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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차림으로 만난 전통주와 한식의 감칠맛 나는 변주
작성일
2017-04-0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132

한상차림으로 만난 전통주와 한식의 감칠맛 나는 변주 - 조선 명주 '감홍로' 이기숙 식품명인 & 전통주점 '얼쑤' 조성주 셰프 옛 시간의 한 덩어리를 떼어놓은 듯한 양조장에서,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젊음의 거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옹골차게 술을 빚는 두 장인이 만났다. 이기숙 명인과 조성주 셰프는 전통을 지키며 우리 술의 새 길을 열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 전통주의 맛과 멋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 그것이 이들이 서로에게 던진 끝없는 화두이자 해답이다.

(좌)이기숙 식품명인 (우)조성주 셰프

술과 안주는 술병 속 ‘꽃과 나비’ 사이

세월이 좋아졌다지만 술 빚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조선 3대 명주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감홍로를 만드는데 1년 6개월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이기숙 명인은 중요무형문화재였던 故 이경찬 옹의 막내딸로, 4대째 대를 이어 감홍로를 복원해 2012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식품명인으로 지정됐다.

이기숙 명인 | ‘감미롭고(甘) 붉은(紅) 이슬(露)처럼 맑은 술’이란 뜻의 감홍로는 평양을 대표하는 술이면서 약이었어요. 술에도 격이 있어 로(露)·고(膏)·춘(春)·주(酒) 순으로 이름 붙였는데, 그중 ‘로’ 자가 들어간 술은 최고로 인정받았죠. 대를 이어 술을 빚으셨던 아버지 곁에서 스무 살부터 제조법을 배웠어요. 40년째 해온 일인데 지금도 술을 빚고 나면 온몸에 진이 빠져나가요. 한 번이면 됐지 술을 두 번이나 증류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잡티·잡맛 하나 없는 순도 높은 술을 빚으려는 조상들의 한량없는 노력이죠. 온도 조절을 위해 술 항아리 옆에서 쪽잠을 자던 아버지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해요. 저도 매년 지하수 수질검사 때 ‘수질이 별로다’라고 하면 그해에는 술을 빚지 않아요. 대를 이어 지켜온 술맛을 제가 망칠 수는 없으니까요.

조성주 셰프 | 저는 한식과 어울리는 술을 찾기 위해 전국 유랑을 떠났다가, 전통주에 푹 빠져 직접 술을 빚기 시작했어요. 전국의 양조장을 다니며 수십 종의 막걸리, 약주, 증류주 등을 일일이 맛보며 목록을 작성했죠. 계절별로 평균 온도와 습도를 고려해 발효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등 전통주를 공부할수록 ‘우리 조상님들이 정말 과학적이었구나!’ 감탄하게 되더군요. 이기숙 명인께서 전통 주조법으로 만든 감홍로를 젊은 고객들에게 소개할 때마다 제 어깨에도 괜히 힘이 들어갑니다.(웃음)

외국인도, 젊은이도 반한 기품 있는 전통주

구름에 달 가듯 술 찾는 나그네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밤이 되면 더 북적이는 홍대 한복판에서 40여 종의 전통주에 어울리는 주안상을 차려내는 조성주 셰프 덕분이다. 국산와인품평회 심사위원을 역임한 ‘술 전문가’ 조성주 셰프는 ‘우리 술 주안상대회’ 문배주 부문 은상(2015), ‘아시아 명장요리대회’ 개인전시금상(2016)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차세대 한식인이다. 감홍로와 잘 어우러지는 안주로 조 셰프는 제철 맞은 쑥갓과 오색 나물을 품은 우럭찜을 차려냈다.

