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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쌈, ‘나물의 나라’에서 즐기는 신선한 향연
작성일
2013-04-1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8158



봄바람이 불면 푸성귀를 찾게 된다

봄이다. 봄은 오행五行으로 구분하면 나무(풀을 포함한 식물 전체)에 해당하고, 색깔로 치면 초록과 푸른색 계통이다. 오행에서 나무와 풀은 ‘나고자람[生長]’을 상징한다. 그래서 봄이 오면 땅에서 풀이 싹트고 나무에도 새순이 돋는다. 긴 겨울 잠자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따뜻한 봄바람에 기지개를 켜듯 살아움직이기 시작하는것이다.
날이 따뜻해지면 우리 입맛도 자연히 싱그러운 푸성귀를 찾게 된다. 겨울에는 말린 나물로 만든 ‘묵은 나물’이 맛나지만, 봄에는 역시 햇나물이 입맛을 자극한다. 입춘에 향이 강한 채소 다섯 가지를 겨자장 등에 무친 오신반五辛飯을 먹었던 것도 그 상큼하고 매콤한 맛이 봄의 미각을 일깨우기 때문이리라.

산과 밭에서 푸성귀가 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나물로 무쳐먹기도 하지만 날것 그대로 쌈을 싸먹는다. 무친 햇나물도 상큼하지만, 신선한 걸로 따지자면 쌈을 따라올수없다. 물론 양배추나 호박잎처럼 데쳐서 싸먹는 이파리도 있고, 대보름에 먹는 ‘복쌈’의 김쌈처럼 물기 없이 먹는 경우도 있지만 쌈이라고하면 역시 물기를 머금은 날이파리가 제격이다. 150가지가 넘는 나물과 생채 요리를 만든 민족답게 우리가 쌈으로 싸먹는 채소 종류는 매우 많다. 배추, 깻잎, 신선초, 당귀, 겨자잎, 근대잎, 미나리, 콩잎, 파, 쑥갓을 비롯하여 산에서 나는 수많은 풀과 잎을 쌈으로 먹어왔다. 어디 산나물뿐인가. 바다에서 나는 김이나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도 말리거나 날 것 그대로, 또는 데쳐서 쌈 싸먹어왔다. 심지어 묵은 김치의 양념을 씻어낸 김치쌈, 무를 초절임한 무쌈까지 즐겼으니 우리 선조들이 쌈 싸먹는 데 발휘한 상상력과 실험정신은 대단하다고 할 수있다.

비벼먹거나 말아먹는 것처럼 쌈 싸먹는 것도 ‘섞어먹기’좋아하는 우리네 습성에서 나온 것인데, 섞어먹기의 특징은그재료를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데 있다. 이처럼쌈재료는한정돼 있지 않지만쌈싸먹기에 가장 좋은 재료는 있다. 바로 상추다.
흔히 쌈이라고 하면 상추쌈을 떠올릴 정도로 상추는 쌈 싸먹으면 가장 맛난 푸성귀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가장 널리 먹어온 재료다.

1400년전의 한류韓流, 고구려 상추의 인기

상추의 원산지는 유럽과 서아시아라고 하지만, 아마도 상추를 가장 즐겨먹는 나라는 우리나라일 것이다. 우리가 언제, 어떤 경로로 상추를 먹게 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에 이미 상추를 먹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송대의 뛰어난 문인도곡의 저서인 『청이록淸異錄』에 ‘외국에서 사신이 왔을 때 수나라 사람들이 상추 종자를 비싸게 사들여 천금채라고 불렀다’는 기록이있고, 청대 문헌인 『천록지여天祿識餘』를 인용한 『해동역사海東繹史』 제 26권에는 ‘고구려 사신이 오면 수나라 사람들이 종자를 구하러와 값을 매우 후하게 쳤으므로 천금채라 했으니, 지금의 상추다[高麗國使者來隋人來得種酬之甚厚因名千金菜今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로써 추측해보면, 외국 사신은 바로 고구려 사신인것을알수있다.

수나라 사람들이 천금을 주고 얻으려 했던 고구려 상추의 인기는 원나라 시대에도 계속됐다. 원나라에서는 고려 풍속이 유행하는 것을 고려양高麗樣이라 했는데, 고려 음식도 빼놓을수없다. 시인 양윤부陽允孚는고려 사람들이 채소를 날로 쌈싸먹는 습관을 언급하며 ‘다시 고려 채소의 뛰어난 맛을 얘기하건대 산의 표고나물 향까지 모두 들여왔다네[更說高麗生菜美摠輸山後摩菰香]’라 읊었으니, 상추는 물론 산나물까지 인기였던 모양이다. 고려 사람들이 지천에 늘린풀을 뽑아 쌈 싸먹는 것을 보고 놀란 몽고군의 이야기나, 공녀貢女로 간 고려여인들이 원 왕실에서 상추를 심어 먹었다는 이야기 역시 우리 민족의 오랜 쌈싸먹기 전통을 말해준다.



