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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곰삭은 고향의 미학, 마을문화 속 우리의 정서
작성일
2010-02-1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588




전통마을 새롭게 읽기: 전통마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 사람들의 공동체집단 대표 상징은 마을이다. 마을은 집과 집이 모여 이루어지는 삶의 최소단위로 한국 사람들이 지역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적응해 온 생태적, 고향적故鄕的 공동체 집단사회를 일컫는다. 이 같은 특징으로 전통마을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지속과 변화 속에 개성적인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전통마을을 들여다보면, 전통문화의 가치를 읽을 수 있다. 전통마을에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면서 본래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틀이 보존되고 있다.

전통마을은 겉으로 드러난 거주 공간의 조건들을 내포하는 문화 환경 속에서, 마을 주체들이 물질·행위·구비口碑라는 양식으로 전승의 틀을 보여주고 있어 특유의 구술문법과 계승원리가 누대로 이어지고 있다. 전통마을 읽기는 생태문화적 층위를 고려하여 사람 중심의 역동적인 교감성과 문화소文化素를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전통마을이 갖고 있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연계성은 주체집단의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질서와 상생을 찾아가는 살아있는 작품이 되었다. 생명력이 출렁거리는 삶의 생태적 작품유산이다.

사람들이 꿈꾸는 생각, 정신, 사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곳만의 독특성에는 주체들의 여유와 부지런함, 간절함이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자연생태에 적응한 지혜의 총합으로 전통마을은 유산으로서의 진정성眞情性을 갖는다.

전통마을은 철저히 기본에 충실하려는 폐쇄성이 있으나 동시에 이웃마을, 큰 단위의 소속 고을에 대한 개방성이 있다. 씨족마을의 혈연성은 전자를 지향하고 이윤추구의 교역 중심 마을의 목적성은 후자를 지향한다. 이는 특수한 전통마을의 사례이고 대체로 한국의 전통마을은 양면성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면서 특별한 색깔을 만들어 왔다. 필자는 이를 전통마을의 고향성故鄕性이라고 한다. 전통마을은 그만큼 느림과 곰삭음이 뭉쳐 있다.



전통마을에는 고향성을 지키려는 고유유전자의 원초적인 가치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혁신적인 가치가 공존한다. 개인의 죽음과 관계없이 마을 구성원의 문화화文化化는 지속된다. 뒤집어 말하면 전통마을은 옛것인 동시에 창조적인 일면이 충돌하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라는 뜻도 된다. 전통마을은 유형에 따라 공동선共同善을 위하여 사회질서가 우선하는 경우가 있고, 자연조건이 우위에 있는 경우가 있으며, 이 둘이 충돌하다가 스스로 재편되는 경우도 있다.

이와 달리 마을 주체들의 지연地緣의식에 따라, 살아가는 해법이 결정되는 사례도 있다. 마을 공동체 삶의 전략은 이익사회와 달리 미풍양속을 중시하고 상부상조의 나눔을 당연시한다. 동제, 두레, 대동계, 품앗이, 대동놀이 등의 유산은 전통마을의 대표 표상이기도 하다. 가문을 내세우되 마을 공동관심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관행이 존재한다. 이 생태전략성을 염두에 둘 때, 한국 전통마을의 정체성은 다른 나라의 그것과 차별화된 가치를 찾게 될 것이다.

전통마을은 여전히 생활사박물관이다. 전통마을이라고 부르기엔 한계가 있는 마을도 있지만 이름 있는 전통마을에는 아직도 매력적인 요소가 철철 넘친다. 문화재 가치를 넘어서 미래로의 창조적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 창조적 아이디어 브랜드 창고이며 한국인의 마음이 빨래 같이 널려 있는 마지막 고향박물관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는 전통문화 보존 차원에서 상당수 마을을 관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을민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지정받은 마을이든 그렇지 않은 마을이든 사람 중심의, 지금 여기에 있는 까닭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창조적 잣대로 때로는 문화치유의 현미경으로 보듬어야 한다.
 

