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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다
작성일
2006-09-06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612

■ 전문가의 문화재 보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다 다시 찾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지난 7월 14일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93년 만에 환수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임금을 중심으로 한 조선왕조의 주요 국정의 내용을 거의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방대한 사실기록이다. 역대 왕의 실록은 반드시 재임했던 왕의 사후에야 편찬이 되었다. 그리하여 선왕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후대에 남은 실록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록편찬은 상세한 국정사실의 기록을 후대에 남기는 것 이외에도 왕이 재임 시에 소임을 다하도록 하는 데에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실록은 영구보전을 위하여 여러 부를 인출印出하고 전국 각도의 천재지변을 피할 만한 곳을 지정하여 그곳에 사고를 짓고 분산 보관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록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모두 불타고 오로지 전주사고에 보관했던 실록만이 남게 되었다. 그것도 안의安義, 손홍록孫弘祿 두 사람이 전주사고의 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겼기 때문에 전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조 임금 대에 들어 이 전주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은 다시 4부를 새로 인출하여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마니산, 오대산 등 전국 5대 사고에 보관하게 되었다. 오대산 사고본의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보존되기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한일합병 이후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 일제에 강탈되었다. 역사연구의 미명하에 동경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이관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23년에 오대산 사고본은 관동대지진의 화재로 대부분 망실되는 참화를 겪게 되었다. 오대산 사고본은 모두 787책이었으며 그 중 지진화재의 참화를 면한 것은 오직 74책뿐이었는데 이 책들은 당시 개인에게 대출 중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화를 면하게 되었다. 이 74책 중에서 27책은 곧 회수되었으나 도서관이 불탔으므로 둘 곳이 없어 서울의 경성제국대학으로 돌아왔고 뒤늦게 회수된 나머지 47책은 돌아오지 못한 채 남의 땅에서 남아 있다가 이제야 고국으로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오대산 사고본 환수의 의미 조선왕조실록 중 ‘오대산 사고본’의 환수는 여타 조선왕조실록과는 다른 특별한 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조선왕조실록이 있는데, 왜 오대산 사고본 환수에 대해 유독 특별하게 반응하는지, 왜 오대산 사고본이 중요한지에 대하여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오대산 사고본은 여타의 사고본과 다른 점이 있다. 즉 오대산 사고본 중 선조임금 이전의 실록은 임진왜란 이후 실록을 재간할 때 틀린 글자, 빠진 글자, 문장 등을 바로잡기 위하여 사용되었던 이른바 교정본 실록이었다는 점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실록의 백데이터였던 셈이다. 실로 조선왕실에서 정부문서 기록보존을 위하여 여러 부의 복사본은 물론 그 이전의 백데이터까지도 소중히 갈무리하였다는 점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은 여타의 실록과 다른 편찬 의의를 지니고 있다. 즉 오대산 사고본은 실록의 교정 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과거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문서보존을 할 수 있는 현재의 과학만능의 시대의 우리보다도 훨씬 투철하였던 선조의 기록보존정신을 배워야 할 것이다.

문화재 환수운동의 중요한 모범 그러나 사료적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이번 환수의 중요한 의미는 무엇보다도 전 국민이 문화재 환수 운동에 호응하여 불법 강탈된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왔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도 꾸준히 전개될 범국민 차원에서 벌이는 문화재 환수운동의 역사적인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 더구나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제151호이자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특히 이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야말로 전 국민이 힘을 합하여 되찾아온 만큼 지금부터라도 보전과 활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 또한 우리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명제가 아닐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은 수백 년간 산중의 사고에 보관되어 왔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현재 우리의 조선왕조실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사고는 한 군데도 없다. 조선시대에는 실록을 사고에 보존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을지 몰라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에 대한 연구, 관람, 관리 등의 측면에서 볼 때에도 원본의 세계 문화유산을 반드시 원래의 장소에 보전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하여 옛 사고에서는 과거의 소장처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고 새로운 소장처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의 문화재적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홍보할 수 있고, 온 국민은 손쉽게 접근하여 관람할 수 있으며, 가장 안전하게 관리 보전하고 연구 조사하는 등 다방면의 효용가치가 있는 장소에서 실록의 보전이 이루어지도록 온 국민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소재구 _ 국립고궁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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