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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윤달의 세시풍속
작성일
2006-09-06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272

■ 세시풍속으로 엿보는 문화유산 윤달의 세시풍속 음력 2006년 7월(양력으로 8월 24일~9월 21일)에는 윤달이 있습니다. 2004년 2월 이후 2년여만의 윤달입니다. 윤달은 일 년 중 한 달이 가외로 더 있는 달이기에 모든 일에 부정을 타거나 액이 끼이지 않는 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우리 선조는 윤달에 어떤 일을 하였을까요? 다양한 윤달의 세시풍속에 대해 알아봅니다. 윤달이란? 윤월閏月, 윤삭閏朔, 윤여閏餘 등으로도 불리는 윤달은 달의 차고 이지러짐을 기준으로 한 태음력의 특성으로 인해 생긴다.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陽曆의 일 년이 365.2422일인데 비하여 달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陰曆의 일 년은 354.3672일로, 양력보다 약 11일이 짧아 3년쯤이면 약 30일의 오차가 생겨난다. 그래서 음력은 보조를 맞추기 위해 3년에 한 달, 또는 8년에 석 달의 윤달을 넣어 책력冊曆과 계절을 맞추는데, 이렇게 여분으로 만드는 음력의 달이 바로 윤달이다. 예로부터 윤달을 두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고안되었는데, 그중 19태양년에 7개월의 윤달을 두는 ‘19년 7윤법十九年七閏法’이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예로부터 윤달은 모든 일에 부정不淨을 타거나 액厄이 끼이지 않는 달로 인식되어왔다. 『동국세시기』에는 윤달이 결혼하기에 좋고 수의를 만드는 데에 좋으며 모든 일에 꺼릴 게 없는 달이라고 하였다. 윤달은 ‘귀신이 없는 달’이라고 하는데, 이는 달마다 해당 달을 관장하는 12귀신이 있지만 13번째 달인 윤달은 공짜달이라 이를 다스리는 귀신이 없어 하늘과 땅의 모든 신들이 사람에 대한 감시를 쉬는 기간이라는 의미로, 윤달에는 불경스러운 행동도 신의 벌을 피할 수 있으며 모든 일에 부정을 타거나 액운이 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우리 선조는 집안의 수리나 이사移徙, 묘이장, 수의 만들기 등을 윤달에 많이 거행하였다.

사찰 불공과 성돌이 윤달의 세시풍속으로 사찰불공과 성돌이가 있다. 전국의 큰 사찰에서는 예전부터 윤달이면 부녀자들이 불탑에 돈을 놓고 불공을 드렸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광주廣州 봉은사奉恩寺에는 윤달이 되면 서울 장안의 여인들이 다투어 와서 불공을 드리며 돈을 탑 위에 놓는다. 그리하여 그 윤달이 다 가도록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극락세계로 간다고 하여 사방의 노파들이 분주히 달려와 다투어 모인다. 서울과 외지의 여러 절에서도 대개 이런 풍속이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 중부 이남 지방에서는 윤달에 마을 부녀자들이 성벽 위에 올라 열을 지어 성을 도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성돌이'', ''성밟기'' 또는 ‘답성踏城놀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불교 신앙의 ''탑돌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극락으로 가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특히 전라도 고창 지역에서는 윤달을 맞이하여 읍의 부녀자들이 모양산성牟陽山城이라고도 불리는 고창읍성을 세 번 도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 액을 물리치고 장수한다는 의미에서 돌을 머리에 이고 돌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위에는 한편으로는 성을 튼튼하게 보조하려는 실용적인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의 짓기 일반 가정에서는 부모의 환갑이 가까워지면 집안 형편에 따라 윤달 중 길일을 택하여 수의를 만들어 두었다. 팔자가 좋고 장수하는 노인을 모셔다가 바느질을 부탁하였는데, 수의의 바느질은 보통의 그것과 다르게 하였다. 즉, 뒷바느질(박음질이라고도 함)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바느질 도중 실을 잇거나 매듭을 짓지 않았다. 뒷바느질을 하게 되면 자손이 번성하기는커녕 줄어들며 실을 매듭지으면 자손이 끊긴다는 것이다. 그 밖에 수의를 지을 때에는 동정을 아예 달지 않거나 종이심을 빼고 달았다. 예전에는 수의뿐 아니라 널(관)도 미리 짜서 까맣게 옻칠을 해놓았으며, 옷을 짓지는 않지만 옷감만 준비해 두는 경우도 있었다. 수의를 미리 준비해 놓은 집에서는 윤달이 오면 꺼내어 손본 후 다시 들여놓는다. 초분과 묘이장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수리를 한다. 초분의 이장도 윤달에 하는데, 초분이란 시신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이엉 등으로 덮어두었다가 2~3년 후에 씻골하여 최종적으로 땅에 묻는 장례풍속의 하나이다. 문헌자료에 의하면 전염병에 죽거나 어린 아이가 죽었을 때, 객지에서 죽었을 경우, 집이 가난해서 장지를 구하지 못할 경우에 초분을 하였다고 한다. 초분은 100년 전에는 내륙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위생법의 제정과 화장의 권장으로 일부 남서해안 지역에만 남게 되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시 비위생적이라 하여 초분을 금지한 이래로 현재는 일부 도서지방에만 존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서편제''로 유명한 청산도는 아직도 윤달에 초분 이장을 많이 한다고 한다. 장승제 지내기 윤달이 드는 해(윤년) 정월에는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위해 마을제사인 장승제를 지내며, 윤달에는 장승을 새로 만들어 세운다. 충북 중원군 문의면 문덕리 앞실마을에는 탑신塔神과 장승이 있는데, 탑에는 해마다 정월 열나흗날 밤에 제를 올리지만, 장승제는 윤달이 드는 해에만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낸다. 충남 서산군 부석면 창리에서는 윤달이 드는 해 정월 초나흘에 장승제를 지낸다. 대체로 장승은 3년마다 윤달 드는 해에 새로 만들어 세운다. 장승은 마을 산에 있는 “곧고 깨끗한 나무”를 골라 베어 만들되, 그 나무에 새둥우리가 있으면 부정 탄 나무라 하여 제외되었다. 장승은 마을에서 주민 공동으로 제작되며, 제일과 그 다음 날은 주민들 간에 “계속 노는 날”로 불리며, 만약 이 날 일을 하게 되면 일 년 내내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장담그기와 팥죽쑤기 정월이나 2월에 윤달이 들면 충남 서산군 음암면 유계리에서는 장을 담근다. 서산군 지곡면 중왕리에서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팥죽을 쑤면 먼저 성주·조왕·지신 등 가신家神의 자리에 떠놓고 대문에 팥죽을 뿌린 뒤에 식구들이 나누어 먹으며 이웃에 나누어 주기도 한다. 윤달에는 거리낌이 없는 달이기 때문에 혼례와 같은 경사스러운 일을 행하고 절일節日처럼 팥죽을 쑤어 먹으며 각별하게 보내기도 하고, 장을 담그는 일과 같은 살림 준비도 마음껏 한다. 이사와 가옥 수리 윤달에는 부정이나 액이 없다고 믿어 집수리, 이사 등 평소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집안의 일들을 마음 놓고 하였다. 예전에는 변소수리나 지붕수리 등의 집수리를 함부로 하지 않았으며 장독도 함부로 옮기지 않았다. 반면 윤달에는 일진日辰 같은 것은 보지 않고 아무 때나 마음대로 이사를 하고 집도 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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