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국가유산사랑

제목
문화유산의 숨결을 찾아 - 경북 구미의 문화재를 찾아서
작성일
2006-02-0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362

유적지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논할 때는 흔히들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멀리서 바라보면서 감상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김하는 일일 것이다. 답사의 여정길은 늘 그렇듯이 가벼운 설레임과 동시에 호기심을 느끼게 한다. 2006년 새해에는 내 자신도 제자리에서 머물기보다는 남들이 잘 가보지 않은 답사길을 찾아 올 한 해의 지표를 삼고자 떠났다. 첫 답사길은 평상시에 잘 찾지 않는 장소를 택해 불상과 절터를 주로 찾아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길을 나서기로 했다.

디지털 도시로 알려진 경북 구미에도 볼만한 불상과 절터가 있다. 예전에 찾아가 본 기억을 더듬어 다시금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되고 달라진 것이 없을까 생각하며 발길을 옮기며 가는 길 중간 중간 지나가는 유적들도 둘러보았다. 처음 찾은 곳은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보물 제1122호)이다. 거대한 자연암벽의 동남쪽 평평한 면을 이용하여 조각한 큰 불상으로서 민짜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가 있고, 얼굴도 뚜렷이 다 새겨져 있다. 귀가 길고 목에는 삼도(3줄의 주름)가 표현되어 있으며, 손은 가슴까지 올리고 있는데, 왼손은 바닥이 안을 향하게 하고, 오른손은 밖을 향하게 하고 있다. 처음에는 너무 커서인지 가까이 다가서니 괜히 주눅이 들었다. 멀리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가면서 보니 마애여래입상이 마치 나를 보고 웃음을 짓는 듯 더 감상하기가 쉬웠다. 언제나 큰 불상 앞에 서면 얼마나 오랜 기간과 정성이 들어갔을까? 어떻게 하면 떡 주무르듯 저런 돌들을 불상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여러 가지 의문과 생각이 들었다. 이 불상은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말기에서 고려 초기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평소에도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곳에 있는 듯 주변은 고요히 정막만 흘렀다. 다음으로 선산 해평 일대를 찾았다. 지나가는 도로변 양 옆으로 큰 무덤들이 보이는데, 이 무덤들이 사적 제336호로 지정된 선산 낙산리 고분군이다. 구릉지대에 있는 가야와 신라의 무덤들로 추정되는 고분군으로서 지표조사결과 총 205기에 이르며 주로 3세기에서 7세기 중반까지의 무덤들이라 한다. 다양한 무덤 구조와 유물들이 발견되어 당시 이곳 지역에 존재한 세력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유적이다. 또한 구미 일대에서는 의외로 고택들이 많은 곳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해평동 북애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1호)를 찾았다. 북애고택이라 한 것은 쌍암고가에서 바라볼 때 북쪽 언덕에 있다고 하여 명칭한 것이며, 북애고택의 구조는 一자형 사랑채와 중문간채, ㄷ자형 안채가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택이 대부분 그러하듯 관리나 주변 정비가 다소 부족해 보였으나 꾸미지 않고, 자연과 동화되는 선조들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나는 정서를 따뜻한 겨울날에 늘어지는 햇살을 받는 느긋한 여유를 두고 오랫동안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추운 날씨와 일정은 일상 속의 세상사를 깨닫게 하였고 어쩔 수 없이 둘러보는 정도로 끝마쳐야 함을 아쉬웠으나, 당시의 생활상을 다소 엿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사실에 만족했다. 다음으로는 선산 해평동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92호)을 찾았다. 그나마 이 불상은 구미지역에서 나름대로 잘 알려진 불상이라고 하는데, 현재 근래 지어진 보천사라는 절에 본존불로 모셔져 있다. 얼굴은 약간 손상을 입었으나 신체 등 표현이 잘 된 불상이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고 있는데, 현재는 높은 단 위에 있어 우러러 보게 되어 있다. 보통 때는 정면에서 보았으나 바로 아래에서 우러러보니 왠지 석조여래좌상의 턱선이 정말로 넉넉하고 인정 많게 생기셨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배에는 띠 모양의 독특한 매듭이 새겨져 있어 유심히 보아야 하며, 광배와 대좌 등에는 연꽃무늬, 구름무늬 등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어 주목되는 작품으로 조각 수법으로 보아 9세기의 통일신라 후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해평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잘 알려지지 않은 베틀산 중턱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불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보았다. 동화사라는 절이 현재 들어서 있는데 최근에 지어진 건물인냥 아직까지 나무의 독특한 냄새가 가시지 않은 듯했다. 알려지지 않은 장소인 만큼 정말 아늑하고 주변은 평화로운 듯 사찰이 들어설 그런 자리로 보였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크게 마애불이 보였지만 1972년에 조각된 마애 약사여래입상이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이 불상을 주목한 것이 아니라 작은 소형의 불상들을 모시기에는 적당하게 보이는 자연굴들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자연굴에 모셔진 작은 석불좌상이 도난당하였다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주륵사지에 남아 있는 무너진 폐탑廢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95호)을 찾아 답사를 마무리 하였다. 찾아가는 길은 도로변에는 이정표가 있어서 그 주변에는 갈 수가 있으나 막상 주요한 절터 주변에는 그 어디에도 이정표는 찾을 수 없어 아쉬웠다. 그나마 예전에 찾은 기억이 도움이 되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늘 이처럼 전국의 무너진 탑들과 절터의 모습 속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과 더불어 안타까움이 묻어남은 어찌 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문화재 안내간판마저 글씨가 다 지워진 체 아직 방치되고 있어 더욱 안타까웠고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듯 주변 상황은 어지러웠다. 주륵사지에 남아 있는 폐탑은 현재 기단석을 비롯하여 무너져 있는 석탑 부재들은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층급받침이 5단인 지붕돌 3점과 몸돌 등 부재들은 거의 남아 있어 복원하면 복원이 될 것도 같으나, 아직 관리나 복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꾸준히 이곳을 알고 찾아오는 답사객이나 마을주민들이 있기에 조금이나마 지속적인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았다. 마을 주민들은 몇 년 전부터 부재들이 많이 없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땅 속에 많은 부분들이 묻혀 있을 것이라 하여 대대적인 발굴조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말 남아 있는 탑 부재들의 규모로 보면 구미 지역에서 최대의 사찰이 건축되거나 아니면 큰 규모의 잘 생긴 삼층석탑이 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미에는 이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불교 문화재들이 있다. 중국에서 불도를 닦고 귀국한 고구려의 아도阿道가 처음에는 미움을 받다가 결국 소지왕의 신임을 얻어 불교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 무렵 왕궁에서 돌아오던 아도가 이 곳 산 밑에 이르자 때가 한창 겨울인데도, 산허리에 복숭아꽃•배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거기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고 이름을 짓고 신라 불교의 길이 열렸다는 전설이 있다. 이렇듯 구미가 지역적으로 불교와 밀접한 지역임을 새삼 느껴보게 된다. 아직도 겨울바람이 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차갑게 만들고 있지만 그 안에 조금이라도 따뜻한 겨울햇살 한 줌이 이번 답사길을 통해 더욱 커짐을 느낄 수 있었다. 도리사를 마지막으로 구미지역의 불교 탐방기를 마치면서 알려지고 많이 찾는 문화재보다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의 답사길도 새로운 묘미로 다가옴을 느꼈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