조성주 셰프 | 감홍로는 독주이지만 사나운 맛이 없고 부드러워요. 숙성의 힘이죠. 술의 향을 가리지 않는 담백한 생선찜과 함께 쑥갓, 미나리, 숙주, 쑥, 말린 고사리 등 다섯 가지 색의 나물을 곁들였어요. 몸에 좋은 한약재가 많이 들어가는 감홍로는 명이나물과 만나면 술 넘김이 좋아집니다. 젊은이들에게 우리 전통주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제철 식재료를 주메뉴로 각 지역의 전통주에 맞는 음식을 선보이고 있어요. 전통주를 잘 모르는 고객들에게는 설명을 적어둔 술 메뉴판을 제공하고요. 애주가들 사이에서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해 보람을 느낍니다.

이기숙 명인 | 다양한 나라의 맥주를 판매하는 술집은 번화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 전통술을 판매하는 한식주점은 드물잖아요. 젊은이들의 거리에서 우리 전통주를 맛볼 수 있게 해준다니, 술 빚는 사람으로서 참 고맙고 든든합니다. 전통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술을 향유하는 사람들과의 교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죠. 저는 제가 배운 전통을 전승하면서 완벽한 술을 빚을 테니, 각자의 개성대로 감홍로를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도수가 높고 맛이 깔끔한 감홍로는 칵테일처럼 섞어 마셔도 술맛이 좋으니까요.

조성주 셰프 | 예로부터 반주 문화가 정착된 우리나라에서는 음식이 술을 부르고 술은 음식을 찾으니, 마치 감홍로 술병에 그려진 꽃과 나비 사이 같아요.(웃음) 모름지기 한식에 빠질 수 없는 게 ‘술’이죠. 하지만 한식에는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전통주가 다 어울릴 거란 생각만큼 안일한 것도 없어요. 전통주는 종류도 맛도 도수도 향도 다채롭거든요. 어떤 곡식을 원료로 쓰는지, 어떤 효모를 쓰는지, 어떻게 증류하는지에 따라 맛과 향, 빛깔이 달라지니까요. 전통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 지역의 전통주와 잘 어우러지는 주안상 차림으로 젊은이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겠습니다.

01.이기숙 명인이 전통 방식으로 감홍로를 만들고 있는 모습 02.향긋한 향기를 지닌 감홍로 03.감홍로와 잘 어울리는 우럭찜으로 차린 주안상 04.조성주 셰프가 직접 빚은 전통주

법고창신(法古創新), 뿌리 깊은 한식 주안상의 무한진화

말 속에 술이 섞이니, 대화도 술술 잘 풀린다. 술은 심연과 같아서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마시는 사람뿐만 아니라 빚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새것이 옛것을 대신하고 그 새것이 다시 옛것으로 숙성되면서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다.

이기숙 명인 | 우리 술병에는 이름 대신 집과 날개 문양이 있어요. 따뜻한 가정에서 빚어낸 전통주가 향기를 머금고 널리 번져간다는 의미죠. 저희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술을 빚으셨대요. 그 마음을 보고 자랐다는 것이 제가 받은 가장 큰 유산이자 씨앗이에요. 저도 튼튼한 줄기가 돼서 제 역할을 해내야죠. 할아버지 한 사람을 위해 밤을 지새우며 술을 빚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제 아이들과 후손들이 꽃 피울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조성주 셰프 | 저의 요리 철학은 법고창신이에요. 전통을 기본으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동시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겠습니다. 가령, 조선시대 때는 구할 수 없었던 식재료인 치즈를 활용해 전통주와 잘 어우러지는 안주를 대접하는 거죠. 수입 술의 공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우리 전통주와 한식 주안상을 함께 차려내며 새로운 술 문화를 일으키고 싶어요. 이기숙 명인께서 아버지 곁에서 술을 빚으며 행복했던 것처럼 전통주를 앞에 두고 둘러앉은 사람들이 다 같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술의 조건을 묻는 말에 이기숙 명인과 조성주 셰프는 ‘좋은 사람과 얘기 나누며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이라고 한목소리로 답했다. 우문현답이다. 가슴을 맹렬하게 덥히는 전통주 한 잔 머금고, 오늘의 마지막 여정은 그 옛날 나그네처럼 소박한 주안상을 벗 삼아 얼굴이 불콰해지도록 취할 일만 남았다.

 

글‧윤진아 사진‧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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