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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국민의 마음을 모아 되찾은 한 서린 우리문화재 - 세계 속의 무리 문화재
작성일
2007-01-1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029

국민의 마음을 모아 되찾은 한 서린 우리문화재
“살아서는 어진 장수가 되었고 죽어서는 충신이 되었으니 경에게 있어 어찌 유감이 있으랴마는 그대와 더불어 환란을 이겨내었으나 그대와 더불어 안락함은 함께 누리지 못하니 이것이 진정 나의 가슴이 아픈 까닭이라. 그대에게 판서의 벼슬을 증직하고 자손에게 벼슬을 준들 어찌 의로운 선비를 만족할 만큼 표창함을 다한다 하겠는가?” <선무공신 김시민 교서 중에서>

 hspace=0 src=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문화재
2005년 10월 일본 도쿄의 동경고전회에서 고전적 경매를 위한 출품유물 도록이 발간되었다. 그런데 이 도록에는 시선을 끄는 유물이 한 점 등재되었다. 바로 선무공신 김시민 교서였다. 공신교서는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임금이 내리는 글로, 공적의 내용을 찬양하고 주어지는 벼슬과 상물賞物, 특전 등을 기재한 문서다. 선무공신宣武功臣은 임진왜란 중 공을 세운 무장武將이나 관리 18명에게 내린 공신의 칭호였다. 현존하는 선무공신교서는 모두 6개였는데 제7의 선무공신교서가 발견된 것이다. 다른 선무공신교서는 대부분 보물로 지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특히 임진왜란 삼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주도한 김시민金時敏 장군은 관련유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학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매우 소중한 유물이다.
이 교서는 충북 괴산의 김시민 장군 종가에 전해 내려왔으나, 일제강점기에 유출되었다고 한다. 입찰회는 회원제의 폐쇄적 경매시장으로, 이 교서는 예상가격을 뛰어넘어 1,000만 엔 이상의 고액으로 일본인 고서적상인에게 낙찰되었다. 이 유물에 대해 국립박물관에서는 국내로 반입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매입을 시도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2006년 1월 2일 <경남일보>에 의해 진주지역에 알려졌고, 5월 19일에는 <중앙일보>에 도쿄발 기사로 전국에 전해졌다. 이에 자극을 받아 유물을 국내로 반입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5월 말부터 진주지역에서는 ‘진주문화사랑모임’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는 MBC 프로그램 ‘느낌표’의 ‘위대한 문화유산 74434’ 코너에서 국민모금운동으로 구입 추진을 구상하였고 결과적으로는 MBC를 단일창구로 추진하게 되었다.

온 국민의 보물이 되기까지
모금목표는 판매가격으로 제시한 1,500만 엔(약 1억3,000만 원), 기간은 7월 24일 이전. 진주에서는 6월 19일 처음 모금운동을 시작했으며, MBC에서 환수운동 방송을 시작한 것은 7월 1일이었다. 그러나 모금의 여정은 험난하기만 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으로 국민의 관심이 온통 축구에 쏠렸고, ARS를 통한 모금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정부의 승인이 지연되었다. 이에 모금을 위해 인터넷카페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와 공동추진하면서 계좌를 개설하였다. MC들도 출연료를 기부하고 2차례에 걸친 이벤트 행사를 개최하는 등 천신만고 끝에 20일 목표액을 채우고 7월 24일 국내로 반입하게 되었다.
이후 국립진주박물관에 최종 기증될 것을 전제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 후 현재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2006년 12월 29일 보물 제147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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