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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규방가사에 나타난 여성들의 눈물과 해학
작성일
2012-06-1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999

여전히 생활 속에서 향유되고 있는 규방가사

전통사회 여성들의 삶은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칠거지악七去之惡에 얽매인 삶이었다. 이는 사회적인 규범으로 강요된 점도 있지만 여성들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강박적인 의식도 크게 작용하였다. 당시 여성들은 이러한 규범에 얽매여 살아가면서 그들의 삶에 대한 인식과 느낌을 방적紡績과 침선針線, 민요 등을 통해 풀어내었다. 특히 전통사회에서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일컬어지던 영남지역의 여성들이 그들의 삶과 소회를 ‘두루마리’라 일컬었던 가사작품을 통해 정화淨化시켰다.

시집가는 딸네에게 시집에 가서 살면서 지켜야 할 도리를 일러주는 <계녀가誡女歌>, 일 년 중 한 차례 꽃 피는 봄철에 이웃들과 화전놀이를 한 것을 기록한 <화전가花煎歌>, 출가외인으로 치부되어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친정 부모와 동기들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한 <사친가思親歌>와 <붕우소회가朋友所懷歌>, 일가친척들의 경사(慶事-혼인, 급제, 환갑, 회혼, 돌)를 축하하는 <경축가慶祝歌>, 명승고적을 여행하고 느낀 소회를 읊은 <유람가遊覽歌>와 <노정기路程記> 등 다양한 양상의 작품들이 전승되며 아직도 영남지역 반가班家 여성들의 생활 속에서 향유享有되고 있다.

여자로 태어남에 대한 원망과 탄식, 남성의 졸렬한 행동에 대한 비난을 토로

이들 작품 중 여자로 태어난 것과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자탄과 원망, 그리고 그들의 상대인 남성들에 대한 부러움과 이중적 행동에 대한 비난 등을 읊은 작품에서 그들의 눈물과 해학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경북 김천시 남면 운봉에서 수집된 <여자탄식가> 일부를 보자.

어와우리 동류들아 여자탄식 들어보소
건곤이 개벽후에 혼돈이 조판하여
천황지황 생긴후에 우리인생 탄생하니
강유를 분간하여 음양이 배합되야
건삼연이 남자되고 곤삼절이 여자로다
요순우탕 문무주공 공맹안증 정주부자
성군인자 되시도다 차차로 나실적에
의관문물 갖추어서 예의염치 닦아놓고
삼강령 오륜중에 남녀유별 법을지어
오천만년 지내도록 이법을 길이쫓아
남자길러 취부하고 여자길러 출가하니
생남생녀 세상사람 인간재미 좋건마는
여자된 이내마음 암암사지 생각하니
남자의 좋은 팔자 애닯고도 부럽더라
(표기는 현대 철자법으로 필자가 고친 것임)

여기에서도 음양의 분별로서 남자, 여자로 태어난 것을 수긍하면서도 출가하면서 시작되는 여자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하는 안타까움과 자유분방한 남자들의 삶에 대한 동경을 토로하고 있다. 경북 영천시 임고면에서 수집된 같은 제목의 가사 중에서 출가 후 여성으로서의 도리를 하며 살아가는 삶의 고달픔에 대한 토로를 살펴보자.

여자몸이 되어나서 인들아니 원통한가
누대종가 종부로서 봉제사도 조심이오
통지중문 호가사에 접빈객도 어렵더라
모시낳기 삼베낳기 명주짜기 무명짜기
다담일어 베를보니 직임방적 괴롭더라
용정하여 물여다가 정구지임 귀찮더라
밥잘짓고 술잘빚어 주사시에 어렵더라
세목중목 골라내어 푸재따듬 과롭더라
자주비단 잉물치마 염색하기 어렵더라
춘복짓고 하복지어 빨래하기 어렵더라
동지장야 하지일에 하고많은 저세월에
첩첩이 쌓인일을 하고한들 다할손가
줄저고리 상첨박아 도포짓고 버선지어
서울출입 향장출입 내일갈지 모래갈지
부지불각 총망중에 선문없이 찾는의복
사랑에 저양반은 세정물정 어이알리
한수만 부족하면 서리같은 저호령이
된소래 큰걱정이 비정지책 무삼일고
가는허리 부러지고 열손가락 다파여서
청렴하고 조심하야 굴나라고 하건만은
치하는 고사하고 애쓴공덕 바이없다
하해같은 이소견이 비부지라 알건만은
여자몸이 죄가되어 유구무언 말못하고
구곡간장 타는분을 속치부만 하자하니
사사이 생각하니 그아니 분할손가
자다가 꿈에나마 남자한번 되어보면
주점찾는 저남자는 묻는말도 대답없고
제가장한 남자라고 오늘보고 내일봐도
옆눈으로 비식보아 여자라고 업신여겨
숙덕숙덕 흉을보아 업시하고능멸하니
더욱분해 못살겠네
몇푼어치 안된남자 가소롭고 같잖더라
아모리 여잔달사 그만남자 양두하리

