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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인적인 서적 거래, 책쾌에서 독립출판서점까지 VS 조선의 세책점에서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
작성일
2018-01-0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323

개인적인 서적 거래, 책쾌에서 독립출판서점까지 VS 조선의 세책점에서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 책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16세기, 책 수요와 독서 욕구는 증가했지만 제대로 된 민간 서점 하나 없던 상태에서 책의 수요와 공급을 책임 지던 서적외판원이 있었다. 바로 책쾌(冊)라 불린 서적상들이다. 이들은 책이 필요한 고객을 직접 찾아가 흥정하면서 고객이 원하는 책을 구해와 팔기도 하고, 책 처분을 원하는 이들로부터 책을 매입한 후 이를 필요로 하는 다른 고객에게 되파는 일을 하던 서적 매매(賣買)상이었다. 이러한 개인적 서적 거래 방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 독립출판서점이 그 하나다. 01.『책가도 8폭 병풍』, 책을 중심으로 도자기, 문방구, 꽃 등이 진열되어 있다.ⓒ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02.직접 컴퓨터에 저장하는 다운로드 서비스와 달리 스트리밍 서비스는 저렴한 값을 지불하고 일정 기간 음악이나 책내용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미지투데이

책쾌의 영업 노하우

독서를 전공으로 삼았던 조선의 사대부들. 항시라도 책을 옆에 끼고 생활해야 했건만 지식 확산과 전파를 꺼려 한 조선 정부가 서점 설치를 반대한 까닭에 19세기 말 개화기 이전까지 국가 주도의 서적 배포 외에 민간에서의 책의 유통과 독서는 동맥경화에 걸렸다고 할 만큼 책이 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간, 지역 간 서적 유통의 숨을 틔우고, 그나마 책이 흐를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담당한 이들이 바로 책쾌다.

책쾌는 모든 곳의 서책을 취급 대상으로 삼았다. 사회의 중·상류층 지식인, 장서가, 그리고 사적으로 서적 구입을 희망하는 이들 모두가 책쾌의 주 고객이었다. 책쾌는 집집마다 다니며 새로운 책을 먼저 보여주기도 하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책에 대한 정보를 듣고, 고객과의 상담 후 유식자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책들을 구해다 주었다. 따라서 책쾌는 서책에 관한 서지사항 및 내용에 정통하고, 최소한의 문자 독해 능력을 지녀야 했다.

책쾌는 흔히 반값에 책을 사서 정가로 되팔아 이익을 남겼다. 책의 매매 자체를 부정시했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책 거래는 책쾌를 통해 알음알음 이루어지곤 했다. 책쾌는 역관들이 들여온 중국의 신간 및 인기 서적을 제공받아 국내 유통에 나섰다. 또는 가난하거나 권세를 잃어 망해 가는 집안에서 흘러나온 서책을 몰래 구입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03.1920년대 거리의 책장수. 20세기 전반기에 책쾌들은 일반인을 상대하는 전략을 바꿔 특별히 구하기 어려운 고서나 고문헌 자료를 학자나 문인, 식자층을 대상으로 거래하기 시작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04.유희춘(柳希春)의 미암일기(眉巖日記)(보물 제260호)를 보면, 이미 임란 전인 16세기 말에 책쾌가 활동한 사실을 알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명기집략 사건과 조선 최고의 책쾌 조신선(曺神仙)

책쾌의 활동은 18세기가 최고 전성기였다. 서울이 화폐경제가 활발한 도시로 변모하면서 유흥과 오락용 독서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책 거래 역시 활발하여 영조 때 서울에만 수백 명의 책쾌가 있었다. 책쾌 중 일부는 이동식 영업 대신 고정식 가게, 곧 도서대여점이라 할 세책점(貰冊店)을 열어 책을 빌려 주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1771년(영조 47) 책쾌들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다. 조선의 선왕을 왜곡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중국사서 명기집략 · 봉주강감등을 다수의 지식인들이 소지하고 있음을 알게 된 영조가 대노한 나머지 책쾌를 모두 붙잡아 씨를 말리고자 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1백 명이 넘는 책쾌가 죽음에 이르렀다.