전통마을 다시 드러내기:
전통마을답게 하는 끈의 매력은 무엇인가

전통마을에는 겉으로 드러난 공간적 경관의 배치미학과 안으로 숨겨진 시간적 계승의 속신원리가 씨줄과 날줄로 상생되어 있다. 둘을 동시에 살펴야 한다. 씨족마을이냐 각성바지마을이냐 그리고 특정인물 존재여부에 따라 마을 성향이 달라진다. 문중의 관행이 마을규범에 그대로 반영되는 마을도 있고, 역사적 인물이나 풍수적 속신에 의해 마을의 내외적 느낌이 좌우되는 사례도 있다. 그래서 전통마을은 다면적이다. 전통마을은 생태환경에 따라 특유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전통마을에는 미학성과 실용성이 있다. 삶 속에 복락을 누리는 공간으로 값어치를 끌어올린 흔적이 보이면서 실무적 기능에 의해 진취적인‘이용후생’의 측면이 있다. 주로 공동체 행위를 통해 이러한 관념이 현실문맥으로 실현된다. 경관과 마을 건물 배치 역시 이러한 관념에 의해 그 마을의 자연과 어울려 조성된다. 그 대표적인 담론이 마을신앙과 세시의례, 조직관행 등에 의해 실현된다.



마을신앙은 마을굿, 동제洞祭의 차원에서 주기적 반복행위로 표출된다. 주로 마을신神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행위의례를 통해 서열과 금기도 표출된다. 어른의 노숙함이 의례를 주도하고 젊은이들이 외경감으로 대물림을 준비한다. 마을전통의 교육적 기능인 셈이다.

마을신을 위하는 신성행위에는 지극정성의 금기적 속신俗信이 있다. 음양오행의 상징 안에서 제의적 행위가 이루어 지며, 생기복덕의 원리 속에서 마을신은 성聖의 오신적娛紳的 세계에 존재한다. 이러한 엄격한 공동체 의례는 마을 구성원을 이어주는 지연적 끈이다. 이 끈은 개인 탯줄과 달리 공동체의 힘으로 작용한다.

마을굿의 제의절차에서 대동회의, 걸립, 지신, 마당밟기는 준비와 앞놀이에 해당한다. 앞놀이에서 돋우어진 흥겨움과 신명이 영신과 접신을 도와주고 그렇게 받아들여진 신성神聖을 다시 가무오신으로 즐겁게 해서 난장판을 이루어 신성한 태초의 혼돈세계를 연출한다. 생명과 활성의 원천에서 바닥난 힘이 삼재三才와 소통하도록 꾸며진 신화적 모의의례를 통해 놀이화될 때 겨루기의 요소가 큰 역할을 감당한다. 이는 마을 경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이 평소에 이원화되었다가 마을굿이 행해질 때 일원화되는 이치와 같다. 반대로 마을신앙은 성스러움의 메커니즘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제의를 행하고 난 다음 뒤풀이의 잔치에서 신명을 누린다. 덕담을 건네고 먹을거리를 나누고 웃음을 자아낸다. 희로애락의 정서가 녹는 난장의 흥취가 있다. 마을축제의 진국이 여기에 있다.

속俗의 오인적娛人的 세계다. 농악 또는 풍물이 반드시 함께하는 까닭도 이러한 사연 때문이다. 노는 마당은 마을 주체만이 아니라 마을신도 더불어 불러 들인다. 신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한 마당이다. 이 소통의 끈은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연대감으로 움직인다.