비록 여자로 태어났지만 본가에서는 부모의 자애로운 보살핌 속에 금이야 옥이야 자랐는데, 출가하여 반가의 며느리로 입문하게 되면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과 방적과 침선으로 온종일 시달리며 사는 여성으로서의 숙명을 참고 견뎌낸다. “가는 허리가 부러지고 열 손가락이 다 파”이도록 일을 하고, “청렴하고 조심하야 굴나라고 하건만은 치하는 고사하고 애쓴 공덕 바이없다”라고 탄식한다. 오히려 남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멸시와 꾸중만 일삼으니 “여자 몸이 죄가 되어 유구무언 말 못하고 구곡간장 타는 분을 속 치부만 하자하니 사사事事이 생각하니 그 아니 분할손가”라며 지위가 낮은 여자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면서도 남자들의 무기력함과 추태를 “몇 푼어치도 안 되는 남자”라고 가소롭고 같잖다며 강렬히 비난하고 조롱하며 여자로서의 고단함을 카타르시스하고 있다. 

 

신혼의 조심스러움,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해학적 표현으로 승화시켜

한편 혼례 후 아직 익숙하지 못한 신랑과의 해후, 그리고 시집살이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조심스러움에서 오는 불편함을 해학적인 표현을 통해 발산하기도 하였다. 경북 영천 자양면에서 수집된 <종제매 유희가>를 살펴보자.

그렁저렁 당혼하여 백년연분 즐길적에
신랑재화 어떠하며 시댁범절 어떠한고
남모르는 이내심사 간절하고 자즉하니
교배청 행례걸음 동방화촉 첫날밤에
지향없이 가랑없이 가슴이 두근두근
외면하고 돌아앉아 목고개가 빠지난듯
맑은코를 훌적이니 소리날적 저허하고
모구멍이 간질긴질 기침날가 겁나도다
그리저리 다닐적에 반갑기사 반가오나
옴족하고 조심되기 초행때와 다름없네

대리월 소리월에 신행날이 다갔거늘
시댁에서 재촉하고 친정에서 구박하여
성장하든 좋은집을 할수없이 떠난구나
어느듯이 시댁이라
정반상을 먹을적과 세수성적 하올적에
일동일정 어렵도다
훌적훌적 먹자하니 무뭇다고 흉을볼듯
얌전빼고 안먹자니 혼잖다고 흉을볼듯
눈을 괴이 뜨자하니 완악타고 아니할동
묻는말을 대답자니 말소리를 웃을런가
이리하기 난처하고 저라허가 어려워라
사찰하신 시누들이 묻기전에 가르치나
동동촉촉 조심되기 되는대로 할수없다
맛보자니 미안하고 안보자니 호슈하다
김치한쪽 먹자하니 와삭와삭 소리나고
쌈을 한쪽 먹자하니 입벌리기 불공하니
조석이라 치운후의 시방으로 돌아가서
살이혹시 보일세라 허리띠를 단속하니
음식소화 할 수 없어 트림이라 절로난다

이 가사에서는 누구나 겪게 되는 초야의 기대감과 수줍음, 그리고 신랑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해학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첫날밤에 신랑을 바로 바라볼 수 없어 돌아앉아 있자니 목이 빠질 듯하다는 것과 신랑 앞에서 기침이 날까 두려워하는 일 등 신혼부터 신랑에게 흉한 모습을 보일까 조심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긴장되는 시집의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함과 조심스러움을 다양한 삽화를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가사작품을 돌려 읽고 필사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의 고단함과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해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규방가사는 전통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읊어지고 있다. 영남지역에서는 지혜로웠던 여성의 삶과 경험, 특히 자녀 양육에 대한 소회와 출가 자녀에 대한 그리움, 노년의 한가로움과 신혼과 젊은 시절 시집살이의 고단했던 기억,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하게 된 여행의 소회 등을 가사로 읊어 그들의 삶을 반추하며 슬픔을 정화淨化하고 고단함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글·조춘호 대구한의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사진·문화재청, 간송미술관,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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