속재료 보다 싸먹는 이파리가 더 중요한 한국의 쌈

싸먹는 음식은 사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해먹고 있다. 아시아에서 널리 먹는 만두나 춘권, 에그 롤, 딤섬, 넴(월남 쌈), 맥시코의 케사디야나 뷰리토 등속, 인도의 싸모사, 러시아의 피로시키, 동유럽의 골럽시(양배추 쌈 요리), 그리고 가장 흔하게는 샌드위치나 햄버거도 싸먹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음식은 재료를 껍질[皮] 안에 넣고 일정한 모양을 만들어 그냥 먹거나 또 찌거나 굽거나 튀겨낸 것이다. 아무리 싸먹는 음식이라고 해도 미리 익혀 나온 것을 우리는 쌈이라고 하지 않는다. 송편을 쌈떡이라 부르지 않고, 만두를 밀쌈이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월남의 넴요리 가운데 쌀반죽피皮에 신선한 채소와 삶은고기, 익힌 새우 등을 싸먹는 요리가 있다.이 요리는 차게 먹는데다 소스에 찍어 먹으므로 여러모로 우리네 쌈과 닮은 듯하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세상 대부분의 쌈요리가 그렇듯이 신선한 넴역시 속재료를 익힌 쌀반죽 피에 싸서 먹는다. 멕시코의 다양한 타코요리도 속재료는 다양하지만 싸는 겉재료는 옥수수 아니면 밀가루로 만든 구운 또띠야다. 물론 우리에게도 밀쌈이 있지만 우리의 전형적인 쌈은 상추나 깻잎 등 싱싱한 채소 잎에 밥을 싸먹는 형태다. 다른 나라의 쌈요리가 탄수화물피에 고기나 채소를 싸먹는 모양이라면, 우리는 거꾸로 여러 채소 잎에다 탄수화물인 밥을 싸먹는다. 그래서 다른 나라 쌈은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양하지만, 우리네 쌈은 겉에 싸는 재료가 다양하고 더 중요하다. 상추나 배추는 신선하게, 호박잎은 데쳐서 싸먹는다. 깻잎이나 쑥갓, 파 등은 향취를 위해 싸먹는다. 그뿐인가. 새콤 짭조롬한 김치쌈도 있고, 단촛물에 잰 깔끔한 무쌈도 있다. 또 미역같은 해조류를 데치거나 날로 싸먹기도 한다.



다양한 쌈장이 있어 더욱 발달한 쌈 문화

이처럼 속 재료보다 싸먹는 겉 재료가 중심이 되는 것이 한국 쌈의 특징이며, 따라서 양념장도 싸는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푸성귀를 싸먹을 때는 된장이나 막장, 된장과 고추장 등을 섞은 쌈장을 넣어 먹고, 해조류를 싸먹을 때는 초고추장, 또는 젓갈이나 초간장 등과 함께 한다. 겉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 양념장을 만들어 먹은 덕택에 우리네 쌈은 더욱 매력적인 맛으로 발전하게 됐다. 만두나넴, 타코 등도 제각기 알맞은 소스와 함께 먹긴 하지만 싸는 겉 재료가 한정된 탓에 우리네 쌈장처럼 다채롭지 않다.
가장 전형적인 경기도식 상추쌈은 밥 위에 웅어(멸치과) 회를 얹고 된장이나 고추장을 떠 넣은 다음 쑥갓과 실파 몇가래를 얹어 먹는 것이다. 옛 왕실과 반가에서는회대신 점잖게 감정(찌개보다 바특하게 끓이는 것으로대개 해물을 고추장으로 끓여낸다)이나 장똑또기(살코기를 잘게 썰어 갖은 양념을 하여 볶은 뒤에 깨를 버무린 반찬)를 반찬 삼고약고추장을 곁들였다. 두부를 장에 재운 두부침장도 쌈의 풍미를 더욱 높여주는 귀한 반찬인데, 오늘날 사라졌다. 하지만 풋고추를 썰어 넣은 강된장이나 쇠고기가 들어간 약고추장은 아직도 쌈과 함께 자주 오르고 있다. 예전에는 다양한 집장(즙장, 채소를 섞어 담근 된장으로 향취가 있고 크림처럼 부드러운 농도의 장)이 있어 쌈장으로 널리 쓰였는데, 오늘날에는 담가 먹는 집이 거의 없다. 대신 견과류나 참치, 두부 등을 섞어 쌈장을 만들어 먹는가 하면 심지어 마요네즈를 섞은 장까지 등장했으니, 우리 민족의 쌈장은 오늘날에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쌈장의 발달 덕택인지 쌈의 재료 역시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수입 채소 가운데 케일, 로메인, 비트, 청경채 등은 쌈 재료로 일찌감치 한국 사람들에게 낙점 받았고, 파프리카도 풋고추와 함께 나란히 쌈 담는 채반에 오르고 있다. 쌈은 최근 웰빙 음식으로 각광받으며 음식점 식단에 오르고 쌈 전문점까지 등장했다. 특히 보리밥 등 잡곡밥에 된장국, 거기에 열 가지가 넘은 각종 채소 이파리와 당근, 오이,풋고추를 칼칼한 쌈장과 먹으면 맛도 좋지만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건강 식단이 된다.

글·사진. 한경심 (한국문화연구가) 사진. 아이클릭아트, 동아일보출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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