이때 죽음을 모면한 조신선(曹神仙)은 신선으로 불릴만큼 수완이 뛰어났던, 조선 최고의 책쾌였다. ‘박아한 군자’와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책의 저자·주석자·권·책수·문목 등에 관한 서지정보는 물론, 책의 소장자나 소장 연도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천하의 책이 모두 내 책이요, 이 세상에서 책을 아는 이는 오직 나뿐”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평생 책의 유통을 책임졌던 프로 책쾌 조신선. 하늘이 세상의 책을 자신에게 맡겼다는 자기 확신은 서적 유통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소설책이 상품화되고 독서 자체가 일반인에게까지 확산된 19세기에 경화세족(京華世族 : 대대로 서울에 살면서 높은 벼슬을 하는 집안)의 상층 고객은 장서 수집에 혈안이 됐다. 이때 장서가들은 책쾌와 직접 거래를 시도하며 그 욕구를 충족해 나간 만큼, 책쾌는 조선후기 장서 문화를 만들어 나간 기획자라 할 것이다. 이런 책쾌의 활동으로 형성된 지적 네트워크와 지식의 확산과 전파, 그리고 정신적 각성이야말로 조선사회를 끌고 나간, 보이지 않는 자양분이다.

20세기 마지막 책쾌

일제강점기인 20세기 전반기에는 이미 근대식 서점과 각종 매체가 생겨나 책 거래가 어렵지 않았다. 이에 기존 책쾌들은 일반인을 상대하는 전략을 바꿔 특별히 구하기 어려운 고서나 고문헌 자료를 학자나 문인, 식자층을 대상으로 거래하기 시작했다. 송신용(宋申用), 이성의(李聖儀), 한상윤(韓相允), 김효식(金孝植)등이 이 시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책쾌들이다. 전국을 다니며 서책을 구해 와 연구자나 지식인에게 단골 거래를 하며 이윤을 남겼는데, 결과적으로 이들을 통해 산재해 있던 중요한 국학 고서를 모으고, 그 책들이 산실(散失)되는 것을 막았다.

현재도 일부 서적상이 대학교수들과 재야 학자들을 상대로 학술서적과 영인본, 전집류서적을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영인본 서적상 1세대들은 이미 70대 이상의 고령으로 현재 활동하는 이들은 전국적으로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05.20세기 초까지 성행했던 세책점은 문화콘텐츠를 돈을 받고 대여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바로 최근까지 성행했던 만화대여점이나 비디오대여점과 매우 유사하다. ⓒ연합콘텐츠  06.춘천 상상마당에서 열린 어쿠스틱
책방 전시(독립출판물 페스티벌). 독립출판서점은 대형 서점에 비치된 비슷한 책에서 벗어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한 독립 출판물들을 소개하는 서점으로, 기존의 베스트셀러 등에 지친 독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개인 출판과 유통, 그리고 개인 공급을 추구하고 있다.ⓒ연합콘텐츠

책쾌 vs 독립출판서점, 스트리밍 서비스

그러나 조금 시야를 돌리면 현대에도 책쾌처럼 특별한 책을 거래하는 중개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름 하여 독립출판서점. 대형 서점에 비치된 비슷한 책에서 벗어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한 독립출판물들을 소개하는 서점으로, 기존의 베스트셀러등에 지친 독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개인 출판과 유통, 그리고 개인 공급을 추구하고 있다. 1인이나 소규모 사람들이 모여 기획을 하고 제작과 편집, 출판,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의 책쾌와 차이는 있다. 책쾌가 독자 입장에서 맞춤책을 공급해 주었다면 독립 출판은 출판자 입장에서 맞춤책을 만들어 공급하는 거래방 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는 각각 그 시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맞춤형 책을 제공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상통한다.

또 하나, 책쾌들이 발전시킨 세책점에서 추구하던 영업 비법, 곧 문화 콘텐츠를 일정 기간 ‘빌려주는’ 방식은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면면이 지속되고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성행했던 세책점은 바로 최근까지 성행했던 비디오대여점 및 만화대여점과 고객의 이용 심리 측면에서 볼 때 동일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많이 이용하는 스트리밍(streaming)서비스가 바로 세책의 21세기 버전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결제 후에는 일정 기간 동안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횟수나 시간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 스트리밍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제품을 직접 구매하기보다 일정 기간 빌려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인 소비라 여기는 심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책뿐 아니라 영화, 음악 등을 일정 기간 사용료를 지불하고 음악이나 전자책을 마음껏 이용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책쾌 또는 세책업자들이 시도했던 개인 거래와 대여를 현대적으로 접목시킨 결과다. 한 달 사용료를 내고 벅스나 멜론, 네이버뮤직 등을 통해 노래를 마음껏 들을 수 있다. 마치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무료로 대출해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세책은 디지털 기술로 꿈꾸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원천 기술과 같다. 책쾌가 행했던 개인 서적 거래와 도서 대여의 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대인과 소통하고 있고, 미래를 이끄는 도구로 재현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글‧이민희(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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