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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동의 계절, 구름수녀와의 하루
작성일
2012-06-1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022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삶의 지극함

점심시간을 넘긴 오후. 이해인 수녀가 있는 부산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를 찾았다. 그날따라 부산 하늘은 어두운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완연한 봄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다소 차게 느껴졌다. 이해인 수녀와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우리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눠 마셨다.

“수녀원에서는 짜인 일과에 맞춰 함께 일하고 밥 먹고 기도하는 게 일상이에요. 오늘 저녁에는 딸기잼을 만들기 위해 딸기 꼭지를 따는 공동작업이 예정되어 있더라고요. 기도와 노동, 묵상이 맞물려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독자들을 위해 마련된 ‘민들레방’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민들레방의 작은 창문 밖으로는 이해인 수녀가 이름 붙인 ‘꽃구름’이라는 정원이 있다. 곳곳에 탐스럽게 핀 작약이 어여쁘게 고개를 내밀고 있고, 무성한 나무의 이파리들이 바람 따라 흔들리는 풍경이 가득하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수녀원의 작은 공간에 있노라니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가득하다.

“생사기로에 있는 암환자가 되고 보니, 순간순간이 아름답고 온 하루가 전 생애처럼 느껴져요. 불교적인 용어로 보면 환희심이라고 할 수 있지요. 기쁨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해요. 꽃향기가 날아오고 나비가 날아오고, 새소리가 들리면 여기가 바로 천국이지요. 또 늘 마주하는 동료들도 새롭게, 아름답게 보이고요. 경탄의 감각을 가지고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이 굉장한 선물이에요.”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소소한 삶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면, 매일매일 걷는 걸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꽃구름 정원을 지나 수녀님들이 가꾸고 있는 여러 텃밭을 보았다. 무럭이네, 싱싱이네, 쑥쑥이네, 당근이네, 푸름이네, 탐나네, 모퉁이네, 알아크네…다리 아프고 허리 아픈 이들을 위한 ‘서 있는 텃밭’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수녀님들의 고운 마음씨가 느껴진다.

마음을 일깨우는 문학의 힘

“지난 30여 년간 20여 권의 책을 내며 독자들과 교류하고 있어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편지나 방문을 통해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요. 이에 대해 더 깊게 알기 위해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하는 포에트리테라피(시 치유) 워크숍에도 가봤어요. 선함과 아름다움, 평화라는 메시지가 담긴 글이 우리의 마음을 건드려서 양심적이고 맑고 깨끗하게 살고 싶다는 갈망,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는 갈망을 일깨워 치유와 희망, 위로의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이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요. 자연발생적으로 읽는 이들이 그렇게 생각해줘요. 이것이 글의 힘, 문학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문학의 힘은 다만 독자들과의 교류와 교감에서 그치지 않는다. 많은 종교가 존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종교 간의 적절한 교류와 소통은 지금보다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이러한 면에서 이해인 수녀의 문학은 타 종교인들과 교류를 하는 데 커다란 힘이 된다.


“지금도 스님과 원불교의 교무님, 목사님들과 교류를 하고 있어요. 글이 너무나 좋은 점은 교의적인 것을 따지기 시작하면 서로 간에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데 문학을 통해 만나면 금방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지요. 목사님들이 제게 채플강론을 부탁하고, 스님들도 법당에 와 문학적인 체험담을 들려주길 원해요. 이것은 글이 하는 아름다운 가교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로 종교는 달라도 문학으로 만나면 이해인 수녀 개인에 대한 큰 거부감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많은 종교가 어우러져 있는 만큼, 서로 배타적인 모습을 자주 본다. 하지만 이해인 수녀는 종교인 하나하나가 외교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종교를 열심히 믿으면서, 동시에 타종교의 그것 또한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제가 이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 중 하나가 불자나 스님이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천주교 용어로만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점심 공양하고 가시겠어요?”처럼 상대 종교 용어를 씀으로써 친밀감을 유발하는 거에요. 그것이 우정을 촉진시키는 하나의 촉매제 역할을 하더군요. 제가 절에 방문했을 때에도 스님들이 그렇게 해 주시고요. 이렇게 서로 존중하는 우정이 참 기뻐요.”

문학은 그 무엇도 재고 따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작은 힘이 된다. 우리가 이해인 수녀를 바라보는 ‘치유와 희망, 위로의 메신저 역할’은 단순히 이해인 수녀 개인을 바라보는 눈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 순수한 힘이 된다.

 


어린 시절의 동심과 추억이 얽힌 문화재

“최근에는 고령 대가야박물관에 갔었고, 경주 양동마을도 방문했었어요. 참 좋더군요. 우리나라 구석구석에는 좋은 박물관이 참 많아요. 유홍준 박사님이 하신 말씀 중에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지요. 문화재는 어릴 적 추억과 연결돼요. 어렸을 때 창경초등학교를 다녔어요. 그래서 창덕궁과 창경궁을 많이 드나들었지요. 창경궁이 저에게는 놀이터나 마찬가지였어요. 지금은 자주 찾아갈 수 없으니 꿈에도 나오더라구요. 창경궁 옆 돌담길 또한 언제고 걷고 싶은 길이에요. 또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불자들이 있는 암자에 가서 매화차를 마시면서 절의 정취를 느끼는 것도 좋아하고요.”

‘문화재’라고 하면 보통 특별한 것으로 생각해, 여행을 다닐 때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화재는 우리 선조의 삶 그 자체이며, 일상을 구성하던 것이 아닌가. 추억이든 일상이든 문화재와의 인연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문화재를 어렵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녀원에는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다. 오후소임 시간, 노동과 기도를 하는 수녀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의 인터뷰는 소소한 웃음이 넘치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구름수녀’라 불리는 이해인 수녀와의 하루는 싱싱한 이파리들과 꽃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생동의 계절과 어울렸다. 어느새 오늘의 시간들이 삶의 든든한 힘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글·박세란 사진·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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