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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숱한 수난 속에서 애국충절을 다한 가마솥 - 개태사철확
작성일
2013-06-1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853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 6. 숱한 수난속에서 애국충절을 다한 가마솥-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호 개태사 철확(글·그림 유환석)

때는 936(태주 19), 고려 태조는 삼국통일을 기려 논산 천호산에 개태사를 창건한다.

태조 : 개태사에 어진을 보관하고 최고의 석공들로 하여금 불상을 세우도록 하라.
신하들 : 예, 명 받들겠나이다.
태조 : 또한 절에 기거하는 식솔들이 넉넉히 먹을 수 있도록 큰 솥은 만들도록 하라

태조 왕건은 개태사에 승려 500여 명이 국을 끓여 먹을 수 있는 거대한 철확을 하사했다. 개국사찰인 개태사는 고려의 흥망성쇠만큼이나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이용되었고, 해안가로 침입한 왜구들에 의해 사찰이 불타기도 했다.

승려들 : 군사들이 사흘이나 굶었다고 하니 어서 창고에 있는 쌀을 다 꺼내 밥을 지읍시다.
신기하게도 이 철확에서 지은 밥을 먹은 군사들은 속히 기운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사기가 솟아고, 다음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때문에 개태사 철확은 왜구에게 증오의 대상이 됐고, 왜구는 수차례에 걸쳐 철확을 훔쳐 가려 했다.

왜구들 : 이게 그 요상한 솥이란 말이지? 이것만 손에 넣으면 승리는 우리 것이다.

그러나 왜구들이 철확을 옮기려 할 때마다 비바람이 몰아쳐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왜구들 :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이지? 으앗! 솥을 들고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철확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일본인들이 철확을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부산까지 싣고 내려가는데, 철확 안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왜구들 : 아니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야? 솥에 귀신이 씌인게 분명해.

그 후 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져 경성박람회에 출품되기 했으나, 총독부에 진정서를 내는 등 철확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 마침내 논산의 연산공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1980년대 본래의 자리인 개태사 경내로 되돌아 왔다. 천년의 개국사찰 개태사. 후삼국 40년 동안의 분열과 전쟁, 그 과정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원혼들이 개태사 철학을 제 자리로 인도해 준 것은 아닐까?


 

글·그림. 유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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