마을신앙의 시간적 축은 세시의례의 시계성時季性과 연관된다. 한국전통마을의 마을굿이 정월 대보름이나 단오, 백중, 추석 등 세시명절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세시축제의 원형질이기에 부합하는 탓이다. 마을굿은 마을의 지역성과 생태성에 따라 지향하는 색채가 다르다. 마을굿의 특성은 제의집단이 추구하는 이념과 맞물려 있다. 대동놀이도 마을굿의 연장선에서 연행된다. 다만 세시의례의 연관성으로 생업활동의 모의의례성이 강하다. 다리밟기, 지신밟기, 백중놀이, 줄다리기 등이 그것이다. 집단놀이는 전통마을의 축제성祝祭性을 부각시켰다. 대동놀이의 공동체 연희 경험은 일상의 규범에서 벗어나 몰입함으로써 흥겨움과 신명을 느끼게 한다. 이 같은 체험은 마을 주체들을 동질감으로 묶어주고, 품앗이로 나아가 마을의 위기 앞에 뭉치는 구실도 하였다.

마을 공동체문화는 신과 인간의 어울림을 통해 표출된 물질전승, 행위전승, 구비전승이라는 원형자원이다. 마을굿의 제물 차리기에는 마을 주체들의 신앙적 심성이 반영되어 있다. 마을굿의 풍물 치기, 노래하기, 이야기하기에는 마을 주체의 놀이 정서가 신명과 재미의 오락성으로 녹아 있다. 전통성을 강조하는 마을일수록 일정한 전승문법이 있는데, 전통마을의 문화적 연대감에는 마을 구성원으로서 주체가 살아가면서 터득한 경험의 속신적 세계관이 각인되어 있다.

놀이문화는 마을축제의 일환으로 일상의 공동체 생업관행과 대립관계에서 그 특징이 발휘된다. 싸움, 겨루기, 점치기, 놀음 등의 행위를 바탕으로 일상 규범에 벗어나고 휴식으로 삶의 활력소를 얻는다.

이 같은 전통마을의 대동놀이 유전자는 한국인의 붉은악마 거리응원 등과 같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전통마을은 마을조직의 강화를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향약鄕約, 계, 두레 전통이 그것이다. 향약은 자발적인 규범이기보다 마을통치의 정치적 규범에 가깝다. 전통마을에는 계조직이 다양하게 있는데, 특히 대동계는 향약의 일면을 살려 환난상휼의 공동체적인 면을 드러내는 동계다. 계는 향약의 보완적 기능을 수행했고 지연과 혈연의 조건으로 자생적 협동체로 발전했다. 두레는 전통마을에서 주체들이 조직한 작업 공동체다. 단순히 농사의 공동노동만 주도한 것이 아니라 마을의 안전, 재해예방 등 업무와 사업에도 관여하였다. 더구나 공동 노동과정에는 농악과 호미씻이와 같은 놀이와 행사들이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노동요와 지신밟기, 상여놀이 등의 공동연행이 수행되었다. 이처럼 조직의 끈은 주체들의 자발적인 생명력이며 이웃과 어울려 정情을 나누고 자연환경과 더불어 순환적 정서를 밴 고갱이다. 질서 지키기와 권선징악을 위한 도덕적 틀이 전제되고 있으나, 생산력 증대, 구성원 안녕, 위기대비 등 생존전략을 위한 실용적 공동체 정신이 강조되고 있다. 전통마을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 등에 관계없이 마을 구성원 누구든 협력하고 배려해온 집단의식이 있으며, 관에 의존하기보다 마을주민 스스로 자기존중감을 보였다. 한국 민족문화의 저력인 동시에 마을문화의 숨겨진 가치다.
 

