕복 2차로 도로를 경계 삼아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남향으로 배치된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과 북쪽을 바라보는 구 도립대구병원 사이의 거리는 70여 m에 불과하다. 구 도립대구병원은 1907년 2월에 대구동인의원으로 처음 개원한 이후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1910년 9월에는 관립대구자혜의원, 1912년 5월에는 경상북도 도립의원으로 개명됐다. 1928년에 지어진 르네상스풍의 2층 벽돌 건물은 큰 변화없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았다. 1952년 경북대학교가 개교하면서부터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사용돼 왔으며, 한국 근대 병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된다.


04.구 대구사범학교 본관의 포치. 공 모양의 대형 석물과 수평 돌림띠 장식이 눈길을 끈다. 05.2단으로 경사진 구조의 만사르 지붕이 두드러져 보이는 대구 동인초등학교 강당 06.삼덕마루 작은 도서관으로 탈바꿈한 대구 삼덕초등학교 구 관사 07.어린이를 위한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진 대구 삼덕초등학교 구 관사 내부

수평 돌림띠와 비늘판 붙임, 만사르 지붕 이야기

경북대학교 의과대학병원 본관에서 도보로 10분 안팎의 거리에는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과 강당(국가등록문화재)이 있다. 대구사범학교의 전신인 경북도립 사범학교는 일제가 식민지 교육정책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교원의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했다. 지금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고등학교 내의 부속건물이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데다가 바로 앞쪽에 왕복 10차로의 달구벌대로가 있어서 좀 답답해 보인다. 1923년 건립된 본관은 이제 역사관으로 바뀌었지만, 1925년에 세워진 강당은 여전히 제 소임을 다하고 있다.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 건물은 정면 포치에 공 모양의 대형 석물과 수평 돌림띠로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본관과 이웃한 강당에는 맞배지붕의 앞뒤로 6개의 반원형 지붕창을 뒀다. 외벽의 양옆 모서리에 세워진 버팀기둥이 구조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본관 건물 앞에는 대구사범학교 4기 졸업생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가 새겨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 앞에서 달구벌대로를 따라 동쪽으로 500m쯤 가면 삼덕초등학교 입구에 도착한다. 이 학교는 1938년 덕산공립심상소학교로 문을 열었다. 그 이듬해에 교장 관사로 지어진 대구 삼덕초등학교 구 관사(국가등록문화재)는 학교에서 약 100m 거리의 주택가에 위치한다. 이 관사는 외관을 비늘판 붙임으로 하는 등 일본식 주거건축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목조건물이다. 대구의 근대교육 관련 시설물 중에서 몇 안 되는 현존 관사로서 가치가 높다. 지금은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삼덕마루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졌다.


대구 삼덕초등학교 구 관사에서 북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는 1935년 동운정공립심상소학교로 개교한 동인초등학교가 있다. 1935~1937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 동인초등학교 강당(국가등록문화재)은 강당 건물로서 충분한 높이를 확보하기 위해 만사드 지붕(mansard roof)을 올린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프렌치 지붕’으로도 불리는 만사드 지붕은 지붕이 2단으로 경사진 구조이다. 아래의 처마 쪽은 경사가 급하고, 용마루와 가까운 위쪽은 경사가 완만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위쪽 지붕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구를 떠나기에 앞서 동성로 근처의 대구 경상감영지(사적)에도 들렀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까지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보물)앞 벤치에 앉아 하루 일정을 되새겨 봤다. 현대에서 근대로, 다시 근대에서 조선으로 온종일 부리나케 시간여행을 다닌 듯했다. 몇걸음만 옮기면 전혀 다른 시대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도시, 그곳이 바로 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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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양영훈(여행작가, 여행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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