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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통놀이, 해학으로 감싸 안는 삶의 애환
작성일
2019-11-26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185

놀이란 ‘일’과 대립된 개념을 가진 활동을 의미한다. 아이들에게는 일과 놀이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어른들에게는 비교적 뚜렷하다. 일에서 받는 강박감을 해소하고 피로를풀기 위한 방법이 놀이다. 우리 조상들도 놀이를 통해 노동의 고통을 치유하고 삶의 애환을 달랬다. 이 글에서는 전통놀이 가운데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해주는 윷놀이에 대해 조명해본다.

조상들의 한겨울 놀이

옛 문헌상에 나타난 한겨울 놀이로는 난로회(煖爐會)1), 풍등놀이2), 궐희(闕戲)3), 매사냥4), 축국 등이 있다. 전래놀이 성격이 강한 전통놀이는 가락지찾기놀이5), 눈싸움놀이6), 다리세기놀이7), 뚜럼놀이8), 못치기9), 썰매타기, 사냥, 잉어놀이10), 제기차기, 지게발걷기, 팽이치기, 윷놀이, 구슬치기, 연날리기, 썰매, 눈과 관련된 놀이 등등 수많은 놀이가 있다. 물론 추운날씨는 야외에서 할 수 있는 놀이의 상당수를 불허했지만 대신 시간을 허락해주었다. 봄과 가을 농번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긴 시간의 놀이를 거의 매일, 그것도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놀 수 있는 환경을 선사해준 것이다.


농번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여가시간을 얻게 된 어른들이 했던 대표적인 놀이가 윷놀이다.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빼놓지 않고 한 번 쯤을 해봤을 만한 대표적인 전통놀이가 바로 윷놀이다.


1) 음력 10월 세시로 전골냄비에 소고기를 비롯한 여러 재료를 담고 육수를 부어 끓인 음식을 둘러앉아 먹던 풍습이다. 전골의 유래가 된 세시풍속의 놀이라 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겨울편, 94쪽.

2) 경상남도에서 동짓달 저녁에 행하던 민속놀이로 서당의 생도들이 이웃서당의 생도들과 등불을 가지고 싸움을 하는 놀이.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겨울편, 196~197쪽.

3) 대궐놀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이 매년 여름과 겨울에 행하던 모의조정 놀이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겨울편, 307쪽.

4) 음력 10월 초부터 다음 해 해동이 될 때까지 길들인 매로 꿩을 잡는 사냥놀이.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겨울편, 311쪽.

5) 여자아이들이 방 안에서 가락지를 놀잇감으로 즐기는 놀이라 가락지뿐만 아니라 손안에 들어가는 다양한 소품을 사용한다.

6) 눈이 내리면 가능한 놀이로 설전이라고도 한다. 일단 눈이 내리면 눈싸움뿐만 아니라 눈을 이용한 눈집, 눈사람 등 다양한 놀이가 가능해진다.

7) 전국적인 범위에서 진행되었고 인지도가 매우 높은 놀이다. 여럿이 마주보고 앉아 다리를 뻗어 맞물리게 한 후 노래에 맞춰 노는 놀이다.

8) 제주 지역의 놀이로 뚜럼을 희화화한 소재를 사용하여 겨루기 놀이 등을함. 뚜럼은 말과 행동이 어눌하고 똑똑치 못한 사람이나, 다리가 길어 걷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운 두루미 등을 지칭하는 말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겨울편, 310쪽.

9) 쇠못이나 대못을 놀잇감 삼아 쓰러트리기, 집어넣기, 던져 꽂기 등을 진행하며 이긴 사람이 못을 따먹는다.

10) 겨울철 제주 지역의 아이들 놀이로 기와밝기놀이와 유사하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겨울편, 316쪽.

정해진 것이 없고 항상 대등한 승부가 가능하고, 조금만 더 운이 붙어주면 이길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삶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01. 옛 문헌상에 나타난 한겨울 놀이 중 하나인 연날리기 ⓒ이미지투데이

신명풀이를 경험하게 해주는 놀이

4개의 윷가락을 던져 나오는 5개의 경우를 도(돼지亥), 개(개犬), 걸(양羊), 윷(소牛), 모(말馬)로 명명하고 각 경우마다 움직이는 칸 수를 정해 윷판 위를 이동한다. 윷판은 대체적으로 정형화된 틀을 가지고 있으며 입구를 지나 ‘도’부터 시작해 윷판을 한 바퀴 돌아 입구이자 출구인 ‘참먹이’에 이르러 윷판의 세계를 벗어나게 된다. 보통 두 편으로 나눠 윷판을 돌아다니고 4개의 말이 먼저 시작점이자 끝나는 점인 ‘참먹이’를 통해 나오면 이기게 된다. 설명은 단순하지만 윷놀이의 세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던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던질 때마다 다른 경우의 수는 윷놀이를 불확실성의 세계로 인도한다. 하나의 말(‘동’이라고도 함)이 ‘도’를 시작해‘참먹이’에 오는 동안 수많은 고초를 겪는다.