전통마을, 감성으로 가꾸기:
전통마을은 살아있는 인문학 박물관인가

전통마을과 접속하면, 고향 어머니를 떠올린다. 고즈넉한 푸른 색, 그 곳만의 사투리, 구수한 냄새, 가슴 찡한 이야기, 까치밥과 까치구멍의 모양새, 따스한 구들의 손길… 실타래처럼 나온다. 전통마을은 생업공간이며 동시에 지역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그곳에 사는 이들도 본래 생업을 버리고 문화관광업에 매달린 경우도 볼 수 있다. 마을 민속 문화자원을 오늘날의 문화 고객에게 팔고 있다. 전통마을의 순기능을 살리면서 역기능을 최소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동하회마을, 고성왕곡마을, 성읍민속마을, 아산외암마을, 성주한개마을, 낙안읍성, 경주양동마을 등 전통마을에 가면 추억 같은 옛 사진의 생생함과 함께 오래된 미래가 숨 쉬고 있다. 탈춤의 익명성, 풍토의 생태성, 특산품의 근대성, 신들의 축제성, 방어의 이중성, 품격의 상생성 등을 여러 형태로 감상할 수 있어 행복을 주는 곳이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최근 전통마을 복원을 통해 경쟁력 있는 관광마을이 만들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13개 전통마을을 선정하여 전통문화체험 마을로 가꾸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같은 정책은 계속 입안되어 추진될 것이다. 역동적인 문화박물관인 전통마을은 한국인의 심성과 꿈이 응축된 창조공장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경관은 서정적인 반면에 인적 네트워크는 활인적活人的 서사성을 지녔다. 문화재 지정이라는 허울 때문에 특정 부문을 앞세우다 보니 전통마을의 총체성과 융합성 가치가 배제되기도 한다.

앞서 말한 전통마을의 보이지 않는 매력의 끈을 놓쳤다. 아쉽다. 보존과 개발, 지속과 변화, 잘 살기와 느림을 지키기, 이러한 이분법 때문에 전통마을을 죽였다. 새마을 운동과 도시화는 전통마을의 가치를 지워버렸다. 바뀌어야 한다. 전통마을의 문화재적 유산 가치에는 여느 테마박물관과 비교할 수 없는 미덕이 있다.

전통마을의 주체가 유지해온 전통지식을 새삼 주목해야 한다.

보물창고 같은 마을자원의 문화콘텐츠 확보와 마을 주체 중심의 감성 창조력을 복원하고 재생하는 게 중요하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예전의 보존정책으로는 전통문화의 진면목을 유지하기 어렵다. 물질전승의 솜씨, 행위전승의 맵시, 구비언어전승의 마음씨라는 전통지식까지 살펴 그 가치를 이해하고 의미부여할 때다. 대물림 질서 안에서 군불처럼 지피는 착한 사람들의 온기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전통적인 훈습이 비교적 잘 된 아날로그 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디지털 튀는 세대를 위해 대물림의 통섭通攝을 확보해야 한다. 또 다음 세대를 고려하여 지속가능한 보존의 혁신 발상이 요구된다.



전통마을의 고향성은 사이버 속에서도 영원한 에너지다. 한국인다운 상상력은 전통마을의 바탕에서 나온다. 세계화라는 화두가 고개를 들수록 전통마을의 멋과 맛은 더욱 우러날 것이다. 곰삭은 고향의 미학, 체험하지 못한 미래세대를 위해 일반 박물관 이상의 감성과 창조력을 불러일으킬 전통마을의 가치를 거듭 일깨워야 한다. 문화재는 손때와 온기가 닿지 않으면 단순 골동품이 된다. 변화하는 첨단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 숨 쉬고자 애쓰는 전통마을은 우리들의 영원한 자화상이다.

전통마을의 단순 옛것의 역기능을 배제해야 한다. 마을문화의 회귀성, 고향성을 살리자는 것이다. 대도시인들이 오히려 지역문화를 즐기려 지역 곳곳으로 나들이를 오는 이른바 체험문화 1번지가 전통마을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마을 주민들이 여유 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그곳에서 삶의 활력을 얻으려는 사람이 만나는 현장으로 전통마을은 자리매김해야 한다.

전통마을은 더 이상 오래되고 지나간 동네가 아니라 새로 오는 사람과 전통을 붙들고 있는 사람과의 문화사랑, 문화 창조의 감성산실이다. 전통마을의 법고창신화, 우리시대에 민족 아이콘의 살아있는 콘텐츠다.  

 
글·이창식  세명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충북 문화재위원   
사진·고성군(왕곡마을), 경주양동마을, 낙안읍성 민속마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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