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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매를 대신 맞고 돈을 버는 매품팔이
작성일
2015-10-0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9089

매를 대신 맞고 돈을 버는 매품팔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판소리 중 하나인 <흥부가>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나온다. 바로 관아의 아전이 흥부에게 매를 대신 맞고 돈을 벌라는 제안을 하는 부분이다. 돈을 받고 매를 대신 맞아주는 것을 매품팔이라고 부르는데, 조선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었을 판소리인 <흥부가>에 나온다는 것은 당시에는 아주 흔한 일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흥부는 왜 대신 매를 맞았을까?

그렇다면 흥부로 대표되는 가난한 백성들은 어떻게 해서 돈을 받고 대신 매를 맞는 일을 했던 것일까? 간단하게 생각하면 죄를 지은 양반이 자기대신 매를 맞을 사람을 구하고, 돈이 필요했던 가난한 백성이 이에 응했던 것이 매품팔이라는 직업의 탄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의 양반들은 이런 방식으로 대신 매를 맞을 사람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유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꼽히는 『예기禮記』에는‘刑不上大夫, 禮不下庶人’이라는 구절이 있다. 형벌은 사대부에 미치지 못하고 예는 서인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선은 이런 법칙을 충분히 따라서 양반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육체적인 형벌 대신 속전贖錢이라고 부르는 벌금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번거롭게 매를 대신 맞을 사람을 살 필요가 없었다. 적어도 조선 전기에는 말이다.

01. 형조 관련 고지도. 성대중이라는 학자가 쓴『청성잡기靑城雜記』에는 두 건 의 매품팔이 사례가 나오는데 관아가 아니라 형조와 군영이라는 점 이 눈에 띈 다. 모두 거주 지역의 관아가 아니라는 점은 매품팔이가 왜 생겨났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문화콘텐츠닷컴

 

매를 맞는 양반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온 것은 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나고 사회가 안정된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부터였다. 화폐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견고했던 신분 계층이 균열이 생겼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서 경제적으로 몰락한 양반이 늘어났고, 장사와 대외교역을 통해서 막대한 재산을 모은 중인과 백성들이 존재했다. 부유해진 이들이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 바로 양반이 되는 것이었다. 사회적인 체면도 있지만 병역을 대체하는 군포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향교의 유생이 되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양반이 되어야만 했다. 작년에 역사비평사에서 나온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이라는 책에서는 어느 노비집안이 2백년에 걸친 노력 끝에 결국 양반이 되는 과정이 나온다. 이런 저런 이유로 생겨난 뼈대가 없는 새로운 양반들의 존재는 매품팔이라는 직업의 탄생을 불러왔다. <흥부가>를 제외하고 매품팔이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은 성대중成大中이라는 서자 출신의 학자가 쓴 『청성잡기靑城雜記』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두 건의 매품팔이 사례가 나오는데 관아가 아니라 형조와 군영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흥부가]에서도 흥부가 매를 대신 맞으러 간 곳도 바로 군영이었다. 모두 거주 지역의 관아가 아니라는 점은 매품팔이가 왜 생겨났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올 수 있고 관직이 낮은사또대신좀 더 높은지위에 있는관리들이 나선 것이다.

02. 김윤보의『형정도첩』중 곤장형 집행장면.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03. 김윤보의『형정도첩』중주장당문형 집행장면.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부패가 만들어낸 직업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지방관의 경우에는 돈으로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 지방관의 자리에 오르면 본전을 찾고, 더 높은 관직을 사기 위해서 돈을 끌어 모아야만 했다. 그런 부패한 관리들의 먹잇감이 된 것이 바로 돈으로 신분을 산 뼈대 없는 양반들이었다. 누명을 씌우거나 혹은 이런 저런 죄목으로 잡아다가 가두고 매를 친다고 협박을 가하면 돈으로 산 양반의 체면이 손상될까 두려워진 이들은 대신 매를 맞아줄 매품팔이를 구했다. 물론 대신 매를 맞아주는 것을 허락해주는 명목으로 관리와 아전들에게도 막대한 돈이 흘러들어갔다. 부패의 먹이사슬 제일 끝에 대신 매를 맞아주는 매품팔이라는 직업 아닌 직업이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매품팔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양반들이 별다른 기록을 남겨놓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인다.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04. 05. 곤장. 조선 후기 죄인의 볼기와 허벅다리를 번갈아 치는 곤형의 집행을 위해 만든 나무 형구(刑具)이다. ⓒ두피디아

※ 참고문헌
·성대중 저, 한국고전번역원 역『청성잡기』, 올재클래식, 2012
·정명섭,『 조선직업실록』, 북로드, 2014

 

글. 정명섭 (역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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