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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와 운해의 독특한 절경, 중국 황산黃山
작성일
2012-06-1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991

 

황산의 옛 이름, 이산

황산은 이미 1억 2천만 년 전부터 그곳에 있었지만 서기 747년까지는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현재 황산이 있는 안후이성은 중국에서도 발전한 지역인 동부에 있지만, 수많은 왕조의 도읍지로 중국 역사의 중심지였던 중원지역이나 장안에 비하면 오지에 불과했다. 고대 중국인에게 중원지역 밖의 땅은 관심을 둘 이유가 없는 변방에 불과했기에 여행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때문에 황산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국 명산의 대명사 오악이 모두 중원지역과 장안 근처에 위치해 있는 것도, 황산이 오악보다 수백 년 늦게 알려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황산의 옛 이름인 이산. 어떤 이는 검푸른 봉우리를 지녀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지만-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 이는 ‘검다’라는 뜻이다-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화강암 봉우리인 황산에서 검푸른 봉우리를 찾을 수 없다. 사실 근교 마을 이현이 검푸른 대리석 산지로 유명했고, 황산은 그 마을의 유명세를 빌려 이산이라 불렸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당시 오른 사람이 거의 없는 황산은 이름만으로 보면 그저 동네 뒷산이었을 뿐이다. 적어도 서기 747년까지는…….


 

당현종, 이백 그리고 황산

이산이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다. 서기 747년, 양귀비에 빠져 정사는 뒷전이었던 당현종. 명석함을 상실한 현종에게 권력에 기생하려는 한 도사가 실제 존재여부조차 밝혀지지 않은 사서 『주서기이』에 ‘헌원황제가 어느 날 시종들과 이산에 와서 연단술(불로장생의 약으로 믿었던 단丹을 만드는 기술의 하나.)을 익혀 마침내 연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7알을 먹고 하늘을 날았고, 42알을 먹자 머리가 하얘지고 피부가 쭈글쭈글해졌다. 이에 이산에 있는 온천수에 3일 밤낮 몸을 담그자 다시 검은 머리가 돋아나고 피부가 팽팽해지고 젊어졌다’고 전하여 현종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황제의 전설이 서린 비범함에 혹했는지, 애첩 양귀비가 좋아하는 영험한 온천에 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종은 다음과 같은 명을 내린다.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의 이름을 따서 이산을 황산이라 명하고, 6월 17일을 황산의 명명일로 정한다.” 이리하여 747년 음력 6월 17일, 이산이 황산으로 다시 태어났다.

만약에 안사의 난(당나라 중기(755∼763)에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 등이 일으킨 반란.)이 없었다면 현종과 양귀비는 황산에 올라 황제를 기리는 의식을 치르고 온천수에 몸을 담갔을 테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면 거짓으로 지어낸 전설로 인해 황산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 이야기가 다시 전설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8년 뒤에 이백(李白, 701~762. 중국 당나라 시인.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되며 시선詩仙으로 불린다.)이 황산에 다녀갔다. 이백은 두 차례 더 황산을 찾아 몇 편의 시를 남겼고, 황산의 봉우리 ‘몽필생화’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백이 왜 수많은 명산을 두고 알려지지 않은 황산을 찾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로 인해 황산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황산의 5절五-기송, 기봉괴석, 운해, 온천, 겨울눈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에 자라난 소나무 풍경은 사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황산의 풍경은 특별하다. 황산송이라고 부르는 소나무는 보통 해발 1,000미터 이상에서 자라는데 잎은 짧고 유난히 무성하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자랄 수 있을까 생각이 들 만큼 척박한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린다. 황산송은 2미터까지 자라는데, 열악한 환경 때문인지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할 만큼 성장 속도가 아주 느리다. 작은 소나무가 보기에는 아기 소나무처럼 보여도 환갑을 훌쩍 넘었다. 또 바위의 형태에 따라 자라다보니 온갖 기이한 형상을 보여준다. ‘바위틈에서 자라지 않는 소나무가 없고, 기이하지 않은 소나무가 없다’라는 말은 황산송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말이다.

자연이 오랜 시간 공들여 깎고 빚은 기봉과 괴석들은 황산의 또 다른 절경이다. 사람 같기도 하고 동물 같기도 하여 뭐라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모양, 기이한 형태의 바위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황산의 수많은 바위에 이름을 지어주며 감정을 담아내고, 애틋한 전설을 담아 애정을 표현했다.

이백이 시를 쓰고 던진 붓이 떨어져 봉우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멍비셩화(몽필생화),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멀리 바다만 바라보는 원숭이의 전설이 담긴 호우즈관하이(후자관해). 어디선가 날아와 사뿐히 내려앉은 느낌의 600톤이 넘는 거석, 페이라이스(비래석)는 만지는 횟수에 따라 다른 복을 가져다준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황산을 소개하는 사진을 보면 대부분이 운해 사진일 만큼 운해는 황산을 대표한다. 해발 1,500미터가 넘는 산이라면 대부분 운해를 볼 수 있지만 황산의 운해는 특별하다. 낮은 봉우리는 모두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추고, 고봉만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구름바다 속 외로이 떠 있는 섬 같기 때문이다. 거기에 바람이 불어 구름바다 사이로 바위와 소나무들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뭐라 형용할 수 없이 신비하다. 아쉽게도 황산의 운해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년 중 운무가 생기는 날은 200일 이상이지만 운무가 피어나 수증기 위로 올라가거나 비 온 뒤 안개가 걷히지 않은 상태에서 날이 개어야만 운해를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쉽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에 빠져 다시 황산을 찾는다. 여기에 온천과 겨울눈을 포함해 황산 5절이라고 한다.

 

아찔한 계단 그리고 사람들

만약 내게 황산의 6절을 꼽으라 한다면 단연 아찔하게 가파르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돌계단과 사람들을 말할 것이다. 황산에 오르기 위해 입구에 서면 우선 끝이 안 보이는 계단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숨이 차고 무릎이 끊어질 듯한 고통에 주변 풍경을 보는 것조차 힘들다. 하지만 고단함을 참고 올라 계단길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아찔한 풍경에 성취감이 긴 여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황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해대협곡에 들어서면 우선 경이로운 풍경에 놀란다. 그 험준한 협곡 사이사이 절벽을 타고 바위 사이를 지나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의 아찔함에 두 번 놀라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산 아래에서부터 돌을 이고지고 올라왔을 장인의 인내와 기술, 노력에 세 번 놀란다. 아찔한 낭떠러지에 매달린 난간과 그늘을 만들어주는 바위, 그 바위틈에서 자라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드는 소나무는 아슬아슬한 난간을 걷는 두려움을 잠시 잊게 한다.

그 계단길을 매개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이어나간다. 흔한 등산화도 없이 나무 막대 하나에 의지에 수많은 짐을 어깨에 진 인부들, 물 한 병이라도 팔아 생활을 이어가려고 험한 협곡 구석까지 생수 수십 병을 지고 오르는 사람들. 또 그 풍경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는 관광객.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하루 종일 계단을 보수하는 석공……. 모두 계단을 오르내리며 만나고 헤어진다. 자연보호 측면에서 보자면 정상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자연훼손을 불러오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미 황산을 가로지르고 있는 3대의 케이블카나 현재 공사 중인 서해대협곡의 리프트 건설에 비하면 계단은 양반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로 인해 밀려드는 관광객의 편의와 수입을 위해 훼손되는 아이러니를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글·사진·박지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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