인생의 축소판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도’로부터 첫걸음을 떼면 서로 잡고 잡히는 일을 반복한다. ‘모’자리에 이르러 ‘모도’로 가기도 하고 ‘뒷도’로 돌기도 한다. ‘모도’로 가는 길이 가장 짧고 쉬운 길처럼 보이고 ‘뒷도’로 돌아가는 길이 먼 길처럼 느껴지고 효용성이 떨어질 듯 보이나 그렇지만도 않다. 쉽고 빠른 길이라 여겼던 ‘모도’에서 잡혀 죽을 수도 있고, 먼 길로 돌아가는 것 같던 ‘뒷도’의 길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으로 무사히 살아나올 수도 있다. 같은 편 말이 겹칠때 업기도 하여(‘임신’이라고 말하는 곳도 있다) 긴박함과 아쉬움, 허탈함과 즐거움 등을 더할 수도 있다.

02. 윷놀이는 우리나라 설날 놀이의 하나로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3. 4개의 윷가락을 던지면5개의 경우의 수가 생겨난다. 사진은 모(말馬) ⓒ이미지투데이

근시일에는 영어의 ‘Back’을 써놓고 ‘Back’을 포함한 ‘도’를 ‘Back 도’로 명명하고 그 자리에 멈춰 한 칸 뒤로 무르게 한다. 근접전이 이뤄지고 있을 때는 ‘Back 도’가 나오면 순간 윷놀이 판은 초긴장 및 초몰입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뒤처져서 패색이 짙던 말이 윷이나 모를 연속으로 하는 동이(‘사리’라고도 함)를 해서 상대편을 잡거나 아깝게 놓칠 때다.


하지만 윷놀이는 윷을 잘 던져 동이를 많이 한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 던지는 일 이상으로 말을 잘 써야 하는 고도의 두뇌게임이라 할 수 있다. 윷놀이 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윷가락을 던지면서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지만, 말을 쓸 때는 같은 편끼리 종종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각각 생각하는 길이 다르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승패가 결정된 후 상대편에게 패배의 원인을 찾기보다 같은 편 안에서 말을 잘 못 써서 졌다며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말쓰는 사람을 정할 때 각 편에서는 머리회전이 빠르거나 많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맡게 한다. 이렇게 정해진 사람도 어려운 선택의 순간이 오면 같은 편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말판을 운영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단계는 공중말(건궁윷말)11)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공중말에는 말판과 말이 없다. 말을 놓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말판과 말이 존재하며 윷을 노는 사람들이 함께 거들며 놀이를 즐긴다. 공중말은 자기편뿐만 아니라 상대편의 말도 함께 봐야 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쉬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말판과 말을 서로 보면서 말을 운영하는 재미는 그 놀이판에 몰입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재미의 특별함과 이로 인한 신명풀이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재미있는 것을 왜 안 해?

지역마다 다양한 재질과 크기의 윷이 만들어졌고, 이 윷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놀이를 즐겼다. 확실한 것은 실내·외를 가릴 것 없이 윷놀이가 겨울철에전국적으로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1936년 전국의 놀이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책으로 엮은 『朝鮮의 鄕土娛樂』12)을 보면 각 지역에서 윷놀이를 하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화된 놀이였다. 윷놀이에는 개인과 개인을 넘어 둘 이상의 편과 편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놀이다. 이 윷놀이가 재미있고 승부가 어느 한쪽으로만 집중되지 않는 것은 윷이 가진 불확정성에 기인한다.


11) 한양명, 『울진의 세시풍속과 놀이 Ⅰ』, 민속원, 417쪽.

12) 村山智順 편, 朴銓烈 역, 『朝鮮의 鄕土娛樂』, 집문당.

04.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나무꾼의 윷놀이 ⓒ문화재청  05. 윷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정해진 것이 없어 항상 대등한 승부가 가능하고, 조금만 더 운이 붙어주면 이길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삶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한 사람만 잘한다고 이길 수 있는 놀이가 아니다. 심지어 잘한 사람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협력하지 않으면, 누구 하나의 힘으로만 성과를 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모르긴 몰라도 긴 겨울 윷놀이가 마을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매일매일 긴장하며 동시에 희로애락을 겪게 해주는 중요한 재료가 되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겨울이면 이렇게 모여 과거에도 오늘도 윷놀이를 한다. “윷놀이 왜 하세요?” 하고 물으면 “이 재미있는 것을 왜 안 해?”라는 반문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일 또 그곳에 가면 윷놀이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글. 홍사열 (사단법인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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