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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미술의 과학 - 조선 초 자주적 과학기술
작성일
2005-07-2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791



자주적 과학기술의 전개

조선시대 초기의 과학

한국은 중국의 전통적 거대과학의 그늘에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창조적 발전을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 천문학·인쇄술·농업기술·의학·군사기술·지리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창조성은 조선왕조에서 더욱 확대되었는데, 특히 조선왕조 초기의 자주적 문화 창조에 대한 노력은 과학기술 발전에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다.
   1395년 서울로 수도를 옮긴 조선왕조는 왕조 권위의 표상으로 새로운 천문도를 돌에 새겨 만들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 그것으로, 1465개의 별을 283개의 별자리로 그려 넣은 완벽한 별자리 그림이다. 가로 122.8㎝, 세로 200.9㎝ 크기의 검은 대리석에 새긴 이 천문도는 14세기 조선 천문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실증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조선왕조 초의 과학기술 전개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과는 청동활자인쇄술의 재발명이다. 특히 인쇄술은 세종대에 국책사업으로 추진돼, 동아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성의 단계에 이르렀다. 중국에서는 거의 내버려졌던 청동활자인쇄술이 조선에서는 국가적 과제로 추진됨으로써 과학과 문명에 크게 기여한 기술이 된 사례이며, 또한 조선이 중국의 과학기술 모방에 머무르지 않고 창조적 기술개발을 이룬 사례이기도 하다.
   이러한 발전적 업적은 한국 전통과학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세종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량계(雨量計) 발명도 그 하나이다. 1441년(세종23)에서 1442년(세종24)에 걸쳐 측우기(測雨器)와 수표(水標)를 발명하였고, 잘 제도화된 측정방법으로 전국의 강우량을 통계적으로 집계하는 일을 4백 년 이상이나 계속하였다. 15세기 전반에 이렇게 양적 계측기에 의해 전국적인 규모로 기상관측이 이루어진 것은 조선에서 뿐이다. 과학으로서 농업기상학이 세계 어느 지역에서보다 일찍 조선에서 성립했다는 사실은 의미있는 점이다.
   또한 세종시대에는 새로이 천문대도 설립되었다. 대간의(大簡儀)라고 불린 경북궁의 대규모 천문대에는 간의(簡儀)·혼천시계(渾天時計)·혼상(渾象)·규표(圭表)·정방안(正方案, 방위지시표) 등이 설치되었고, 정밀한 자동물시계이자 천상시계(天象時計)인 자격루와 옥루, 그리고 각종 해시계들이 부설되었다.
   조선 초 군사기술도 눈여겨 볼 만하다. 조선식 화포(火砲)와 거북선이 그 대표적인 보기이다. 1448년 간행된 <총통등록(銃筒謄錄)>에 세종 때 완성된 모든 화포의 주조법과 화약 사용법을 상세히 기록하고 그림으로 표시하여 정확한 화약병기의 기술을 기록했다. 왜구를 물리친 대표적인 전함인 거북선도 조선 초에 개발된 전선이다.
   의학 분야에서는 의약학의 체계화와 동양의학의 집대성을 이루었다. 조선 초에 더욱 활발해진 향약 연구는 한국산 의약에 관한 의학적·본초학적 지식으로 정리되었고, 독자적 의약처방으로 체계화되었다. 조선시대에 나온 의학서는 1433년에 완성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1445년에 간행된 의학백과사전 <의방유취(醫方類聚)>, 16세기 말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 등이 있다.
   농업기술도 세종대에 큰 발전을 보았다. 그 이전까지 한국 농업기술은 주로 중국의 농서를 텍스트로 하여 전개되었는데, 중국의 농서는 한국에서 실제로 농업을 해나가는 지침서는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편찬된 것이 1429년 완성된 <농사직설(農事直設)>. 이 농서는 각 지방의 농법을 조사하여 그 중 가장 현실적으로 발전된 기술을 요약한 것으로, 조선 농업기술을 크게 향상시켰다.
   면직물 보급, 농산물 생산증대, 의약학의 발달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더불어 조선 민중의 생활수준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조선의 과학과 기술은 더 이상 귀족이나 양반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중을 위한 지식으로 확대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15세기 전반 조선 초에 이룩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그 질과 양에서 한국의 역사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고,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사적인 시야에서 볼 때에도 유례가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15세기 전반기의 과학사는 조선왕조 세종시대의 과학자들에 의하여 정상으로까지 끌어올려졌으며, 그 시기는 ‘세종의 시대’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업적은 일본인 伊東·曲田 등이 쓴 <科學史技術史事典(동경, 1983)>에 의해서도 확인이 된다. 이 사전에서 세계과학기술사 속에 세종시대의 창조적 성과가 부각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작성한 연표에 의하면, 1400년에서 1450년까지 주요업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한국 29건, 중국 5건, 일본 0건이며, 동아시아 이외의 전지역이 28건으로 정리되어 있다. 세종시대 과학기술이 15세기에 이루어진 다른 여느 나라의 성과를 능가한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전상운 / 동아시아 과학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문화재위원회 국보지정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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