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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통 그리고 근대화에 대한 열망이 숨 쉬는 곳 덕수궁
작성일
2010-02-1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465





대한문과 수문장

우렁찬 함성과 화려한 의복, 하늘로 솟은 깃발이 대한문 앞에서 그녀를 조선시대로 데려가고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외국인들의 카메라 렌즈를 바쁘게 하는 ‘왕궁 수문장교대의식’은 덕수궁에서 매일 행해지는 행사이다. 현대 속에서 바쁘게 삶을 꾸려나가는 그녀에게도 이 의식은 흥미로웠고, 마치 한편의 공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수문장교대의식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덕수궁에 들어서는 그녀는 이곳저곳을 꼼꼼히 보느라 여념이 없다.

“서울의 여느 연인들처럼 저도 남편과 덕수궁을 산책하곤 했어요. 서울 한복판에서 옛 궁을 가깝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올 때마다 새롭고, 자랑스럽기까지 해요.”

옛 추억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덕수궁은 그녀에게 이미 특별한 장소였다. 유례 없는 한파와 폭설로 은세상이 되었던 서울 시내는 이제 좀 맨 땅이 보이지만 이곳은 아직 이었다. 덕수궁 안 각 건물들의 기와 위에는 여전히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그녀가 겨울 덕수궁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눈으로 덮인 고궁의 모습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굽이 높은 신발때문에 걷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할 터인데 덕수궁의 눈 덮인 길을 어린아이 마냥 신나게 디디는 그녀의 모습을 덕수궁도 반기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에 살면서도 이곳에 한 번도 안 와본 사람들도 많이 있을 거 에요. 저도 추억 속에만 간직하고 있었을 뿐 그 후에 많이 와보지는 못했거든요. 하지만 다시 와보니 공기부터 신선해 무척 좋고 잊고 있었던 우리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네요. 가까이 있지만 찾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번 해에는 많이 오면 좋겠네요.”


정관헌과 석조전

그녀가 덕수궁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정관헌’이었다. 다른 궁에서는 볼 수 없는 덕수궁만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리고 있는 건물인 까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거 알아요?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 이었던거 말이에요. 고종이 이곳에서 커피와 음악을 즐겼어요. 고종과 커피, 그 어울림이 이 건물과 참 닮아있죠.”

우리네 양반들의 집이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마을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고종의 애정이 담긴 ‘정관헌’은 궁궐을 내려다보는 휴식용 건물이었다. ‘정관헌’은 1900년경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이 우리 전통적인 건축방식과 서양식 건축방식을 절충해 설계한 건물이다. ‘정관헌’의 안쪽에 석재를 기본으로 하는 서양식 기둥이 나무로 만들어졌고, 기둥 상부에 한국 전통 문양이 새겨져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관헌’에서 마치 고종이 그랬던 것처럼 궁궐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바라보는 궁궐의 모습은 옛 궁궐의 모습보다는 훨씬 축소된 모습이었다.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 이후 한국 근대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이었고, 동·서·북쪽으로 여러 전각들 외 환구단 등 황제국의 위세를 과시할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고종 승하 후 일제가 선원전과 중명전 일대를 매각하여 궁역이 크게 줄고 많은 전각이 철거돼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서울의 많은 궁들이 겪었던 것보다도 더 큰 아픔을 간직한 덕수궁에서 그녀는 원형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쉽게 ‘정관헌’을 떠날 수 없었다.



그녀는 ‘정관헌’을 나와 고종의 침전이며 승하했던 장소이기도 했던 ‘함녕전’을 지나 ‘덕홍전’을 둘러보고 석조전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다른 궁에서는 볼 수 없는 서양식 석조건물이 덕수궁의 탁 트인 정원에 자리 잡고 있다.  

“예술학교 시절 교수님들께서는 연극과 뮤지컬은 모든 예술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하셨어요. 이 근처에 호암극장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서 덕수궁을 자주 찾았죠. 미술에 관심이 있었을 때는 덕수궁 미술관에도 자주 왔었어요.”

그녀는 호암극장을 자주 찾으면서 친근감을 느꼈던 덕수궁과 덕수궁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추억을 들추었다. 원래 고종황제가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던 서양식 석조건물인 ‘석조전’은 덕수궁이 조선왕조의 마지막 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도 그럴 것이 근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우리의 역사 속에 근대화를 위한 일련의 정책 중 하나로 세워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 고종과 그 시대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왠지 ‘석조전’에서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다양한 책을 읽었던 고종의 모습이 상상이 되네요.”    





덕수궁, 여백의 미

 “뮤지컬 배우로 살면서 국악과 한국무용을 배웠었어요. 우리의 것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도 여유로움과 여백의 아름다움이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지금 덕수궁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눈을 밟는 것조차 너무 오랜만이라는 그녀는 덕수궁의 눈길을 걸으며 또렷한 눈빛으로 덕수궁의 아름다움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야 말로 질리지 않으며 삶의 풍요를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국악이라든지, 한국무용이라든지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의무 교육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 여유로움과 그 외의 교훈들은 빠른 템포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의 전인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우리의 것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 경험해 보았던 그녀는 자신이 그 매력을 알기에 모든 이들이 그 매력을 느껴보기를 바랐다. 들어왔던 대한문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처음에 신나게 디디었던 발걸음과는 달리 못내 아쉬움에 나가는 듯 한 걸음을 내딛고는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호암극장을 오가며 덕수궁과 친밀함을 더했던 뮤지컬 배우 홍지민은 서울 예술단 단원으로 활동 했다. 뮤지컬 배우로서 노래뿐만 아니라 살사 댄스도 상당한 실력을 갖춘 그녀는 우리네 장구와 봉산탈춤 그리고 태권도를 섭렵하고 있는 재주꾼이다.

2008년 대구 국제뮤지컬 어워즈 최고스타상, 2009년 제15회 한국뮤지컬대상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녀는 1996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애랑과 배비장’ 을 비롯해 풋루스, 넌센스, 그리스, 드림걸즈 등 다양한 뮤지컬을 소화해냈고, 드라마와 영화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언제나 열정적인 가슴과 또렷한 눈빛으로 보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그녀의 매력이 덕수궁 기행길에서도 여전이 빛나고 있다.


글·김진희  
사진·최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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