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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발굴조사의 현재를 있게 한 50년 전의 열정 『황남대총 북분, 발굴조사의 기록』
작성일
2022-03-30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241

발굴조사의 현재를 있게 한 50년 전의 열정 『황남대총 북분, 발굴조사의 기록』광복 이후 우리나라 고고학은 많은 유적과 유물을 발굴하고 그 성과를 축적하며 발전해 왔다. 그중에서도 경주는 신라의 옛 수도로 고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특히 1970년대 발굴한 천마총과 황남대총은 그 규모와 발굴 성과의 의미가 매우 크다. 발굴조사와 기록 그리고 연구에 이르는 과정은 시대를 거듭하며 보완되어 왔고 더 나은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고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황남대총 북분 발굴조사 과정을 재조명해 본다. 01.남분과의 연접부 조사 모습

신라 고분연구의 근간을 형성한 황남대총 북분 발굴조사

황남대총은 경주중심고분군인 대릉원지구 북편에 자리한 초대형 무덤이다. 현재까지 발굴한 신라 무덤 중 가장 크며 남・북분이 연접한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다. 무덤의 크기만큼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다양한 고고학 자료를 제공 하고 있다. 거대한 크기와 화려한 유물 때문에 황남대총 남분은 왕릉으로 추정되는데, 그 주인공을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50년가량의 절대 편년에 차이가 있어 신라사 연구의 주요 쟁점이 되어 왔다.


황남대총을 발굴한 1970년대는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시작하고 급변하던 시기였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개통 하고 관광자원을 확보할 목적으로 1971년 ‘경주관광종합 개발계획’을 수립했는데 그 일환으로 미추왕릉지구 정화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황남대총과 천마총 발굴을 기획했다. 원래는 황남대총을 발굴하여 그 내부를 복원, 공개할 계획이었으나, 남·북분을 합치면 120m에 달하고 당시 조사 경험도 부족했던 탓에, 그에 앞서 천마총을 시험 삼아 발굴하기로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황남대총 발굴은 북분을 먼저 조사하고 남분은 뒤에 조사했다. 이는 발굴과 정상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두 고분을 동시에 발굴했을 때 발생할 착오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북분은 1973년 6월 천마총의 적석부(積石部, 시신을 안치한 곳으로 나무곽을 둘러싼 돌무지)를 조사할 무렵 발굴을 시작했고 그다음 해 12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이루어졌다. 북분 발굴에서는 무덤 주인공이 착장한 금관을 비롯해 35,769점의 유물이 나왔다. 또한 나무곽 주변으로 적석을 쌓기 위해 마련한 목가구(木架構) 구조를 처음으로 확인하여 신라 마립 간기(麻立干期) 최상위 무덤의 구조를 밝힐 수 있었다. 무엇보다 80m에 달하는 신라 무덤을발굴한 것 자체가 큰 성과였다. 발굴 이후 50여 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 성과는 여전히 신라 고분 연구에 중요한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02.천마총 발굴 조사원들의 모습 03.『황남대총 북분 발굴조사의 기록』

발굴조사의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그리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황남대총을 발굴했던 경주고적 발굴조사단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신라 고분 발굴을 이어 오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그 시작점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타진하는 의미에서 2021년 『황남대총 북분, 발굴조사의 기록』을 발간했다. 발굴 후 50년가량 지난 시점 에서 당시의 기록을 수집, 정리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자료실에 켜켜이 쌓인 사진과 기록물을 일일이 확인하며 분류하는 과정을 거쳤다.


‘1973년 7월 초 대통령 시찰에 대비하여 문화재관리국에서 판자 등을 실어 보내주어 가건물 사무실을 급조했지만, 지붕은 천막 그대로였다가 함석으로 덮으니 막상 여름에는 그 열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 있을 수가 없었다.’ … 그 당시 발굴을 담당했던 최병현 선생의 이야기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서 황남대총을 발굴해야 했던 압박감과 고고 학자로서의 고민이 그대로 묻어난다.


고고학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유적과 유구를 조사해 왔다. 그 내용은 현장의 기록과 도면, 사진으로 남아 보고서를 통해 공식화된다. 현재의 고고학 성과 뒤에는 발굴조사에 최선을 다한 고고학계의 열정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발굴조사 기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 졌는지 살피는 일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변화를 위한 필수 작업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시도가 계속되어 발굴조사와 연구 과정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정익재(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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