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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내기 문화재 - 월출산 기슭의 도갑사 오층석탑
작성일
2005-07-06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771

고려 초기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월출산 기슭의 도갑사 오층석탑

영암 도갑사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나 당시의 유적은 확인할 수 없고, 다만 그간의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편이 일부 출토되어 당초 창건시기를 가늠하고 있다.
   현존하는 유적으로는 오층석탑을 비롯하여 석조여래좌상(11세기경)과 해탈문(1473년), 목조동자상(1473년), 수미왕사비(1633년), 도선국사수미선사비(1653년), 석조(1682년), 도선국사진영(1805년), 수미왕사진영(19세기 초) 등이 있다.
   따라서 본 사찰은 통일신라시대 때 영암 출신인 도선국사(827년 ~898년)에 의해 크게 융성하였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수미왕사(15세기 중엽)에 의해 대대적으로 중창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쇠퇴하였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특히 목조건축물 중 해탈문(국보 제50호) 외에는 모두 근래에 세워진 것이나,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4차례(13개월 간)에 걸쳐 발굴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도갑사 오층석탑은 그간 대웅전 앞 동쪽 모퉁이에 있었으며 단층의 기단부와 5층의 탑신부 및 노반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발굴조사 당시 세진당(요사채) 북서쪽에서 하층기단부가 발견되어 2002년 2월 현 대웅전 전면에 위치를 정하여 2중기단의 5층석탑으로 복원하였다. 석탑은 원래 그 사찰의 법당 전면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나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이전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비록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일반적인 수법에 따라 대웅전 전면에 위치를 정하게 된 것이다.
   이 석탑은 2중기단에 5층석탑으로 현재의 높이는 5.45m이다. 하층기단 면석 및 상층기단 면석은 각각 4개의 부재로 구성되었고, 각 면에는 귓기둥(우주)과 중간기둥(탱주)이 조각되었다. 하층기단 갑석과 상층기단 갑석은 각 2개의 부재로 구성되었는데 두꺼운 편이며, 하부면은 부연이 없이 수평으로 되었고 상부면은 중앙쪽으로 완만한 경사로 올리면서 1단의 괴임대를 두었다. 1층탑신은 4개의 부재로 구성되었고 2~5층탑신 및 1~5층옥개석은 각 한 돌로 되었는데, 탑신 각 면에는 귓기둥이 조각되었으며 1층탑신에 비해 2층탑신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낮아진 형태이다. 1층옥개석은 두꺼운 편으로 낙수면의 물매는 급하고 전각부에서는 약간의 반전을 이루었으며 중앙 윗부분에는 1단의 괴임대가 있어 위층의 탑신을 받치고 있다. 또한 옥개석의 하부면은 1~3층은 5단이고 4층은 4단이며 5층은 3단의 옥개받침을 두었는데 그 간격도 매우 좁아 시대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석이 있는데 복원 당시의 조사자에 의하면 찰주공이 없어 원래부터 찰주 및 상륜부 장엄은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갑사 오층석탑은 전체적인 체감비나 조각 및 구조양식 등의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각 부재도 온전히 잘 남아 있다. 또한 이 지역에서 고려 초기 작품으로 이미 지정된 영암 성풍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118호) 및 보성 봉천리 오층석탑(보물 제1115호) 등과 비교할 때, 또 다른 유형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 초기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문영빈 /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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