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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두고 온 우리 몸짓, 화관무
작성일
2013-04-1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108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온 세월

“춤꾼 최승희 선생님도 우리 스승님께 춤을 배웠어요. 스승님은 탈춤이며 검무劍舞할 것 없이 못 추는 춤이 없으셨지요.”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4호 화관무의 김나연 보유자가 스승 민천식의 이야기를 쉼없이 풀어낸다. 황해도 사리원에서 출생한 민천식(1898~1967)은 일곱살에 애기탈춤을 시작했고, 성장해서는 해주와 개성의 권번 기녀들에게 예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월남하여 뜻있는 연희자들과 함께 봉산탈춤과 해주탈춤을 보존하는데 힘쓴 끝에 1967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의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이처럼 북녘의 민속예술을 전승시킨 독보적인 존재가 민천식이었으니 그의 제자 김나연은 스승의 발자취에 대해 하루종일 이야기해도 모자랄듯한 기세이다.
칠순을 넘긴 김나연 보유자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간다. “스승님은 월남하셔서 인천 동구 송현동에 자리를 잡으셨어요. 인연이 라는게 참 희한하지요? 우리 집과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국악교습소가 가까웠어요. 중학생이던 저는 학교를 마치면 언제나 선생님께 쪼르르 달려가 춤을 배웠지요. 스승님이 계시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철부지 소녀였던 그녀는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스승에 대한 그리움을지우지못하고있었다.



황해도 화관무의 매력

머리에 화관花冠을쓰고색한삼을 공중에 뿌리며 추는 화관무는 오늘날 민천식류와 김백봉류가 전해져 오고 있다. 김나연 보유자가 전승하고 있는황해도 화관무는 故민천식 선생을 통해 자리를 잡은 춤이다. 탈춤으로 유명했던 그는 민천식류의 화관무를 탄생시킬 만큼 칠십 평생을 다양한 춤사위와 함께 했고, 유일한 제자 김나연은 스승의 춤사위를 지켜냈다.
“황해도 화관무는 한삼의 폭과 길이가 다른 화관무 보다 좁고 짧은게 특징이에요. 춤사위도 어깨를 중심으로 한 손목 놀림이 강하구요. 발끝을 찍어 누르는 듯한 디딤도 참 매력적이죠.” 혹자들은 화관무의 아름다움에 대해 ‘가벼움과 무거움, 섬세함과 우람함, 정교함과 장중함’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춤을 보지 않은 이들에게 춤의 맛과 멋을 표현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발끝에서 힘이 넘쳐 나는 화관무의 움직임을 몸소 느껴보기를 권하고 싶다.

두고 온 춤, 이어갈 춤

“재작년에 황해도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서를 받았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찹니다. 부족한 제가 선생님의춤그림자를 밟는 누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구요.” 수십 년을 한 결 같이 춰온 화관무이지만 일흔을 넘긴 제자는 여전히 스승님의 춤을 표현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한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황해도 화관무를 전승해 온 김나연 보유자. 이제 그녀의 춤사위가 300만 황해도민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위로하고 있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 천안시립무용단, 나연화관무전수소, 연합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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