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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 경춘선 화랑대역
작성일
2013-12-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7701

서울의 마지막간이역, 경춘선 화랑대역

01. 불암산의 울창한 숲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화랑대역 전경.

내가 사는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춘선‘화랑대역花郞臺驛’이 있다. 불암산을 배경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바라보면서 은자隱者처럼 앉아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9년에 건립되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고희古稀를 넘긴 셈이다. 원래 지금은 없어진 제기동의 성동역에서 출발하여 강원도의 도청 소재지인 춘천까지 왕래하던 철도역이었다. 수십 년 동안 비바람에 시달려 온 건물이지만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개통 당시에는‘태릉역’이었다. 이곳으로 육군사관학교가 이전해온 후인 1958년에‘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2010년 말경춘선 광역 전철이 다른 지점으로 이설됨에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내려앉았다. 새로운 복선 경춘선은 직선화, 현대화, 고급화 되었다. 예전에 청량리역을 출발한 증기 기관차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화랑대역을 통과하면 서울을 벗어나 호반의 도시 춘천으로 향했던 것이다.

오늘의 중장년층에게 경춘선 열차는 추억과 낭만의 대상이었다. 신학기가 되면 수련회를 떠나는 대학생들로 열차는 초만원을 이룬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임시열차까지 운행하지만 청평이나 대성리로 떠나는 젊음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미처 좌석을 구하지 못한 친구들도 들뜬 마음으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비좁은 객차의 난간을 부여잡고 몸의 절반은 열차 밖으로 내민 채 신나게 달렸던 것이다. 지금도 화랑대역을 바라보면 젊은 시절의 호기豪氣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얼마 전 나는 더위를 무릅쓰고 화랑대역을 찾았다. 역사驛舍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비대칭형인‘ㅅ’자 모양의 박공지붕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건축물의 특징일 것이다. 대합실로 통하는 앞뒤의 현관에는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옆 담장을 통하여 역 구내로 들어가 보았다. 승강장 쪽으로 가로지른 보도의 침목을 밟고 걸었다. 떠나고 만나던 사람들의 발자국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녹슨 철로가 평행선을 그으며 길게 뻗어 있다. 주변의 초목과 어울리며 철길 사이에 솟은 여름 풀꽃들이 애잔하게 보였다.

02. 춘천을 향해 뻗어 있는 녹슨 철길 사이로 풀꽃들이 애잔하게 피어 있다.
0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왕릉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화랑대역에서 멀지 않은 태릉 경내에 전시관이 세워졌다.

현재 경춘선 화랑대역은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간이역이다.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되었다. 그 만큼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크다. 서울시에서는 구 경춘선 철도 부지를 근린공원으로 정비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화랑대역 구간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문화재 보존지역으로 관리할 모양이다. 그러나 현재 화랑대역은 방치되어 있다. 시설물은 녹슬고 파손되었으며 건물은 망가지고 있다. 역사 앞마당에는 대형트럭이 무단으로 주차해 있다. 구내에는 어지럽게 폐자재들이 뒹굴고 있다.

전국적으로 기적 소리가 멎는 간이역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대체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이용객들이 줄어들면서 해고解雇의 대상이 된것이다. 옛날에는 학교를 가려고, 5일장을 보기 위해 간이역은 만남의 장소였다. 군대 가는 애인과 헤어지고 취직하러 서울로 떠나는 누나를 배웅해야 했다. 이처럼 삶의 만남과 이별의 장면이 간이역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인생은 간이역’이라고 읊은 시인도있다. 이와 같이 간이역에는 삶의 정취가 배어 있고 희로애락의 인정이 서린 곳이다.

앞으로 경춘선 화랑대역을 보수하여 원형대로 잘 보존하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역사와 문화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실제로 지방의 많은 간이역들이 향토사 박물관이나 마을 도서관 등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래서 미술 전시회나 시화전이 열리고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철도문화 박물관이나 체험장, 또는 음악이 흐르는 문학 카페로 이용하기도 한다.

경춘선 화랑대역 가까이에는 조선조 제11대 중중 비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泰陵과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인 강릉康陵이 있다. 얼마 전 태릉 경내에 조선왕릉 전시관이 건립되어 유네스코 세계문 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의 문화재를 한 자리에서 체계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처럼 경춘선‘화랑대역’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문화재 사랑과 만나다’코너는 독자 여러분이 만드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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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홍섭 (교육칼럼니스트, 전직 중등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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